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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도 봄은 오는가] 인터뷰 _ 최근 망명한 北 엘리트 관료, 권부의 속내를 말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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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왼쪽)과 평양화초연구소를 시찰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3월 5일 이 사진을 보도하며 정확한 시찰 날짜는 밝히지 않았다.

월간중앙 단순한 듯 보이지만 북한만큼 복잡한 나라도 없다. 수읽기가 수월치 않다. 중동 민주화 바람은 어떻게 생각할까? 최근 망명한 관료 출신 탈북자를 만나 북한 수뇌부, 나아가 엘리트 그룹의 속셈을 엿봤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수학자들의 오랜 수수께끼였다. 이를 증명하는 데 35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북한의 행동 역시 이런 난해한 수학을 연상시킨다.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려 노력해보지만 무슨 꿍꿍이인지 알 길이 없다.

최근 사례만 봐도 그렇다. 지난해 평작이었다고 공표했는데도, 뒤늦게 식량이 턱없이 부족하니 도와달라고 전 세계에 호소한다. 그러니 북한을 분석할 때 ‘제 논에 물 대기’ 식 추측이 난무한다.

공식적으로 국내 거주 탈북자가 2만 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관료 출신자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최근까지 북한 체제를 경험한 사람은 극히 소수다. 3월 14일 낮, 어렵사리 그중 한 명을 만났다. 신원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북한 엘리트 관료 출신 A씨는 언론과의 첫 접촉에 다소 긴장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이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평양 억양의 점잖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빨라졌다. 사이사이 ‘셀폰(cell phone)’ ‘인게이지먼트(engagement)’ 등 영어 단어를 자연스레 섞어가며 이야기하는 모습이 여느 탈북자와 달리 느껴졌다.

중동 시민혁명이 계속됩니다. 일각에서는 시위가 장기화될 경우 북한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지 않을까 기대도 합니다만.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이번 사태는 1989년 동구권 형제국들이 쓰러졌을 당시와 비교하면 그리 큰 사건이 아닙니다. 가장 영향을 받기 쉬웠던 그 시기에도 북한은 꿈쩍하지 않았죠. 옛 소련의 영향권 아래 있었고, 반세기 이상 동유럽과 교역했는데도 말입니다. 소련과 KGB는 실패했지만 북한 정권은 여전히 건재합니다.”

동구권과 연이 길었던 만큼 당시 북한 엘리트 사회에서 변화가 포착되진 않았습니까?
“그쪽(동구권) 사람들과 관계가 무척 좋았습니다. 거의 매주 해당국 사람과 친선모임을 가졌죠. 양쪽에서 주고받는 초청 형태로 연설 교환행사 등을 열었죠. 연회에서 술이 어느 정도 오르다 보면 속에 품었던 보따리를 꺼내는데 별 이야기가 다 나왔습니다. 그런 반세기 이상의 역사를 가졌는데도 동구권 몰락이 북한에는 영향을 못 미쳤어요.”

“수십 만 명이 해외 사정 확인”

A씨에 따르면 북한에는 고위 간부들이 보는 ‘일일보고’ 형식의 ‘비밀통신’이 있다고 한다. 또 책임지도원(4급 상당) 이상이 접할 수 있는 정보도 상당하다고 했다. 수십 만 명의 엘리트가 비교적 자세히 해외 사정을 안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그 인원이 동구권 붕괴 소식을 거의 실시간으로 접했다”면서 “특히 가깝게 지내던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정권의 붕괴가 바로 다음날 알려져 북한 엘리트 사이에서 큰 화젯거리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 체제의 붕괴를 우려하는 분위기는 없었고, 작은 시위조차 일어나지 않았단다. 오히려 일각에서는 “동독이 무너졌으니 에리히 호네커 전 동독 서기장을 북한에 데려와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마저 등장했다고 한다.

중동 상황 역시 잘 알겠군요. 어느 순간 갑자기 북한도 무너질지 모른다고 느끼진 않을까요?
“체제를 벗어나면(탈북하면) 그런 생각이 들겠지만 안에 있는 사람은 그런 사고 자체를 할 수가 없습니다. 북한 정권의 세뇌화도 그렇고, 자신과 가족의 운명까지 모두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나 하나 실수하면 친척이나 지인을 모두 합쳐 수백 명이 고통받습니다. 그걸 아는데 불만이 있다 한들 밖으로 내비치겠습니까? 이런 사슬이 끊어지지 않는 한 북한 엘리트의 태도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는 일반 주민의 봉기 또한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이번 중동사태 역시 북한에 단 1%도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모두 같은 환경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동구권 몰락 이후 더욱 조여놨죠. 북한 인구 중 99.9%가 인터넷에 접근하지 못하는 사실이 이를 증명합니다. 또 국가안전보위부(비밀경찰) 체계가 워낙 잘 돼 있어 만에 하나 반정부 성향의 모임이 발견되면 그 즉시 잿더미로 변할 겁니다. 김정일에게 보고도 올라가기 전에 말입니다. 화염발사기 한 개 소대면 충분합니다. 아마 김정일에게 잘 보이려고 각 기관마다 먼저 제압하겠다고 서로 경쟁하듯 달려들겠죠. 이런 구조 속에서 시위는 도저히 불가능하죠.”

2008년 북한에 3세대 이동통신이 개통됐다. 사업을 주도하는 오라스콤에 따르면 평양을 기점으로 사용권역이 확대되고 있고, 최근 휴대전화도 30만 대 이상 보급됐다. A씨는 이런 디지털 소통기기의 확산이 가져올 정보 소통 가능성에도 부정적이었다.
“역시 무용지물입니다. 당국이 30만 대 모두 100% 추적할 수 있습니다. 모든 중계기지국에 도·감청 설비를 했고, 전문 도청국을 따로 둬 24시간 감시하죠. 총국과 지부를 합쳐 도청 인원만 어마어마합니다. 통화 내용에 조금만 이상한 기미가 있어도 바로 소환됩니다.”

2004년 4월 중국과 가까운 용천역에서 대형 폭발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북한 내에서 폭발사고의 원인이 ‘김정일 암살기도’라는 소문이 돌았다. 휴대전화 때문이란 판단 아래 북한 당국은 전화기를 대거 몰수하고, 이후 4년간 이동통신 체계를 전면 중단시켰다. 이를 두고 A씨는 “당시 도청이 제대로 안 돼 그런 조치를 취했다”면서 “사실 용천역 사건의 원인은 중국 공안(또는 군부)의 물자를 실은 열차가 들어오다 폭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中 공안부장 방북은 약속된 것”

최근 평양에 호위총사령부 소속 탱크 수십 여 대를 추가 배치했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중동 민주화 시위로 수뇌부가 긴장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사정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 같습니다. 호위사는 여러 특수지역에 탱크를 숨겨놓습니다. 인근 거주민은 그런 사실을 대강 알죠. 1개 대대씩 꽉 들어차 있습니다. 이런 탱크들은 교체할 때마다 노출됩니다. 김정일 경호 무력이기에 신형이 들어오면 호위사에 제일 먼저 교체해주죠. 아마 이런 움직임이 정찰위성에 잡혀 그런 판단이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예민한 시기에 중국 멍젠주(孟建柱) 공안부장이 평양을 찾아, 그 해석이 분분합니다. 시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양국이 연대해 단속을 강화하려는 행보로 분석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 내용으로 오려면 공안이 아닌 정보기관 수장인 국가안전부장이 왔겠죠. 국가안전부와 북한 보위부가 막후에서 전반적인 안전 문제를 다루죠. 2009년 12월 주상성 인민보안상(경찰청장에 해당)이 방중한 데 따른 답방 성격의 방문일 뿐입니다.”

이름까지 공개하고 방문하기는 처음 아닙니까?

“그건 김정일 생일선물을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중국에서 올 만한 장관급 인사 중 적임자였죠. 중동사태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사전에 약속된 방문이었습니다. 이미 외교문서로 합의돼 있었습니다.”

몇 년 새 보수 대북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대북 전단(삐라)을 풍선에 띄워 북한 지역으로 보내는 일이 잦아졌다. 단체들은 평양은 물론 원하는 곳 어디든 전단이 흘러들어가도록 조치했다고 주장한다. 우리 군 역시 심리전 차원에서 그동안 중단됐던 전단 살포를 최근 재개했다고 알려졌다. 전단에는 이집트 시민혁명과 리비아 반정부 시위 등의 내용과 ‘세습·독재·장기정권은 망한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북한의 반발이 심해 보인다. 2월 27일 남북장성급군사회담 북측 단장(수석대표)이 “심리전 행위가 계속된다면 임진각을 비롯한 반공화국 심리모략 행위의 발원지에 우리 군대의 직접 조준격파사격이 자위권 수호의 원칙에서 단행될 것”이라는 내용의 통지문을 보냈다고 한다.

평양에도 전단이 뿌려진 적이 있다고 하는데, 관련한 소식을 듣진 못했습니까?

“군부대가 있는 전연지대(전방 지역)에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평양에 떨어졌단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삐라를 뿌렸다는 사실은 여기 와서 알게 됐죠. 북한에선 이런 일을 ‘사건화’라고 부르는데, 평양에서 사건화가 됐다면 대형 사건입니다. 엘리트들이 모를 리 없습니다.”

북한 주민에게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고들 합니다만.

“삐라 도착 즉시 정규군이나 민방위를 총동원해 수거해버립니다. 훈련이 아주 잘돼 있습니다. 총검으로 찍으며 돌아다니는데 금방입니다. 다 모아서 불태워버리죠. 때문에 사전에 공개하고 삐라를 뿌리면 효과가 없습니다. 모아서 불태우기 전에 한 사람이라도 더 읽게 하려면 말입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요사이 북한에서 한국 영화나 드라마의 인기가 높다고 한다. 한 소식통은 “거의 실시간으로 우리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면서 “<시크릿가든>을 본 주민이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고 물을 정도라고 한다”고 말했다. ‘북한판 한류’인 셈이다. A씨 역시 그런 분위기를 전했다.

“미국 영화, 일본 영화도 많이 들어옵니다. 하지만 평양 엘리트들은 한국 드라마를 본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습니다. 당국 역시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오히려 김정일이 간부들에게 DVD를 선물할 정도입니다. 고위층의 눈에는 단순한 흥밋거리일 뿐입니다. 자기 지위가 박탈당할 걸 뻔히 아는데 동요하겠습니까? 물론 일반 주민이 볼 때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평양의 엘리트는 사정이 다르단 이야기입니다.”

남한의 정치·경제 실정도 접합니까?

“언급했던 ‘비밀통신’에 그런 내용이 상당히 많이 등장합니다. 가령 남한의 비중 있는 인사가 방북하면 사전에 시시콜콜한 신변 문제까지 묶어 정보를 돌립니다. 과거의 행적은 물론 저술 내용, 비리 사실까지 언급돼 있죠. 참고하라고 줍니다. 대한민국의 재미있는 사건은 거의 모두 다 나온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단순 흥미대상으로 만들지는 않을 텐데요.

“물론입니다. 남한 주요 대기업의 동향 등 경제 상황도 알리는데, 각 기관 사람들이 대책을 만드는 데 요긴하게 쓰입니다. 일례로 남한 기업이 중국에 어떤 투자를 하는지 등을 판단하고 ‘사업’에 이용하라고 지시합니다.”
이 대목에서 A씨는 대표적인 남북경협 사업인 개성공단을 보는 북한의 엘리트의 시각도 소개했다.

경기도 파주 도라전망대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개성공단, 반대파 많았다”

“개성공단의 경우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곳(공단 조성 지역)이 북한의 최전선 지대이기 때문이죠. 그런 지역을 내주는 게 말이 되느냐는 생각을 가진 반대파가 많았죠. 남한에 내주기로 결론 나자 ‘김정일이 술 마시고 결정했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정도였습니다. 또 ‘이명수(국방위원회 행정국장, 대장)가 잘못 보좌한 책임이 크다’는 말도 많았고요. 개성공단이 문을 닫으면 해당 지역의 특수부대를 이동시키면서까지 자리를 내준 군부 내에서 반발이 심할 겁니다.”

이어 그는 “북한이 전략적 요충지를 내주며 기대한 수익이 최소 수십만 달러에서 최대 100억 달러에 이르는데 현 상황을 보면 괴리가 있다”면서 “앞으로 군사적 손실이 보전되지 않으면 기회를 봐서 문을 닫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에 따르면 지역 특성상 개성공단 근로자 중 상당수가 군인 가족이라고 한다. 즉 이 일대 군인의 생계 문제와도 직결돼 있다. 개성공단에 문제가 생길 경우 찬성파의 책임론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었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이후 배급사정이 극도로 악화돼 평양마저 배급이 원활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요즘도 식량 문제는 늘 거론되고요. 그간 엘리트들도 고충을 겪었을 법합니다만.

“고난의 행군기에도 농사는 지었습니다. 자체 수확량이 있었단 이야기죠. 문제는 100만 명 분 정도 식량이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그러다 보니 국경을 넘은 사람들이 있는데, 북한 전체 인구에 비하면 결코 많다고 볼 수 없습니다. 아무리 농사가 안 되도 350만t 정도는 나옵니다. 늘 그 수준으로 부족한데, 국제 원조로 처리해왔습니다. 반면 쌀이 쌓이는 집도 있었습니다. 해외를 자주 오간 제 친척만 해도 외화와 쌀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해외 체류 중에도 배급이 나왔기 때문이죠. 시장이 열릴 때 이렇게 모아둔 식량이 확 풀립니다. 그래서 화폐개혁(2009년 11월 30일)을 단행해 강제 회수한 겁니다.”

식량 부족 원인과 관련해 그는 “김정일의 방침이 문제였다”고도 지적했다.

“사실 1980년대 말부터 식량이 모자랐습니다. 김정일이 지시해 ‘특수 대상(당 기관과 군부 시설) 확장 공사’를 감행하면서 재배면적이 줄어들었기 때문이죠. 일례로 곡창지대인 동평양지역에 군부가 방대한 규모의 영화 스튜디오를 지었죠. 리(里) 면적 단위로 농지를 줄여 그런 시설이나 아파트 등을 지었습니다. 1정보당 산출량을 높게 잡아 벌어진 사안이죠. 이후 만성적인 식량 부족에 시달리게 됐습니다.”

“노동당 내 ‘장성택 라인’ 많아”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가 계속되는 가운데 북한의 대중 무역의존도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북한 정권도 돌파구가 필요할 텐데요.

“기본적으로 북핵 6자회담에서 경제제재를 풀려고 합니다. 가장 큰 관심사는 에너지난 해결이죠. 북한도 광물자원과 자체 생산시설이 있어 전기만 원활히 공급되면 어느 정도 자급자족합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잘 안 풀리다 보니 중국에 더 의존하게 되죠. 결국 중국 돈을 끌어들이려고 위화도 일대와 나선 지역을 중국에 내줘야 했습니다. 원래 북한은 서북부 지역에 미국·일본 기업을 유치하려고 했습니다. 중국은 북한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죠. 북·중 경협에도 미묘한 문제가 있습니다. 중국은 선전(深圳) 특구처럼 모두 오픈하라고 종용하는데, 북한은 일정 제약을 하겠다고 줄다리기를 합니다. 그래서 준비만 할 뿐 최종 결심을 못 하는 상황이죠.”

북한은 지난해부터 3대 후계 세습체제 구축을 본격화했다. 후계자인 삼남 김정은은 당 대표자회를 통해 공식 석상에 얼굴을 드러냈다. 이후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란 타이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자리한 사진이 연일 쏟아진다. 북한 엘리트들은 이 부분을 어떻게 바라볼까?

김정은이 후계자로 지목된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습니까?

“극히 일부만 알았습니다.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 그리고 정은과 정철(김정일의 차남)이 머물렀던 스위스 지역 파견자나 모스크바와 마카오에서 정남(김정일의 장남) 쪽 일을 보던 사람들입니다. 지역 공관에 출장을 오간 사람들도 알았고요. 하지만 관료들 대부분이 대강 짐작했을 겁니다.”

김정일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지목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믿을 사람은 아들뿐이라고 판단했을 겁니다. 한때 매제인 장성택이 실력자로 급부상하자 공개 처벌했습니다. 지방으로 쫓겨간 것만 네 번입니다. 나이 든 사람이 노동당 비판 무대에 나가 아랫사람들에게 수모를 겪었으니 김정일을 좋게 바라보겠습니까? 절대 장성택에게 넘겨줄 리 없죠. 아들 중 하나가 돼야 하는데 아시다시피 첫째·둘째는 안 되는 이유가 있잖습니까? 김정은만 남은 셈이죠.”
전문가들은 현재 장성택이 김경희(김정일의 여동생)와 함께 김정은의 후견인 역할을 한다고 분석합니다만.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김정일이 병으로 쓰러졌을 때 장성택이 많이 보좌했습니다. 물론 노동당 내 간부급 인사 중 장성택과 연결 안 되는 경우가 없어 예방책으로 국방위원회를 강화했죠. 하지만 김정은으로 가면서 국방위가 아닌 당 중앙군사위를 강조합니다. 또 당 중앙군사위 아래 당과 군부의 핵심기관을 뒀죠. 장성택이 국방위 부위원장인 데 반해 이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을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앉혔습니다. 후계구도에서 한때 이제강(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지난해 6월 사망)과 장성택이 알력 관계였다고 알려졌는데, 사실 이것도 김정일의 지시에 따랐을 뿐입니다.”

북한 정권의 미래와 관련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문제는 초미의 관심사다. 전문가들은 후계체제 구축 국면에서 김정일이 급사하면 권력 이양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 반 김정은 세력의 정권 탈취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A씨 역시 “현재 김정은의 영향력이 약하기 때문에 위험 인물을 모두 끌어안은 상황”이라면서 “죽기 전에 쳐내려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식 태자당 ‘봉화조’는 없다”

“김정일이 앞으로 4년 정도 더 살게 되면 그사이에 다 죽일 겁니다. 개혁·개방주의자인 장성택이 대표적이죠. 그와 친분 있는 사람이 당 곳곳에 있습니다. 지금은 김정은과 함께 가지만 장성택이 가장 위험한 사람입니다. 김일성 시절, 2인자인 김영주(김일성의 동생)와 항일빨치산 동료인 김동규(전 부주석) 등 반 김정일 후계세력을 쳐냈듯이 말입니다.”

김정은의 등장 이후 군부 실세인 오극렬 국방위 부위원장이 공개 석상에서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A씨는 “오극렬은 이용무(국방위 부위원장, 차수)와 마찬가지로 이미 명예직으로 돌아선 사람”이라면서 “병이 깊어 주요 국가 행사에서 제대로 서 있기 힘들어 보였다”고 말했다.

김정남이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후계 세습을 부정적으로 보는 발언을 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그를 ‘버린 아이’로 칩니다. 중국 공안에서 차단하지도 않죠. 김정일이 유부녀(성혜림, 2002년 모스크바에서 사망)를 취해 낳은 자식이어서 북한 엘리트들은 좋지 않게 봅니다. (엘리트들은) 특히 성혜림 욕을 많이 합니다. 전 남편 아이까지 낳은 여자가 권력욕에 김정일의 자식을 낳았다고요. 북한에서도 충분히 낙태가 가능한데 말입니다. 김정남은 처음부터 후계자 리스트에 없었습니다.”

김정남은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A씨는 “가정교사를 두고 정규학교를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면서 “그저 그렇게 말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김정철과 김정은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한때 김정은의 등장으로 비슷한 또래의 젊은 평양 엘리트가 주목받기도 했다. 오극렬의 아들 오세원과 강석주 내각 부총리의 아들 강태승 등이 주축이 된 ‘봉화조’라는 북한식 태자당이 존재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A씨는 잘못 전해졌다고 단언했다.

“봉화조는 보위부 소속 특수공작대의 별칭입니다. 항상 권총을 휴대하고 최전방이나 국경지대를 무사 통과하는 특별권한을 부여받은 조직이죠. 평양에서 고위층 자제들이 그룹을 만든다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김일성종합대 동창회가 가능하겠습니까? 엘리트 모임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저 몇몇이 모여 술이나 한잔 마실 뿐이죠. 10명 이상만 모여도 바로 처벌받을 테니까요. 절대적 충성을 강조하는 김정일의 작품, ‘당의 유일사상체계의 10대 원칙’이라는 초헌법적 규정을 달달 외우고 입당하는 분위기에서 그런 일은 상상하기 힘듭니다. 철저한 상호 견제와 감시가 기본입니다.”

이어 그는 후계 세습 문제로 북한이 준비 중인 ‘명예 당원제’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노동당 역사에 없던 일입니다. 당원과 비당원의 대우는 엄청 다릅니다. 사람 대접을 받으려면 당원이어야 하죠. 당원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게 많습니다. 비당원 자식이 학교에서 창피해할 정도예요. 문제는 당원은 죽을 때까지 당 생활을 해야 한다는 점이죠. 1950년대 입당자가 아직도 많이 생존해 젊은 세대가 입당하기는 간단치 않죠. 그래서 나이 든 사람들을 명예 당원으로 돌리고, 내년 1월까지 입당을 받아 ‘김정은 만세’를 부를 세대를 만드는 겁니다. 노당원은 노당원대로 좋아할 겁니다. 여러 모임에 이리저리 동원되다 보면 그만큼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니 말입니다. 그런 불만을 잠재우는 효과도 있습니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셈이죠.”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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