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분쟁 이럴 땐 이렇게] 전세자금 대출 사기 막으려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0면

임은애
금융감독원 조사역

얼마 전 수원에 사는 김모(47)씨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한 저축은행으로부터 채권 양도통지서를 받은 것이다. ‘세입자 정모(38)씨가 전세보증금을 담보로 빌린 대출을 갚지 않으니 전세 계약기간이 끝난 뒤 대신 갚으라’는 내용이었다. 정씨를 알지도, 전세를 내준 일도 없던 김씨는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냈다.

 조사해 보니 세입자 정씨가 저축은행으로부터 2500만원을 대출받고자 가짜 전세계약서를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가 정씨의 전세보증금 2500만원을 맡아 두고 있는 것처럼 꾸며 저축은행에 담보로 제공했던 것이다. 이후 정씨가 대출금을 갚지 않자 저축은행 측은 김씨에게 전세보증금을 빼 달라는 통지서를 발송했다.

 저축은행도 가짜 전세계약서만 믿고 대출해 준 건 아니었다. 전세계약이 진짜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 정씨에게 전세보증금을 입금했다는 증빙자료를 요구했으나 계약한 지 오래돼 없다고 했다.

계약서에 있는 집주인 휴대전화로 연락해 보니 정씨와 미리 짠 사람이 집주인처럼 행세했다. 더구나 정씨는 김씨 소유 건물에 버젓이 전입신고까지 해 놓았다. 저축은행도 깜빡 속았다. 정씨는 저축은행과 채무이행각서를 쓰고 차근차근 대출금을 갚는 중이다.

 저축은행은 이 사건을 계기로 전세보증금 담보대출에 한층 신중해졌다. 우선 전세계약서상 임대인이 전세건물의 등기부등본상 소유주와 일치하는지를 본다. 둘째로 세입자가 건물에 실제로 거주하는지를 확인하는 방문조사를 시작했다. 대형상가의 경우 건물관리인이나 인근 부동산업체를 통해 임대차계약의 진위를 추가로 확인한다. 이런 방법으로 전세계약 사실이 확인된 경우에만 집주인에게 채권 양도 통지를 하기로 했다.

 치솟는 전셋값도 서러운데 전세 사기가 기승이라고 한다. 주로 월세로 얻은 집을 집주인 행세를 하면서 전세로 놓고 전세보증금을 가로채는 수법이 많다. 김씨의 사례와 유형이 다르지만 예방책은 같다. 세입자는 등기부등본상 소유자와 계약 상대방이 일치하는지를 신분증과 등기권리증을 통해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 전세보증금은 집주인에게 직접 전달해야 한다.

집주인도 자기 소유 부동산의 실거주자가 누구인지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전세자금 대출을 취급하는 금융회사 직원 역시 전세계약의 진위를 최선을 다해 확인해야 한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한다. 문의 (국번 없이) 1332.

임은애 금융감독원 조사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