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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예고 한 ‘첨단업종 RFID’ 실무자 모르게 슬그머니 제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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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무선인식시스템(RFID)이 알게 모르게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왔지만, 진정한 파괴력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안현호 지식경제부 제1차관의 말이다. 지난달 9일 RFID 육성전략을 보고하는 자리에서였다. 고속도로 하이패스, 교통카드, 스마트칩 출입증, 주차관리 시스템 등 우리 생활 현장 곳곳에 RFID 기술을 상용화시켜 산업계의 새로운 먹을거리 영역으로 키우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7대 핵심업종에 올해만 450억원을 투입해 집중 육성하고 2015년까지 50개의 RFID존을 만들겠다는 구체적 실행계획도 내놨다. 계획대로 하면 2015년까지 4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2조원대의 시장이 만들어진다는 장밋빛 전망도 제시했다.

 지경부는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난달 초 RFID 산업을 첨단산업으로 지정하겠다고 입법예고까지 마쳤다. 첨단산업으로 지정되면 수도권 내에서 공장 신·증설을 막는 규제를 받지 않는다. 물류비 절감은 물론이고, 중소기업의 가장 큰 애로사항인 고급인력 확보에 숨통이 트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경부는 지난달 말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산업집적 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안을 관보에 싣고 곧바로 실행하려던 당초 계획을 슬그머니 취소했다. 대신 2개 업종, 4개 품목을 첨단산업 추가지정 대상에서 제외한 개정안을 다시 입법예고했다. 최중경 장관이 “좀 더 의견수렴을 해보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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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작 RFID 실무 담당자들은 이 같은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지경부의 한 관계자는 “당장은 물량이 많지 않아 문제가 없겠지만 공장 증설이 미뤄지면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며 “내부적으로 경위 등을 파악해 보겠다”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빠진 품목은 RFID를 포함해 액체형 바이오매스, 발광다이오드(LED) 융합 무선통신장치, 무선 홈네트워크 등 네 가지다.

 실무 담당자들도 모르게 첨단업종이 바뀐 것에 대해 지경부는 추가 의견수렴의 필요성을 들고 있다. 하지만 진짜 바뀐 이유는 정치권과 지방의 반발이었다. 이들은 수도권에 이런 산업의 공장이 신·증설되면 지방 산업이 공동화한다고 주장했다. 4일에는 ‘국가균형발전을 촉구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국회의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지경부의 개정안을 저지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지난주 동남권 신공항이 백지화된 것에 따른 반발 성격도 있다. 여기에 참여한 의원은 한나라당 소속 김성조 기획재정위원장을 비롯해 김태환·배영식·이명규·권경석·정갑윤·김종훈·이종혁 의원과 민주당 홍재형 국회부의장과 이낙연·이용섭·조경태 의원, 자유선진당 이상민 의원 등 13명이다. 이들은 “개정안이 시행돼 수도권에 투자가 집중되면 지역의 성장잠재력이 훼손되고 결과적으로 국가균형발전을 심각하게 저하시킬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첨단업종 선정마저 정치논리에 휘둘리는 것에 대한 우려가 많다. 한국경제연구원 조성봉 기업연구실장은 “첨단산업일수록 속도 경쟁이 격렬하기 때문에 수도권에 가까워야 한다”며 “당초 첨단산업으로 지정하려 했다면 이런 점을 충분히 고려했을 텐데 정치논리를 좇아 손쉽게 뒤집는 것 같아 정말 안타깝다”고 말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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