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분당 우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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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경기도 성남 분당을 지역이 독립적인 국회의원 선거구가 됐다. 이때부터 한나라당은 압승 행진을 해 왔다. 3년 전 18대 총선에선 한나라당 임태희 후보(현 대통령실장)가 71.1%나 되는 득표율을 올렸다. 한나라당이 야당일 때나 여당일 때나 이곳에서 10년 가까이 몰표를 받았기 때문에 당에선 ‘천당 아래 분당’이란 말까지 생겨났다.

 이곳에서 한나라당에 승리를 만끽하게 했던 유권자들을 일컫는다면 ‘분당 우파’라고 할 수 있다. 1989년 분당 신도시 건설계획에 따라 정착한 보수 성향의 주민들이다. 학력과 소득이 비교적 높고 서울 ‘강남’보다 더 ‘친한나라당’적이다. 그들은 좌파성향에 강한 거부감을 보여왔다. 2007년 17대 대선에서 민주당 정동영 후보는 이곳에서 16.9%밖에 득표하지 못했다.

 그런 ‘분당 우파’가 27일 실시되는 성남 분당을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앞두고 흔들리는 듯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와 손학규 민주당 대표에 대한 1∼2일의 중앙일보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강 전 대표(34.3%)와 손 대표(31.3%)는 오차범위(±3.1%) 이내에서 박빙의 접전을 벌이고 있다. 다른 조사 결과도 비슷하다. 민주당에선 “과거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승리)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한나라당에서는 “자칫 재·보선에서 0대 3으로 전패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성남 분당을 분위기가 이처럼 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명지대 윤종빈(정치학) 교수는 5일 “ 중산층·전문직이 많이 사는 성남 분당을 주민 가운데 집값 하락이나 물가고로 살기 어렵다는 사람이 늘어났다”며 “이들의 불만이 여론조사에 반영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남 분당을에선 최근 전셋값이 많이 오른 반면 아파트가격은 크게 하락했다. 지역의 부동산업자들에 따르면 정자동의 30평대 주상복합아파트 가격이 9억원에서 8억원 정도로 떨어졌다고 한다. 분당구 수내동 박한나(25·주부)씨는 “18대 총선 때는 한나라당을 찍었으나 이번엔 민주당을 찍겠다”고 했다. “2억원 하던 전셋값이 1년 사이 2억6000만원으로 올랐다. 나는 원래 우파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이 좀 바뀌었다. 한나라당 소속이던 전직 성남시장(이대엽·76)이 비리를 많이 저지른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수내동에서 25년째 살고 있는 유윤형(44)씨는 “한나라당에서 계속 국회의원이 된 데다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번 바꿔 보자’는 분위기가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베드타운’이던 분당구엔 지난해에만 인터넷 포털업체인 NHN과 인터넷기업 네오위즈, 디지털 가전기업 휴맥스 등이 들어왔다. 이 같은 정보기술(IT) 업체의 입주가 지역정서를 바꾸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서울에서 분당으로 출근하는 20~40대 직장인들이 지역여론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분당 우파’가 좀 흔들려도 결국은 한나라당이 선택받을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 “꼭 투표하겠다”고 한 응답자들은 손 대표(33.7%)보다 강 전 대표(44.7%)를 많이 지지했다. 정자역 인근에서 만난 김현숙(55·주부)씨는 “물가가 올라도 우리 또래는 항상 한나라당”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연세대 김호기(사회학) 교수는 “승부는 20~40대가 얼마나 투표 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그간 우파 성향으로 분석됐던 분당의 20~40대에 대한 조사(중앙일보 4월 4일자 1, 6면)에서 손 대표는 강 전 대표를 앞섰지만 이들의 투표율이 변수로 작용할 것같다.

신용호 기자, 성남=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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