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를 홀로서게 하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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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호 15면

그동안 정신과 의사들이 “사교육은 득보다 실이 많다”고 말해도 끄떡 않던 부모들이 ‘성인이 된 후의 소득이 사교육보다는 혼자 공부하는 시간과 비례한다’는 KDI의 통계에는 주목을 좀 하는 것 같다. 실제로 사교육으로 뺑뺑이를 돌고 있는 아이들 대부분은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다. 어머니들이 알아서 시간표를 짜주니, 인생도 어머니가 대신 계획하면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과제가 주어져도 매뉴얼부터 찾는다. 시키는 것만 하는 이들에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는 태도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물질적 부족과 불편” “상상하고 생각할 수 있는 여가시간”과 “끈기”가 없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새롭게 헤쳐 나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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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이 동기를 갖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현실적으로 사교육비 때문에 베이비부머들이 노후에 빈곤층으로 전락한다는 점이 더 심각하다. 동거는 하지 않지만, 늙으면 자녀들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겠다는 허황된 기대를 하는 부모가 아직 많다.

강의하다 물어보면 늙은 부모를 부양하겠다는 젊은이들은 5%도 되지 않는다. ‘묻지마 조기교육’의 열기는 빨리 가라앉았는데, 사교육으로 부모재산을 소진한 결과를 절감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모양이다. “부모 모실 생각이 없으니 과외 강요하지 마라”는 당돌한 중·고등학생도 많다.

그러나 여전히 죽을 때까지 자녀들 인생을 AS해 준다는 부모도 있고, 부모 돈으로 사는 것을 당연시하는 젊은이도 많다. 부모들이 죽고 난 후 자녀의 노후와 장례준비는 어떻게 하시는지. 그런 집일수록 남모르는 갈등도 많다. 돈과 집을 물려주는 순간, 부모·자식 관계는 채무자와 채권자로 변한다. 채무자는 채권자를 싫어하고 멀리하고 싶어 한다. 선진국에서 자녀 공부에 집착하지 않고 유산도 덜 물려주는 것은 우리보다 이타적이어서가 아니라 공들여 봤자 소용없음을 경험한 탓이다.

그럼에도 남들 다 그러니까, 공부 시키고 번듯하게 물려주지 않으면 원망 듣는다고 불안해하는 사람이 아직 많다. 마음속에는 “내 아이가 공부 못하면 자존심 상하고 무시당할 텐데…” “공부 안 시키면 아이도 나도 패배자가 될 거야” 같은 불안이 숨어 있다. 사실 그런 부모만 비난할 수는 없다. 아이의 성적을 어머니의 능력과 연결시키고, 정보 제공이라며 은근히 사교육을 부추기는 매스컴은 자기실현이 차단된 보통 어머니들의 좌절감과 소외감을 더 아프게 자극한다.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가족주의, 부모와 자녀가 서로 독립된 존재라는 것을 부정하는 원시적 태도, 물신숭배적 경쟁지상주의의 합작품이다.

사교육을 꼭 시키고 싶으면 아이에게 “네가 무엇을 하고 싶으냐” “추가로 들어간 교육비는 어떻게 갚을 것이냐”고 먼저 물어보라. 목표, 동기도, 책임감도 없는 아이에게 투자해봐야 결과는 뻔하다. 어려서부터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훈련이 먼저 돼야 한다. 아쉬울 게 없어 인내심을 배우지 못한 좋은 집안 젊은이들의 무기력을 접한 배우자나 기업체 임원들이 하는 얘기다. 설령 자녀가 성공한다 해도, 늙은 부모에게 남는 것은 자녀와의 소중하고 행복한 추억뿐이다. 그 이상을 자녀와 며느리, 사위에게 바라다 상처만 입고 쓸쓸한 노후를 보내는 노인을 많이 만나본 탓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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