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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pecial] 마스터스 ‘파3 콘테스트’ 캐디·선수 짝 이룬 이승철·양용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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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조지아주에 있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에서 열린 마스터스 대회에 참가한 양용은 선수와 가수 이승철씨, 양 선수의 아들 경민군(왼쪽부터 시계 방향). 대회 개막을 앞둔 6일 열린 ‘파3 콘테스트’에서 이승철씨는 양 선수의 캐디로 나섰다. [오거스타=성호준 기자]

마스터스 골프대회 개막을 하루 앞둔 6일(현지시간), 가수 이승철(45)씨가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부인 박현정씨와 함께 유서 깊은 클럽하우스 앞 참나무 그늘 아래 VIP 테이블에 앉아 있다 드나드는 유명 선수의 사인을 받고 있었다. 이승철씨는 골프광이다. 그는 마스터스의 노란색 깃발에 적힌 사인을 보여주며 “골프 전설 잭 니클라우스와 아널드 파머의 사인을 여기 받았는데 게리 플레이어만 추가하면 과거 골프의 빅3를 완성한다”며 흐뭇해했다. 그는 “사인을 해주다 사인을 받는 입장이 되니 가슴이 두근거리더라”며 “팬들의 마음을 알게 됐고 앞으로 공연장에 오는 사람들에게 사인도 많이 해주고 사진도 함께 찍어줘야겠다”고 했다.

 그렇다고 그가 사인만 받으려고 미국까지 날아온 것은 아니다. 그는 이날 오후 열리는 ‘파3 콘테스트’에 캐디로 나선다. 그가 돌봐야 할 골퍼는 아시아 인으로는 처음으로 메이저 우승자가 된 양용은(39) 선수다. 이승철씨는 아이처럼 좋아하면서도 초조한 듯 여러 차례 시계를 봤다.

마스터스의 캐디는 흰색 점프슈트를 입는다. 정비복 같은 원피스 옷이다. “안에 바지를 입고 위에 캐디복을 입는데 바지 주머니가 큼지막해 수건을 걸 수도 있게 돼있어요. 불편할 것 같았는데 날씨가 덥지 않아 입을 만해요.” 승철씨가 신이 나서 말했다. 부인 현정씨는 “남편이 마스터스 캐디복이 멋지다면서 한국에서 하나 맞춰 입고 올까 생각도 했다”고 귀띔했다. 그러자 양용은 선수가 한마디 한다. “마스터스 대회니까 그게 어울리지 다른 골프장에서는 어색할걸.”

 이승철씨는 클럽 4개를 들고 양용은 선수의 막내아들 경민(6)군이 퍼터를 들었다. 첫 홀에 들어서자 승철씨는 아주 긴장돼 보였다. 그는 나중에 “아무 생각 없이 머릿속이 하얗다”고 털어놨다. 3번 홀에서 양 선수는 승철씨에게 어프로치샷을 해보라며 클럽을 건넸다. 승철씨는 20m 거리에서 홀 5㎝ 옆에 볼을 붙였다. 갤러리들이 환성을 터뜨렸고 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 봤지요, 잘하죠?” 캐디로 함께 나선 경민군만큼이나 천진난만한 표정이었다. 승철씨는 4번 홀에서는 열세 발자국의 내리막 퍼트도 홀에 넣을 뻔했다. 이후 승철씨의 걸음걸이는 의기양양해졌다.

 양 선수는 “오후라 잔디가 자라 그린이 아주 빠른 편은 아니라도 일반 골프장보다는 훨씬 빠르다”며 “승철 형이 긴장됐을 텐데 쇼트게임 감각이 좋은 걸 보면 역시 무대 체질인가보다”고 웃었다.

두 사람의 인연이 그리 길지는 않다. 승철씨는 2009년 파리의 한 호텔에서 양용은의 PGA 챔피언십 우승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한 서양인이 “당신 한국인이냐, 한국 선수가 타이거 우즈를 꺾고 우승했는데 대단하더라”고 축하해줬다. 철저한 백인 스포츠인 골프에서 흑인인 타이거 우즈가 10여 년간 지배했는데 그 골프 황제에 처음으로 역전패를 안긴 선수가 아시아인이었기 때문에 서양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승철씨는 “그 말을 듣고 정말 기분이 좋았고 양용은 선수에게 나이에 상관없이 존경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양용은 선수도 가수 이승철의 팬이었다. 그는“승철 형을 만나기 전부터 휴대전화 컬러링은 거의 승철 형 노래였고, 차에도 승철 형의 CD는 거의 다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2009년 겨울 처음 만났다. PGA 챔피언십 우승 후 양 선수가 한국에 왔다 이승철의 콘서트를 보러 가려 했는데 티켓이 매진되는 바람에 표를 구하려고 백방으로 뛰었다. 승철씨가 이 소식을 듣게 됐고, 양 선수에게 티켓을 보내면서 “함께 저녁이나 하자”고 제의해 만나게 됐다고 한다.

 당초 승철씨는 지난해 마스터스의 파 3콘테스트에서 양 선수의 캐디를 하기로 약속했었다. 그는 마스터스에 갈 수 있다는 말에 너무 좋아 예정돼 있던 공연까지 취소했다. 위약금을 물어주느라 손해도 꽤 봤다. 그런데 다른 사정이 생기면서 갈 수가 없었다. 대신 지난해 7월 브리티시 오픈이 열린 스코틀랜드 세인트 앤드루스로 날아가 양용은을 응원하고 왔다. 요리책을 내기도 한 이승철씨는 직접 한식 요리를 해서 양 선수에게 대접하기도 했다.

 승철씨는 지난해 양 선수가 주최한 PGA 챔피언십의 챔피언스 디너를 돕기도 했다. 이승철씨는 청와대에서 열린 ‘소외아동 돕기 바자회’에서 김윤옥 여사를 만나 “양 선수가 챔피언스 디너에서 한식을 홍보하고 싶어 하는데, 김 여사께서 도움을 주실 수 없겠느냐”고 부탁했다. 한식 홍보에 열성적인 김 여사는 승철씨의 제안을 받아들여 현지에서 호평을 받았다.

 라운드를 마친 후 양 선수는 “형이 멀리까지 와서 마스터스의 분위기도 보고 즐겨서 재미있었다”며 “오늘 다행히 티타임이 늦어 갤러리가 적은 편이어서 함께 오붓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승철씨는 “선수 라커에 들어가니 역사가 있더라. 라커는 오래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옷장마다 전통과 권위가 쌓여 있었다”며 “한국에는 아직도 골프를 내기 정도로만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골프의 역사와 전통, 정신을 알리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털어놨다. 그는 “과거 골프대회를 몇 번 다녔는데 키가 작아 까치발을 해도 티잉그라운드 안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 자신이 그 안으로 들어가니까 정말 기분이 새롭더라”고 말했다.

 길진 않아도 두 사람의 우정은 깊다. 마스터스를 앞둔 4일 승철씨 부부와 양 선수 부부는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기자도 초대를 받았다. 양 선수는 대회기간에 오거스타의 고급 주택을 일주일간 임차했고, 이승철씨도 같은 단지에 있는 빌라를 빌렸다.

 양 선수는 지난해 마스터스 기간에도 이 집에 왔고 앞으로 계속 이 집에 오려고 한식에 필요한 그릇과 고기구이판도 장만해 놨다. 삼겹살과 돼지갈비, 배추김치는 물론 총각김치와 파김치까지 준비된 한식 파티였다.

오거스타=성호준 기자

승철씨는 “어떤 분야의 최고가 되는 사람은 집중력이 좋은데 양용은 선수를 만나고 나서 이를 다시 실감했다”고 한다. 양 선수의 부인 박영주씨가 맞장구를 쳤다. “비디오를 보면서 골프 스윙을 연구할 때는 아이가 아빠를 열 번 불러도 일만 하고 있더라. 아이가 화가 나서 큰 소리를 쳐야 고개를 돌리곤 한다. 처음에는 그냥 대답을 하지 않거나 아이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만약 어떤 일을 하려고 마음먹었다면 누가 다른 얘기를 해도 듣지 않고 그 일에 집중한다. 다른 일을 해도 아주 잘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승철씨는 “나도 ‘그 사람’이라는 곡을 딱 30분 만에 만들었다. 치열하게 생각하고 거기에 집중할 때는 악보가 머릿속에서 살아 나온다. 그럴 때 만든 곡과 가사는 멋진 작품이 된다. 그렇지 않을 때는 아무리 오랜 시간 노력해도 마음에 드는 것이 안 나온다”고 말했다.

 현정씨는 “두 분은 보통사람과 척추의 울기가 다르다. 남편은 왼손으로 마이크를 들고 한쪽으로 숙이고 노래를 부르는 버릇이 있어 그렇고, 양 선수는 골프 어드레스 자세 때문에 그렇다. 두 사람 모두 프로의 자세를 가졌다”고 말했다.

 요즘 화제가 된 TV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 얘기도 나왔다. 승철씨는 “기량을 검증받은 정상급 가수들이 아마추어인 팬들이 즉흥적으로 매기는 점수로 평가받는 것은 적절한 것 같지는 않다”며 “음악은 여러 가지 취향과 한 번 듣고서는 평가할 수 없는 깊이가 있다”고 말했다. 양용은 선수는 “골프는 타수라는 명백한 기준이 있는데 정상급 가수들의 노래를 그렇게 평가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다시 하는 것은 프로가 아니다”고도 말했다. 양 선수는 “프로에게 멀리건은 없다. 프로골퍼가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쳤으니 다시 치자고 할 수 있느냐. 대회에 나온 선수들 중 절반은 컷 탈락으로 아무런 보수도 받지 못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골프다. 이건 이래서 안 됐고, 저건 저래서 안 됐고 변명이 필요 없는 것이 골프”라고 말했다. 승철씨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거스타=성호준 기자

j 칵테일 >> 마스터스 파3 콘테스트의 축제와 징크스

최경주.

오거스타내셔널은 가장 권위적인 클럽 중 하나로 꼽힌다. 마스터스에서는 갤러리는 물론 선수들도 클럽의 전통을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쫓겨난다.

그러나 파3 콘테스트에서 선수들은 단추를 한두 개 더 풀고 한껏 즐긴다. 가족과 함께 나와 축제를 벌인다. 선수들은 아이들을 캐디로 쓰기도 하는데 간혹 캐디백보다 작은 아이가 나오는 경우도 있다. 최경주는 큰아들 호준군과 딸 신영(9)양, 둘째아들 강준(6)군을 데려왔다. 최경주는 “학교를 빠질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대회에 가족을 데려가지 못하지만 마스터스는 가장 큰 축제이며 파3 콘테스트가 중계되기 때문에 선생님들도 다른 곳에 놀러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하며 웃었다.

파3의 저주라는 말이 있다. 파3 콘테스트에서 우승하면 정작 본 대회에선 우승하지 못한다는 징크스와 관련 있다. 이 이벤트가 시작된 1960년 이래 파3 콘테스트 우승자가 그해 그린재킷을 입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87년 이 징크스가 깨질 뻔했다. 그해 파3 콘테스트에서 우승한 벤 크렌쇼는 샷감이 무척 좋았다. 본대회 3라운드까지 공동 선두를 달렸다. 그러나 결국 1타 차로 우승을 놓쳤다. 그러자 징크스의 무게는 더욱 커졌다.

벤 크렌쇼.

이듬해 크렌쇼는 파3 콘테스트에서 선두로 나섰다. 그러자 그의 아버지는 파3의 저주를 의식해 “볼을 물에 쳐넣어라”고 조언했다. 98년 마크 오메라는 파3 콘테스트에 나가려고 했는데 신청자가 꽉 차서 참가하지 못했다. 그런데 본대회에서 우승했다. 이 일이 있은 뒤 징크스는 저주로 발전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수는 파3의 저주를 거의 믿지 않는다. 마스터스 출전 선수가 100명 정도이기 때문에 파3콘테스트에서 우승한 선수가 본대회에서 우승할 산술적 확률은 1% 정도다. 50년 동안 파3 콘테스트 우승자가 그린재킷을 입지 못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승을 노리는 진지한 선수들은 본대회에 집중하려 파3 콘테스트에 최선을 다하지 않거나 아예 나가지 않는 경우도 많다. 마스터스에 처음 나온 풋내기 선수나 우승 가능성이 거의 없는 노장들이 파3 콘테스트에서라도 한 건을 하려고 눈에 불을 켠다.

올해 타이거 우즈는 파3 콘테스트에 나오지 않았다. 원래 이 이벤트에는 심드렁했고 2004년부터 대회에 거의 나오지 않았다. 반면 가족과 좋은 추억을 남기려는 선수들은 적극적으로 참가한다. 필 미켈슨은 “본경기가 시작되면 스트레스가 매우 많지만 파3 콘테스트에서는 모든 사람의 얼굴엔 웃음이 넘친다. 시즌 첫 메이저대회를 앞두고 생기는 스트레스를 이 콘테스트에서 날려 버리며 아이들과 함께하며 가족애를 키우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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