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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어뢰 붉은 멍게’ 진실 밝힌 이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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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수정
정치부문 기자

천안함 폭침 1주년인 지난달 말 난데없이 멍게 논란이 불거졌다. 인터넷 매체인 서프라이즈의 대표 신상철씨가 “천안함 어뢰추진체에 붉은 물체가 묻어 있는데 이는 동해에만 서식하는 붉은 멍게일 수 있어 서해에서 폭침했다는 정부 발표는 근거 없다”고 주장하면서다. 대학에서 항해학을 전공한 신씨는 지난해 민주당 추천으로 천안함 민군합동조사위원회에 들어간 뒤, 이틀 만에 “군이 다 조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좌초설, 미 항모와의 충돌설 등으로 ‘천안함 괴담’에 불을 지폈다.

 멍게 논란은 6일 국방부가 “국립수산과학원 등에 의뢰해 유전자(DNA) 검사를 한 결과 생명체가 아닌 무기물로 밝혀졌다”고 발표하면서 끝이 났다. 신씨와 ‘멍게 양식업자’ A씨의 말을 인용해 의혹설을 보도한 오마이뉴스(대표 오연호)는 곧바로 오보를 인정했다. 반성의 뜻을 담은 사과문도 게재했다. 천안함과 같은 보·혁이 대립하는 예민한 이슈에서 오류를 선뜻 인정하는 용기가 돋보였다는 평가다.

이주 박사(左), 신상철 대표(右)

 신씨는 달랐다. 그는 “그들(국방부)은 ‘진실의 한(恨)’은 묻은 채 하나씩 제거되는 불행한 운명을 맞고 있다. 붉은 멍게인지 아닌지는 마이너한 이슈(사소한 이슈)다. 나의 문제 제기는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했다. 2주 만에 ‘결정적 근거’가 ‘사소한 이슈’로 전락했다. 무책임하다. 그는 어뢰추진체에 묻은 0.8㎜의 붉은 물체와 크기가 120배가 넘는 붉은 멍게(10~20㎝)를 각각 확대하고 축소해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뒤틀린 전제, 비과학적 추정, 드러난 진실에 눈감고 모호한 1%에 매달려 ‘조작’이라고 주장하는 인사들의 공통점이다.

 신씨의 주장을 깬 사람은 동해의 붉은 멍게 전문가인 이주(53) 박사다. 강릉의 동해수산연구소에서 2년 꼬박 붉은 멍게 양식 기술개발에 전념한 학자다. “강한 놈(멍게 종묘) 한번 만들어 보겠다고 꽤나 고생했죠. 학회지에 발표할 정도의 실적을 냈고요. 신씨 주장을 반박하려면 연구 사진도 공개해야 하는데, 그러면 학회지엔 제출 못합니다.” 국방부 브리핑에 참가해 자신의 연구 사진도 공개하며 추진체의 부착물은 붉은 멍게가 아니라고 확인했다. “고민도 많이 했죠. 결국 국가의 에너지가 엉뚱하게 낭비되는 걸 막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박사는 “증거를 없앴다는 얘기가 나올까 봐 추진체에 부착된 0.8㎜ 크기의 붉은 물체에서 0.3㎜만 뜯어내 검사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했다.

 신씨는 늘 그래왔듯 천안함 의혹 시리즈를 또 내놓을 것 같다. 그러나 멍게 오류를 인정하지 않고 내놓는 카드가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 그렇게 녹록한 사회가 아니다.

김수정 정치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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