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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디지털 올 컬러 만화 〈슈퍼 삼국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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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화 : 허웅
총감독 : 김산호
출판사 : (주)한국뉴턴

가을이면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하여 '책읽기를 권하던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특히나 요즘은 수리적인 감각보다는 EQ라고 하는 지적능력을 더 높이 평가하고 있기 때문에 책을 선택함에 있어서도 단순히 글로만 이루어진 따분한 책보다는 화려한 그림이나 재미난 만화가 첨가되어 예술적인 감각까지 덧붙이는 일명 '금상첨화'라고까지 부를 수 있는 그런 책들을 선호하고 있다.
하지만 하루에도 수백권씩 쏟아져 나오는 출판물 시장에서 그런 조건에 꼭 맞는 책을 구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교훈적이며 오랜 시간 베스트셀러로 남아 많은 사람들에게 지혜와 지략 그리고 교훈을 남길 수 있는 책을 들라고 한다면 사실 손가락을 몇 개 펴지 않아도 될 정도로 극히 적다.

그런데 지난 7월말 춘추전국시대 같은 국내 출판 시장에 우리나라 SF 만화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라이파이〉의 작가 김산호씨가 총감독을 맡은 〈수퍼 삼국지〉가 3년여의 작업기간, 13억이라는 제작비, 전면 디지털 제작 출판물 등의 화려한 수식어를 붙이고 '한국뉴턴'에서 출간되었다.

"국내에 나와 있는 삼국지도 성인물로는 국내 유명 만화가나 소설가가 쓰고 그린 책들이 있지만 청소년들이 읽을 수 있는 삼국지들은 대부분이 단행본이거나 일본에서 제작된 것인데 흑백으로 그려진 몇 장의 그림과 엉성한 글로 쓰여져 원작에서 거의 벗어난 형태였다. 우리는 그런 제품과의 차별화에 주안점을 두고 원작에 가까운 책을 만들기 위해 각기 다른 800여명의 등장 인물 캐릭터를 만들어 낸 다음 64권 전편에 걸쳐 골고루 실었다. 최대한 각기 다른, 독창적인 인물 캐릭터를 살리려고 노력했으며 64권 전부를 올 칼러로 제작했기 때문에 색체의 화려함이 뛰어나고 역사적 고증을 거친 시대 복장등이 그림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 자료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에서도 삼국지는 꽤 다루는 편이지만 이렇게 방대한 자료로 원작에 가깝게 나온 만화는 세계적으로 우리밖에 없다. 이미 일본의 유명 만화 전문 출판사 '오쿠라 출판'과도 독점 계약을 맺은 상태이고 조만간 미국, 유럽, 대만 시장까지 진출할 예정"이라고 박기영 부장은 말한다.

한편의 영화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한다. 애니메이션은 아니지만 애니메이션의 완성도에 못지 않은 작품. 장인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슈퍼 삼국지〉를 주요 인물 캐릭터의 성격에 초점을 맞춰 소개한다.

▶ 유비 (161-223)
촉나라 황제. 한나라 중산정왕의 후손.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머니와 함께 짚신을 팔아 생계를 꾸려 나가다가, 184년 관우, 장비와 의형제를 맺고 황건적을 토벌하는데 참가했다. 그 뒤 동탁을 토벌하는 의병 연합군에 참여했으며, 194년 서주 태수가 되었으나 여포에게 패하여 조조에게 몸을 의지했다. 원소가 조조에게 패한 뒤 다시 유효에게 의지하기 위해 형주로 도망가 있는 동안 제갈량을 군사로 맞아 들였다. 208년 형주를 차지한 뒤 214년에는 익주를 빼앗고 219년에는 한중까지 차지하여 한중왕이 되었다. 이듬해 한나라가 멸망하자 촉나라를 세워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 뒤 관우의 원수를 갚기 위해 대군을 일으켜 오나라를 치러 나섰으나 222년 육손에게 패하여 백제성으로 피해 가 있다가 제갈량에게 뒷일을 부탁한 뒤 세상을 떠났다. 인덕이 높은 지도자로 추앙 받았는데 키는 약 173cm이고 무기는 칼을 주로 사용했으며 백마를 즐겨 탔다.

▶ 조조 (155-220)
위나라 태조. 스무살에 벼슬길에 올라 황건적의 난을 집압하는데 나섰다. 189년 진류에서 군사를 일으켰으며 다음해 여러 제후들과 동탁을 토벌하는데 의병 연합군을 이끌었다. 192년 연주를 평정하고 청주 군사들을 수하에 거두었으며, 196년 당시 황제인 헌제를 모시고 허도로 도읍을 옮겨 권력을 잡았다. 208년 적벽에서 손권과 유비의 연합군에 패해 그 뒤부터는 북방을 안정시키는데 힘썼다. 213년 위공을 거쳐 216년 위왕에 올랐으며, 220년 예순여섯살로 세상을 떠났다. 뒷날 아들인 조비가 위나라를 세우고 황제의 자리에 올라 조조를 '무제'라 칭했다. 황제인 헌제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복 황후를 죽여 권력을 마음대로 휘둘렀기 때문에 '치세의 능신이요, 난세의 간웅'이라 불리며 간웅의 전형으로 꼽혀왔지만, 최근들어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지도자로 평가받으로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 키는 약 161cm 정도이고 시를 쓰고 인재를 모으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으며 '외천검'이라는 보검과 창을 무기로 사용했다.

▶ 장비 (167-221)
촉나라 장수. 184년 유비, 관우와 의형제를 맺고 황건적 토벌에 참가했으며, 유비가 안희현의 현위로 있을 때 시찰 나온 독우를 두들켜 팼다. 196년 유비가 없는 틈에 술체 취해 행패를 부리다가 여포에게 서주성을 빼앗겼으며, 200년 유비군이 조조의 공격을 받아 흩어지자 망탕산에 숨어 산적질을 하다가 관우, 유비와 재회했다. 208년 장판과 싸울때 장판교에서 조조군 10만 명을 혼자 막아내어 용맹을 떨쳤다. 213년 제갈량과 함께 익주를 정벌할 때 마초와 겨루어 우열을 가리지 못한 승부를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유비가 한중왕이 된뒤 오호 대장군 가운데 우장군에 임명되었으며 관우가 죽은 뒤 오나라를 치기 위해 출정 준비르 하다가 술에 취해 부하 장수에게 행패를 부리고 잠이 들었다가 그들에게 피살당했다. 키는 약 184cm에 달하고 긴 창인 '장팔사모'를 무기로 사용했다.

▶ 관우 (162-219)
촉나라 장수. 184년 유비, 장비와 의형제를 맺고 황건적 토벌에 참가했으며 191년 동탁을 토벌하는 의병 연합군에 가담하여 적장 화웅을 베어 용맹을 떨쳤다. 200년 유비가 조조에게 패한 뒤 한동안 조조의 밑에 들어가 았으면서 안량, 문추를 벤 뒤 다섯 관문을 톨파하며 여섯 장수의 목을 베고 유비에게 돌아갔다. 208년 적벽 대전 때 제갈량의 명을 받아 조조를 제거하려 했다가 살려 보냈으며 214년부터 형주를 지키게 되었다. 219년 유비가 한중왕에 오른 뒤 오호 대장군이 첫째인 전장군이 되었다. 번성을 공격하여 중원으로 진출하려 했으나 오나라에게 형주를 빼앗긴 채 맥성에서 패하여 양아들 관평과 함께 처형 당했다. 문무를 겸비한 의리의 표본으로 받들어지고 있으며, 긴 수염 때문에 '미염공'이라고 불렸다. 키는 약 207cm이고 17.8kg이나 되는 '청룡 언월도'라는 긴 칼을 사용했으며, 여포가 타던 '적토마'를 타고 다녔다.

▶ 제갈량 (181-234)
촉나라 승상. 207년 삼고초려의 예를 다한 유비의 정성에 감복하여 그의 군사가 되었다. 208년 조조의 공격을 받아 유비군이 형주에서 쫓겨 나오게 되자 오나라에 찾아가 동맹을 맺는데 성공했으며 적벽 대전에서 화공법을 써 조조군을 격파했다. 209년 주유와 싸워 형주를 차지 했으며, 그 뒤 유비를 도와 서촉과 악주, 한중을 차례로 점령했다. 221년 유비가 촉나라 황제가 되자 승상의 지위에 올라 나라일을 도맡아 처리했으며 유비가 임종할 때의 부탁대로 유선을 즉위시켜 어진 정치를 폈다. 유비의 뜻을 이어 한나라를 부흥시키기 위해 여섯 차례에 걸쳐 중원으로 진출하기 위해 북벌을 단행하여 위나라와 싸웠으나 오장원에서 사마의의 저항에 부딪쳐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 정군산에 묻혔다. 탁월한 군사적 재능과 정치적 수완을 지닌 사람으로 지모와 충성의 화신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키는 약 184cm

▶ 조자룡 (158-228)
촉나라 장수. 처음에는 원소와 공손찬을 섬기다가 유비의 부하가 되었다. 208년 장판과 싸울 때 단신으로 10만 조조군 사이를 누비며 감부인과 아두를 구해 천하에 그 이름을 떨쳤다. 유비와 제갈량이 오나라에 다녀올 때면 경호를 맡았으며 212년 손부인이 오나라로 돌아갈 때 장강을 막고 아두를 데려가지 못하게 했다. 유비가 한중왕이 된 뒤 오호 대장군의 한 사람이 되었으나 관우가 죽은 뒤 오나라를 치려는 유비의 뜻에 반대했다. 유비가 죽은 뒤 제갈량의 남만 정벌에 참여했고 227년 제갈량이 단행한 북벌에도 참여하여 한덕 부자를 죽이는 공을 세웠으며 촉군이 가정에서 패했을 때는 한 사람의 군사도 잃지 않고 후퇴하는 능력을 발휘했다. 진창성으로 출전하기 직전에 늙고 병들어 죽었다. 유비와 제갈량, 유선을 섬기는데 한치의 빈틈도 없어 충성심의 표본으로 받들어진다. 키는 약 184cm로 창을 잘 썼으며 조조가 쓰던 청홍검이라는 보검을 지녔다.

▶ 손견 (155-191)
174년 허도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했으며, 184년 황건적을 토벌하는데 참가한 공을 인정받아 별부사마에 임명되었다. 뒤에 당사 태수가 되어 구성이 일으킨 반란을 진압했다. 190년 동탁을 토벌하는 의병연합군에 참가하여 사수관을 공격했으며 이듬해 낙양에 들어가 전국 옥새를 손에 넣었다. 형주의 유표와 싸우다 복병을 만나 전사했다. 칼과 활에 모두 능했다.

▶ 황충 (148-222)
촉나라 장수. 원래는 유표의 부하 장수였다가 뒤에 한현의 밑에 들어가 있었으며 장사에서 관우와 맡붙어 싸운 뒤 그의 인품에 반해 유비의 부하가 되었다. 한중에서 위나라와 싸울 때 하후연을 베는 등 많은 공을 세웠으며 219년 유비가 한중왕에 오른 뒤 오호 대장군 가운데 한사람으로 임명되었다. 222년 유비가 오나라를 치러 나섰을 때 선봉을 맡아 싸우다가 마충이 쏜 화살에 맞아 죽었다. 활쏘기에 뛰어난 솜씨를 지니고 있었으며 칼을 쓰는데도 능했다.

▶ 마초 (176-226)
촉나라 장수. 아버지와 동생이 조조에게 죽임을 당한 뒤, 한수와 함께 군사를 일으켜 장안을 치러 나섰으나 조조에게 패하여 한중의 장로에게 몸을 의지했다. 214년 유장의 요청으로 가맹관에 있던 유비를 치러 나섰으나 이회의 설득을 받아 유비에게 투항하여 그의 부하가 되었다. 유비가 한중을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219년 유비가 한중왕에 오른 뒤 오호 대장군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221년 유비가 오나라를 치러 나설 때 위연과 함께 한중을 지켰다.

▶ 손권 (182-252)
오나라 황제, 손견의 차남. 200년 손책의 뒤를 이어 강동을 통치했다. 208년 황조를 토벌했으며 유비와 손잡고 조조군을 적벅에서 대파했다. 208년과 215년 두번에 걸쳐 합비성을 치러 나가 조조와 싸우는 한편, 형주를 빌려준 것을 놓고 오랫동안 유비와 대립했다. 219년 조조와 손잡고 관우를 쳐 형주를 빼앗아 장강의 중, 하류 유역을 제패했다. 222년 육손을 기용하여 이룡에서 유비군을 대파했지만 그 뒤 촉나라와 동맹을 맺고 위나라와 대립했고 오나라를 세웠다.

▶ 여포 (?-198)
후한의 장수. 정원의 양자로 있었으나 뒤에 그를 죽이고 동탁의 양자가 되었다. 192년 왕윤이 꾸민 연환계에 빠져 동탁을 죽였으나 뒤이어 이각과 곽사에게 장안을 빼앗긴 채 원소와 장막에게 의지하며 떠돌아 다녔다. 195년 서주 태수로 있던 유비에게 의지하여 소패에 머무르다가 이듬해 서주를 빼앗고 유비를 쫓아낸 뒤, 원술, 조조와 대립했다. 뒤에 조조에게 패하여 사비성에 틀어박혀 있다가 부하들의 배신으로 조조에게 붙잡혀 처형당했다. '방천화극'이라는 무기를 사용했고,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는 '적토마'를 타고 다니며 아무도 당할 자가 없을 정도로 뛰어난 무에를 자랑했다. 배신을 밥먹듯이 하는 간옹으로 일컬어진다.

▶ 동탁 (?-192)
원래는 변방의 하동 태수였으나 184년 황건적을 토벌하는데 참가한 공으로 서량 자사가 되었다. 189년 대장군 하진의 요청에 따라 낙양으로 들어온 기회를 틈타 소제를 패하고 헌제를 세워 권력을 잡았다. 다음 해 원소, 조조 등이 구성한 의병 연합군의 공격을 받자 191년 장안으로 도읍을 옮겨 버렸다. 자칭 태사가 되어 온갖 폭정을 저질러 백성들의 많은 원망을 받았으며 왕윤의 연환계에 빠져 초선을 두고 여포와 대립하다가 여포와 왕윤에게 죽임을 당했다. 항복한 포로들의 손발을 자르고 눈알을 빼며 솥에 넣고 끓여 죽으면서도 태연히 술을 마셨던 냉혹한 인물이다.

▶ 손책 (175-200)
손견의 장남. 191년 손견을 따라 유표와 싸웠고 손견이 죽은 뒤 원술에게 의지하고 있다가 전국 옥새를 맡기고 군사를 빌려 196년 유요와 엄백호를 치고 강동을 지배하여 '소패왕'이라 불렸다. 뒤에 원술과 결별하고 198년 조조와 손을 잡고 오후로 임명되었다. 200년 조조와 내통하려던 허공을 처형했는데 허공을 따르던 자의 습격을 받아 중상을 입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자신을 조롱하는 우길을 죽였는데 그의 망령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났다. 창을 잘 썼으며 천하의 미녀로 '강동의 이교' 가운데 하나인 대교를 부인으로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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