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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외고 ‘영어 꼴찌’ 신새벽양, 미국 대학 합격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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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성적 꼴찌로 한국외대부속용인외고에 입학했다. 첫 학기 내신시험 영어에서 C를 받았다. 시험점수로만 보면 꼴등이다. 친구들은 모두 B 이상이었다. C를 받은 동기생이 한 명 더 있었지만 그 친구는 과제물을 내지 못해 점수가 깎인 것이다.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들은 벽 자체였다. 과제물 내용이라도 알면 다행이었다. 연골연화증을 앓아 제대로 걷지도 못해 체육수업 3년 동안 늘 외톨이였다. 올해 미국 브랜다이스 대학(Brandeis University)에 합격한 신새벽(19)양의 얘기다.

중1 때 알파벳 배워, 학원서 입학 거절하기도

 신양이 들어간 대학은 최근 관심을 받고 있는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공부한 곳이다. 미국 대학순위 30위권에 꼽히는 대학으로 중동 관련 학과와 경제학·심리학과가 유명하다. 4년 동안 16만 달러의 장학금까지 약속 받았다. 지난 11일 고향인 전북 전주 삼천도서관에서 만난 신양에게서 힘들었던 중·고교 시절 얘기를 들었다.

 “전북 임실 시골서 산과 들로 쏘다닌 제게 외고 3년은 혹독한 담금질의 시간이었어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알파벳을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친구들은 저만치 앞서 달리는데, 난 발버둥쳐도 제자리인 그런 기분 아세요? 그 답답함에 속으로 많이 울었어요. 영어조기교육에 무관심했던 부모님 원망도 많이 했구요.”

 신양은 중1이 돼서야 알파벳을 배웠다. 사교육을 시키지 않으려는 부모에게 떼를 써 찾아갔던 영어학원에서다. 처음엔 그 학원에서 입학을 거부했다. 영어 입학시험에서 빵점을 맞아서였다. 원장을 설득해 따로 영어를 배웠지만 그마저도 따라갈 수 없어 결국 나와야 했다.

 “영어 교과서로 혼자 공부했어요. 단어와 문장을 무조건 다 외웠죠. 그런데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 외우기만 하니 곧 한계에 부딪혔어요. 회화는 꿈도 못 꾸구요. 그러다 신문에 난 미국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보고 보내달라 또 떼를 썼어요. 미국에 갔다만 오면 무조건 영어가 될 거라 생각한 거죠. 거절당한 저를 안쓰럽게 본 외할아버지가 노후자금으로 준비한 통장을 깨셨어요. 지금 생각하면 나도 참…(신양은 철이 없었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유학해도 실력 제자리, 동화책·사전으로 잡아

 “마이 네임 이즈~”, “아이엠 어 스튜던트” 같은 간단한 표현만 익힌 채 중2때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 뉴욕주의 한 학교 중학과정으로 편입했다. 그러나 수업을 따라갈 수 없었다. 입학 뒤 6개월 동안 글쓰기 과제를 하나도 못했다. “손짓 발짓을 다 동원해 간신히 의사소통은 했죠. 그런데 과제물을 하루 종일 붙잡고 있어도 한 번도 제출하지 못했어요. 교사가 ‘불성실하다’며 꾸중하더라구요. 그런게 아닌데. 갑갑하고 속상했죠.”

 6개월이 지나서야 간신히 과제 하나를 완성했다. ‘한국의 세종대왕과 한글의 역사적 의의’가 주제였다. 아는 내용이라 그나마 글을 완성했단다. 5점 만점 중 1점을 받았다. 창피한 성적이었지만 ‘해냈다’는 작은 기쁨을 위로로 삼았다.

 1년 뒤 한국에 돌아왔지만 영어 실력은 나아진 게 없었다. 모의 토익에서 400점을 받았다. 당시 용인외고 영어과 입학지원자격은 텝스 850점, 다른 학과도 텝스 700점 이상이었다. 그러나 신양은 좌절하지 않았다. 학력 인정을 받지 못해 중2 과정으로 다시 학교생활을 시작한 신양은 용인외고 입학을 위해 2년을 준비하기로 했다. 기초부터 다져야 한다는 생각에 영어 동화책을 잡았다. 한 장에 한 문장이 써진 초급 수준부터 읽었다. 100권 짜리 영어 동화책을 갖고 있는 친구 집을 들락거렸다. “감각을 익히려고 모르는 단어는 사전을 안 찾고, 문맥으로만 유추하며 읽었어요. 그러다 보면 몰랐던 단어의 뜻도 맨 뒷장에서 알게되곤 했죠.”

 영어사전도 초등학생용을 사용했다. 그림이 많아 단어를 기억하는데 효과적이었다. 사전 끝까지 단어를 공부한 뒤, 각 단어별 예문을 암기했다. 다음날과 일주일 뒤 한글 번역만 보고 영어 문장을 말하는 방법으로 암기 상태를 자가 점검했다. C부분까지 3달이나 걸리던 진도가 속도가 붙어 H까진 한달 만에 끝냈다. 영어듣기 공부는 친구의 권유로 CNN 뉴스를 들었지만, 어려워 포기했다. 대신 교육방송 홈페이지에 실린 중3 듣기평가 문제를 MP3에 담아 수시로 들었다. 이어 고1·고2·고3 순으로 듣기평가를 반복해 들었다. 이런 노력 끝에 신양은 텝스 899점을 취득해 용인외고 지원자격을 얻었고, 2008년 지망하던 용인외고 영어과에 입학했다.

3개년 학습계획 세워 약점을 강점으로 바꿔나가

 입학 후 영어는 물론 화학·생물·수학·경제 등의 수업이 모두 영어로 진행됐다. 교과서도 영어 원서였다. 신양은 내용 이해는 제쳐두고 따라 읽기에도 벅찼다. 내신이 70~80점에서 맴돌았다. 친구들은 평균 92점 이상이었다. “유럽 역사 원서를 친구들은 1시간에 10장 읽는데 전 2장을 읽는 수준이었죠. 1학년 첫 학기성적이 저만 D였어요. 충격이었죠. 교사와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며 숱한 밤을 고민으로 보냈어요.”

 고민 끝에 3년치 학습계획표를 짰다. 반기·월간·주간·일일별로 학습내용을 적고, 단계별학업목표를 정했다. 그리곤 미련할 정도로 꿋꿋이 실천해갔다. 모르는 수업내용은 친구인 한서윤양에게 도움을 청했다. 한양은 재학 중 미국 소설을 번역했으며 올해 미국 예일대 조기입학전형에 합격한 우등생이다.

 “서윤이가 교과서 속 핵심주제, 외워야 할 용어를 짚어줬어요. 계획을 실천하면 계획표에 스티커를 하나씩 붙였어요. 나 스스로에게 주는 일종의 상이죠. 계획을 실천하니까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시간을 안배하는 습관도 기를 수 있었어요.”

 그 결과 AP(미국 대학이 인정하는 고교교과수업) 성적이 세계사·유럽역사·경제는 5점 만점, 생물·미적분은 4점을 받았다. SAT(미국 대학수능시험)는 처음 2000점에서 두번째엔 2170점으로 올랐다. iBT토플은 112점을 받았다. 3년 간 내신평균도 영어과 평균인 4.2를 앞질러 4.79를 획득했다. 입학 때 4.3이던 것이 2, 3학년 연속 4.9로 뛰어 올랐다.

 해외 대학 입시에 필요한 비교과 활동을 챙기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부모와 떨어져 있어 혼자 관련정보를 찾고 대외활동을 관리해야 했다. 학업만으로도 벅찬 신양에겐 큰 부담이었다. 친구들에게도 물었지만 중요한 정보는 얻기 어려웠다. 몸도 따라주지 않았다. 중학교 때 무릎을 다쳐 연골이 손상돼 연골연화증을 앓았다. 땅을 내디딜 때 무릎이 충격을 흡수하지 못한다. 특수신발을 신어 고교 3년 동안 제대로 걷지도 못해 입학식·조회·체육수업 땐 늘 외톨이였다. 그 때문에 체육교과는 늘 최저점을 받아 내신을 깎아 먹었다.

 신양은 교사의 조언을 받아 경쟁이 덜한 지방에서 비교과 활동을 챙겼다. 환경포럼에서 통·번역을 돕고, 환경운동시민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이를 내용으로 담임교사가 추천서를 썼고, 신양은 에세이에 담아냈다.

 “이런 어려움이 오히려 제 강점이 됐습니다. 시골 출신인 제가 혼자 고군분투하며 극복한 점을 미국 대학이 높게 평가해준 것 같아요.”

[사진설명] 신새벽양이 전주 삼천시립도서관 공원에서 고향인 전주에서의 초·중생 때와 용인외고 재학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며 웃고 있다.

<전주=박정식 기자 tangopark@joongang.co.kr 사진="김경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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