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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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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미국 포브스 선정 400대 부자와 그린란드 에스키모인, 아프리카 마사이족 사이엔 연결되는 끈이 있다. 바로 세계에서 행복도가 가장 높은 집단이라는 거다. 미국 일리노이대 설문조사 결과 부자들과 에스키모인의 평균 행복 점수가 80점으로 같았고, 마사이족이 78점으로 바로 뒤였다. 행복의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속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비교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충분히 만족해하며 지금의 삶을 즐기는데 에스키모인·마사이족인들 행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비교 잣대나 기준이 행복을 좌우하기도 한다. 동메달이 은메달보다 더 행복한 게 단적인 예다. 지난해 미국 노스웨스턴대 연구진이 은·동메달리스트의 표정을 분석해 행복 점수를 매기는 실험을 했다. 동메달리스트는 10점 만점에 7.1점으로 환희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반면 은메달리스트는 고작 4.8점으로 환희와는 거리가 멀었다. 비교 기준이 은메달리스트는 ‘금메달’이고 동메달리스트는 ‘노메달’이니 그럴밖에. 결과와 행복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이유다.

 행복의 조건이 돈, 건강, 종교만은 아닐 터다. ‘행복 심리학’의 대가 에드 디너 일리노이대 교수는 ‘매우 행복한 사람’이란 논문에서 ‘관계’를 행복의 요체로 꼽았다. 222명을 대상으로 행복도를 측정해 상위 10%의 특성을 나머지 사람들과 비교한 결과다. 최고로 행복한 사람은 혼자 있는 시간이 적고,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유지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거다.

 한국 성인 남녀들이 주관적으로 평가하는 본인의 행복 점수는 68.1점이라고 한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 한국갤럽이 10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어제 발표한 내용이다. 낙제점에 가까운 점수란 평가다. 2006년 1634명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의 69.1점보다도 1점이 낮아졌다. 이러니 지난해 미국 갤럽이 내놓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 순위’에서 한국이 155개국 중 겨우 56위에 그친 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 10대는 공부 스트레스, 20대는 취업 스트레스, 30~40대는 직장·주부 스트레스, 50대 이상은 고독·질병 스트레스에 시달리니 왜 안 그럴까.

 지난해 학술대회 참석차 방한한 행복 전문가 디너 교수가 한 말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좀 더 행복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거다. 이참에 주위의 작은 행복부터 하나씩 찾아보는 것은 어떨는지. 어차피 행복은 추구하는 게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라는데.

김남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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