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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새천년 도전현장] 6. "문화=돈" 아이디어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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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 J 호이징가는 인간의 속성을 '유희적 인간' , 즉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고 갈파했다.

유사 이래 인간은 놀이와 함께 태어나 놀이와 함께 살다 죽는다는 뜻. 놀이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장 기본적인 생의 토대가 된다.

미래학자인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이런 오락이 21세기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큰 변수가 될 것이라 예견했다.

그는 "21세기에는 상상력으로 부(富)를 얻는 오락산업이 국가 경쟁력에서 제조업을 대신하게 될 것" 이라고 전망했다.

정부도 21세기에는 영화.애니메이션.게임.비디오.음반.캐릭터 등 오락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고 약속했다.

올 4월부터 발효된 문화산업진흥기본법에 따라 제조업체에 대한 직접지원, 문화산업단지 조성 등 청사진을 내놓았다.

다가올 새 천년의 화두(話頭)는 분명 '문화가 돈이 되는 시대' 다.
각 분야는 이런 시대적 흐름을 읽고 신제품 개발에 발벗고 나서 다양한 콘텐츠를 찾기 바쁘다.

◇ 오락산업의 꽃, 게임〓올 7월 1백30억원의 국고지원금으로 설립된 서울 테크노마트빌딩 내의 게임종합지원센터. 이곳에는 현재 50여개의 게임 소프트업체가 입주, 매월 평당 1만원의 저렴한 임대료를 내고 프로그램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설립된 '리딩엣지' 도 이 단지내 업체 중 하나다.
이 벤처기업의 비약적 발전상을 보면 게임산업의 미래상이 보인다.

설립 당시 6천만원이던 자본금이 올해 20억원으로 늘었고, 매출액도 20배가 불어난 60억원이 될 전망이다.

이런 급성장이 가능하게 된 데에는 지난 10월 출시한 '렛츠 댄스1' 이라는 온라인 게임이 큰 기여를 했다.

일본산 가정 및 업소용 댄스게임인 DDR를 응용, PC를 통해 인터넷상에서 게임을 즐기게끔 만들어 6만개가 넘게 팔았다.

조석현 사장은 "게임은 언어장벽이 없어 아이디어만 있으면 세계시장 공략은 시간문제" 라고 자신했다.

게임소프트 분야에서의 이런 성공은 다른 업체에서도 마찬가지. 국내 최초의 네트워크 게임인 '단군의 땅' 과 전략시뮬레이션게임 '아크메이지' 를 개발한 마리텔레콤 등도 21세기 세계 게임시장을 노리고 꿈틀대고 있다.

게임종합지원센터 김동현 소장은 "오는 2003년까지 게임 수출 3억달러, 생산 1조원 달성은 무난할 것" 으로 내다봤다.

◇ 창구효과를 노려라〓오락산업은 침투성과 파급성이 큰 고부가가치의 무공해 산업으로 불린다.

한편의 영화가 성공하면 비디오.음반.게임.캐릭터.테마파크 등 관련업종으로 파급돼 '창구(window)효과' 를 일으키며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국내 2백여개 업체 중 비교적 큰 규모의 선우엔터테인먼트. 현재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마일로의 모험' 을 자체 개발해 선보이고 있는 이곳은 현재 차세대 디지털 애니메이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월트디즈니 등 미국 메이저의 하청업체도 해보았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어 우리의 정성이 밴 '꼬마 마녀 미룬' 등으로 다음 세기에 도약해보겠다는 야심에 찬 계획이다.
홍현 마케팅부장은 "아직까지 국내 애니메이션업계는 산업화의 모색단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기술을 응용, 영화.게임.캐릭터 등과 연계시키는 방법을 구사하면 밑그림에 칠이나 하던 '하청국' 의 불명예를 벗을 수 있을 것" 이라고 전망했다.

다른 업체들도 창구효과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금다래신머루' '떠버기' 등 2백50여종의 캐릭터 라이선싱을 통해 연 1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캐릭터전문집단 위즈(WIZ)는 캐릭터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애니메이션 제작에 눈을 돌리고 있다.

영화는 인터넷영화(한글과컴퓨터의 '예카' )와 인터랙티브영화(네오무비의 '뱀파이어 블루' )등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 이미지도 상품이다〓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은 "한국에 국제통화기금(IMF)금융위기가 온 것은 결국 문화이미지가 뒷받침하지 못한 탓" 이라고 분석했다.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문화이미지가 튼튼하면 일시적인 사고로 그칠 수 있는데 한국의 문화이미지는 빈약했다는 이야기다.

마침 정부도 문화의 상품화와 상품의 문화화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올해 '모든 상품이 문화다' 는 슬로건 아래 문화산업국 내에 전문부서(문화상품과)를 신설하고 상품화 업체를 적극 지원하기로 해 관련업체들이 힘을 얻고 있다.

순국산 가죽제품 브랜드인 가파치는 호남대 산업디자인과 김애숙 교수와 산학협동으로 우리의 전통색인 오방색(五方色)을 바탕으로 한 비단피혁제품을 내년 선보인다.

윤석만 과장은 "기술의 평준화가 이뤄지는 시점에서 우리의 전통이미지를 파는 게 세계시장에서 상품의 변별력을 높이는 수단" 임을 강조했다.

이밖에도 민화와 도자기.전통가옥 등의 문양을 현대화해 금속공예품을 만드는 시우터, 경복궁 등을 퍼즐로 만들어 수출하고 있는 픽셀 등은 이 분야의 선두주자들이다.

◇ 구슬도 꿰어야 보배〓유엔개발계획(UNDP)의 올해 '인간개발보고서' 는 오락산업이 항공우주산업을 제쳐놓고 미국 최대의 수출산업으로 부상했다고 밝혔다.

오락산업을 '창조적 산업' 으로 규정한 영국은 국내총생산(GDP)의 4%를 이 분야가 점한다.
오락산업이 이처럼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은 부문별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한 때문.

따라서 국내 오락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각 문화 콘텐츠들을 제대로 엮어 소통하는 콘텐츠네트워크의 구축과 문화적 소양.상상력을 갖춘 인력들을 키워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높다.

구문모 산업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창조적 인력을 키우고 오락산업 내의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한다" 며 "장기적인 비전 없이 가시적 실적에 치중해 제작 측면만 강조하는 정부 지원정책은 시정돼야 한다" 고 지적했다.

게임종합지원센터 김동현 소장은 "정보와 기술의 교류 등 업계들끼리 제로섬이 아닌 서로 잘 사는 상생(相生)관계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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