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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신공항’ 약속 말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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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이명박(MB) 정권이 동남권 신공항 문제를 처리한 양태를 보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같은 성과가 믿어지지 않는다. 국토연구원은 이미 2009년 경제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도 정권은 시간만 질질 끌어 혼란만 잔뜩 빚어놓았다. 공약에 관한 한 MB는 매우 불완전한 지도자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MB가 불완전하다고 해서 박근혜 전 대표가 완전한 건 아니다. 그도 답해야 할 의문이 많기 때문이다. MB처럼 박근혜도 2007년 경선 때 신공항을 공약했다. 그런데 박 후보에게는 신공항 같은 대형개발을 다룰 전문가 팀이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박 후보는 무슨 경제·토목·과학 지식으로 그렇게 중요한 사업을 공약했는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적극 검토했고 일부 전문가가 찬성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이 책임 있는 공약의 충분한 근거는 되지 못한다.

 만약 집권했다면 ‘박근혜 대통령’도 공약 이행 여부를 고민했을 것이다. 고속철도(KTX) 때문에 상황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공항의 필요성에서 가장 핵심적인 건 여객·화물 수요다. 공항을 아무리 화려하게 지어 놓아도 이게 부족하면 미주·유럽 항공사가 취항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 이 부분의 입지평가에서 7.2점 만점에 가덕도는 2.2, 밀양은 2.0을 받았다.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박근혜의 주장은 무엇인가. 평가위가 틀렸다는 것인가. 자신이 대통령이라면 평가위 결론이 달랐을 것으로 믿는가. 아니면 평가위 결론과 상관없이 ‘미래의 경제성’을 위해 신공항을 강행했을 것이라는 건가. 박근혜는 “장기적으로 신공항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장삼이사(張三李四)도 할 수 있는 얘기다. 나라가 계속 커지면 언젠가는 필요할 수 있다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문제는 정책판단의 시점이다. 평가위는 2027년을 기준으로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도 박근혜는 더 먼 미래를 위해 자신의 임기 중에 신공항을 시작했을 거란 얘기인가. 박근혜는 이 모든 문제를 놓고 평가위와 토론할 자신이 있는가.

 박근혜가 집권했어도 합리적인 대통령이라면 상황 변화(KTX)를 인정했어야 한다. 그리고 나라 전체의 이익에 맞는 선택을 했어야 할 것이다. 정치인·주민이 아니라 과학자·전문가의 판단에 따라 결정해야 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도 MB처럼 ‘사과’ 기자회견을 했을지 모르는 것이다.

 여론조사로만 보면 박근혜는 지금 청와대에 가장 근접해 있다. 만약 MB를 넘어서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박근혜는 달라져야 한다. 무엇보다 대선 때 대형개발을 공약으로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 신공항을 다시 공약하거나 또 다른 대형개발을 들고나오면 그도 MB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많은 지지자들은 박 전 대표의 신공항 발언을 이해한다고 한다. 대구 출신이자 사업을 공약했던 사람으로서 그런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지자는 아니지만 MB도 이해한다고 했다. 그러나 박근혜는 달랐어야 하지 않을까. 더 합리적이며 더 신중하게 국익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말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국민 여러분, 특히 동남권 주민 여러분. 수년 전에 비해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우리는 입지평가위의 판단을 존중해야 합니다. 전문가 판단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국정을 운영하겠습니까. 경선 때 똑같이 신공항을 공약했던 사람으로서 대통령의 불가피한 선택을 이해합니다. 다만 대통령께서 이런 결정을 일찍 내렸더라면 혼란은 훨씬 덜했을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 동남권을 포함한 지방의 발전을 계속 고민할 것입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보면 신공항의 필요성은 다시 커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미래 과제로 가져가야 합니다. 그렇지만 대선 공약으로 못 박는 건 피해야 합니다. 신공항을 교훈으로 삼아 대형개발 공약은 이제 자제해야 할 것입니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