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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Novel] 이문열 연재소설 ‘리투아니아 여인’ 6-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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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백두리 baekduri@naver.com

어느새 서구의 파파라치 수준에 이른 우리 연예잡지 기자 하나가 밤 늦은 호텔 라운지에서 혜련이 어떤 외국인과 단둘이 와인을 마시는 사진을 내보내면서 거기 달아놓은 선정적인 사진설명이 그 홈페이지에 들어간 네티즌 사이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누구? 어떤 사이?’란 제목과 함께 간단한 상황 묘사가 곁들여진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걸 본 네티즌들이 중구난방 자신의 느낌대로 댓글을 올리는가 싶더니, 차츰 그 댓글들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확대 재생산되어 갔다.

 혜련의 데이트 사진은 이미 상대를 바꾸어 여러 번 가십거리가 되었던 터라 처음에는 아무도 그걸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대가 외국인이었다는 게 당시의 주도적인 네티즌 세력의 설익은 민족주의에 걸려 차츰 악의의 강도를 키워 갔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피는 못 속여’라든지, ‘내 그럴 줄 알았지’ 등의 자극적인 댓글에 이어 ‘그래, 어여 가거래이, 너그 따까리한테’라는 막말까지 나왔다.

 그런데 더 나쁜 것은 그 다음 단계였다. 한동안 저희끼리 찧고 까불다가 제풀에 흥이 빠져 가라앉는가 싶더니, 그 사이트 곁에 또 다른 일단의 사진들과 함께 자극적인 설명이 덧붙여짐으로써 사그라지던 악의가 다시 타올랐다. 그동안 혜련의 데이트 상대로 지목받아 온 대여섯 명의 한국 남자들과 함께한 혜련의 사진을 죽 늘어놓고 일괄적인 설명을 대신해 한마디로 묻고 있었다. ‘그럼 얘들은 헬렌 킴이 데리고 논 조선종 누렁 푸들이었던 거야?’

 하지만 젊은 단원들을 시켜 내가 그것들을 인터넷에서 찾아 본 것은 스스로 싸움꾼을 자처하는 어떤 인터넷 논객의 글을 읽고 난 다음이었다. 그 사팔뜨기 지식인은 점잖은 논객들 말꼬리 잡고 자발없는 소리로 속 터지게 만드는 장기가 있어, 그 무렵의 덜 떨어진 네티즌들에게 한창 인기가 있었다. 달을 보라고 가리키면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 끝만 빤히 쳐다보다가, 손톱에 낀 때나 찾아내어 ‘손이나 잘 씻고 다니쇼’라고 빈정거려 놓고 잘난 듯 사방을 돌아보며 헤헤거리는 부류였는데, 그가 그 마녀재판에 끼어들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다.

 그는 혜련을 둘러싼 논의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그것을 자기 홈페이지로 옮겨가 독립된 ‘인물과 사상’ 해설 형식으로 글을 올렸다. 제 딴에는 ‘문화적이고 근원적으로’ 사태의 본질을 파악했다고 주장했지만, 실은 문화적 정체성이란 이름으로 국적과 혈통의 문제를 끌어내 네티즌들의 설익은 민족주의 감정에 아첨하는 글이었다. 그는 혜련의 다국적성과 혼합성을 무슨 중요한 문화적 흠결인 양 몰아가다가, 눈 한 번 깜작 않고 혜련의 음악적 재능과 성취까지 ‘튀기의 곁눈질’로 폄하했다. 그리고 처음 혜련이 우리 사회에서 추어올려지던 것과 역순으로 그녀를 부정해 갔다. 지도력이라고 치켜세워지던 혜련의 악단 장악 능력은 무지가 가진 대담함이 오해된 것으로, 카리스마라던 것도 ‘에그조틱이 가미된 암내’를 착각한 것으로 짓씹혔다.

 우연히 그 글을 본 단원의 말을 듣고 그 글을 찾아본 나는 다시 앞서의 시비들까지 찾아오게 해 꼼꼼하게 읽어보았다. 앞뒤 없는 격분으로 몸을 떨던 것도 잠시 나는 곧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느낌에 암담해졌다. 그리고 혜련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다급해 했으나, 이내 무력감으로 막막해졌다. 거기다가 나는 그 무렵은 한창 새로운 뮤지컬을 준비하고 있던 때라 암담함과 무력감은 한층 더했다. 내가 기껏 할 수 있었던 일은 그날부터 몇 번인가 혜련에게 전화를 걸어 언제든 후퇴하여 숨을 수 있는 곳으로 내 아파트를 상기시키는 것뿐이었다.

 두 번째 뮤지컬 공연 준비로 바빠 애처롭고 안쓰러워하며 바라보는 사이에 그렇게 요란스럽게 치켜세워지던 한 시대의 아이콘은 무참하게 타격당하고 부스러져 갔다. 그 온당찮은 논객의 악의에 찬 논의로 다시 불붙은 정체성 시비는 새삼스레 혜련의 이중국적을 문제 삼고, 그 형제자매의 배우자 국적까지 들추어 혜련과 우리의 동질성과 소속감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리고 거기서 자라난 대중의 악의는 다시 전문성 문제로 전이되어 혜련의 음악성까지 과대평가된 것으로 단정지어 갔다.

 처음 얼마간은 혜련도 안간힘을 다해 버텨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혜련이 곧 깊은 침묵 속에 빠져들면서 그 미친 회오리와도 같은 대중의 악의는 일방적인 부정과 폄하를 거듭했다. 그녀를 한 시대의 아이콘으로 끌어올리는 데 일 년이 걸렸지만, 형체도 모르게 짓밟아 부수는 데는 석 달도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새로운 밀레니엄이 열린 그해 봄이 다 가기도 전에 이제는 논의 자체가 시들해질 만큼 혜련의 존재감은 희미해져 버렸다.

 어디 가 있는지 한동안은 전화 연락조차 되지 않던 혜련이 불쑥 내 아파트로 찾아온 것은 그해 5월 말이었다. 온라인 세상의 시비가 오프라인에도 확산되어 멀쩡한 보수 신문이나 지상파 매체의 연예란까지 혜련을 부정적으로 다룸으로써 시향의 지휘자까지 그만둔 뒤 두 달 만이었는데, 누가 밤늦게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는 나를 막아섰다.

 “역시 늦으셨네요. 그래도 돌아오신 걸 보니 아직 공연 개막일 많이 남았는가 봐요.”

 혜련이 마치 한 아파트에 살면서 마중 나온 사람처럼 그렇게 말했다. 가까운 어린이 놀이터의 그네 같은 데 앉아 기다리다가 나를 보고 일어선 듯했다.

 “이게 누구야? 정말 사람 놀라게 하네.”

 내가 그렇게 답해놓고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그간 어디 있었어? 전화도 안 받고.”

 “부산에 와 계시는 엄마아빠한테 가 있었고- 최근 열흘은 리투아니아를 다녀왔어요.”

 “리투아니아에? 거긴 왜?”

 “외할머니가 돌아가셨거든요.”

 “보자, 비타-우-타스, 그래 비타우타스 구 백작 부인 말이야?”

 “잘도 기억하시네요. 맞아요. 비타우타스 부인. 향년 89세. 남편 곁에 묻히기 위해 리투아니아로 돌아가신 지 여섯 해 만이에요. 그런데 아파트로는 안 들어가실 거예요?”

 혜련이 그러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외등 빛에 드러나는 그녀의 얼굴이 짐작 밖으로 건강하고 밝아 보이는 게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그래, 들어가자. 갓 돌아온 모양인데 그래도 나를 먼저 찾아준 것 같으니 이게 어디냐?”

 내가 애써 웃음기 섞은 말로 그렇게 받고 그녀를 이끌었다. 아파트로 돌아와 불을 켜고 어질러진 소파를 대강 치운 뒤에 내가 다시 짐짓 쾌활한 목소리를 지으며 물었다.

 “오늘은 술, 어떻게 할 거냐?”

 “실은 아홉 시 루프트한자로 돌아왔어요. 짐 내 원룸에 갖다 놓고 이리로 온 게 이제 삼십 분밖에 안 된다고요. 밥 먹고 싶어요. 한식으로.”

 혜련이 떼를 쓰듯 말하는 게 어이없어 내가 억지로 웃는다는 기분 없이 웃으며 말했다.

 “이 오밤중에 야식을 하겠다는 거야? 보자, 벌써 열한 시가 넘었는데. 거기다가 밥도 지어둔 게 없고.”

 “밥 그거 삼십 분이면 돼요. 김치는 있죠? 라면 하고. 그거만 있으면 너끈해요. 라면 넣어 김치찌개 끓이고 쌀밥 지어 먹으면 진수성찬이 될 거예요.”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일어나더니 겉옷을 훌훌 벗어붙이며 덧붙였다.

 “파자마 하고 헌 와이셔츠 하나 내놓으세요. 내가 요리할게요. 접때 우리 한번 여기서 저녁이나 맛있게 지어 먹자고 약속한 적 있죠? 이제 그 약속 지키는 거예요.”

 “퍽도 잘 기억한다. 하지만 어쩌누? 나는 아까 단원들과 아귀찜으로 아귀아귀 저녁을 먹었고, 요새는 밖에서 밥을 먹을 때가 많아 냉장고는 텅 비었으니. ”

 “그럼 뭐예요. 거, 사자성어 있잖아요? 주인은 술 마시고 손님은 밥 먹고···.”

 “주주객반(主酒客飯). 그러나 주는 그럭저럭 되겠지만 객에게는 정말로 김치하고 라면밖에 없는데 맛있는 저녁이 될까?”

 “그것만 있다면 진수성찬이라고 했잖아요? 어서 허드레 옷이나 내놓고···.”

 혜련이 재촉해 옷을 갈아입고 오래 함께 살아와 익숙한 사람처럼이나 늦은 밥을 짓기 시작했다. 나는 냉장고에 처박혀 있는 캔맥주 몇 개를 꺼내 찔끔찔끔 마시면서 그녀가 저녁 짓는 것을 구경했다.

 짐작보다 시원시원하게 밥을 안치고 찌개를 끓인 혜련은 열두 시가 되기도 전에 밥과 찌개를 식탁 위에 차리고 나를 불렀다.

 “자, 이제 주주객반해요. 정말 맛있겠네.”

 내가 자리 잡고 않기 바쁘게 혜련이 그렇게 말하더니 혼자 수저를 들어 밥을 후후 불고 국물을 후룩후룩 소리 나게 떠넘기며 맛나게 먹었다. 그새 마신 술로 얼큰해진 내가 특별하게 과장한다는 느낌 없이 말했다.

 “이생에서는 아니고 - 어느 생에선가 우리 이러면서 오래 살았던 거 같네. 왜 이 광경이 조금도 낯설거나 어색하지 않지?”

 “근친상간의 기억이 아니니 다행이네요. 하지만 혼자 너무 감상에 젖지 마세요. 나는 지금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 중일 뿐이에요.”

 그리고 - 그 뒤 무슨 일이 있었던가.

글=이문열
일러스트=백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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