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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임대주택이 너무 좋으면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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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심상복
논설위원

만 4년 됐지만 시프트란 이름은 여전히 생뚱맞다. 서울시가 집 없는 서민을 위해 짓고 있는 장기전세주택 말이다. 이름이야 그렇다 쳐도 ‘로또’식 운영은 더 맘에 안 든다. 서울시 홈페이지 시프트 코너는 2007년 4월 국내 최초로 반값 아파트를 공급했다고 자랑한다. 이 주택의 임대기간은 최장 20년이다. 20년 동안 쫓겨날 걱정 없이 살 수 있으니 내 집이나 다름없다. 공공주택을 이처럼 싸게 장기간 빌려주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인가. 입주에 성공한 소수에겐 당연히 그럴 것이다. 하지만 시프트를 기다리는 다수의 시민은 어찌할 것인가. 시민의 세금으로 짓는 집인 만큼 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20년 임대기간을 10년 또는 5년으로 줄여야 한다.

 주거비용이 주변의 30~50%라고 자랑하는 것도 문제다. 당첨되면 이득 폭이 50~70%에 달하므로 로또 분위기를 조장한다. 이득을 보는 정도가 20~30%면 충분하다. 공공임대주택이 너무 싸고 편하면 안 된다는 논리가 있다. 입주자들이 거기서 나가 자립할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오래된 입주자에겐 임대료를 무겁게 물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소수의 당첨자에게 집중되는 혜택을 줄여 임대주택을 한 채라도 더 지어야 한다. 반복되는 전·월세 파동을 줄이기 위해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나라 전체 주택 가운데 공공임대주택은 5%도 채 안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은 12%다. 네덜란드는 35%, 영국은 19%, 프랑스는 17%다.

 국내에서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지 16년 됐지만 지자체들이 지은 임대주택은 미미하다. 돈이 없다는 것이 이유다. 사실 지난 4년간 서울시가 거의 1만 채의 시프트를 지을 수 있었던 것도 부자이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일부 지자체는 중앙정부에서 예산을 타 쓰면서도 청사를 근사하게 건축하거나 부실한 수요예측을 바탕으로 여기저기 도로를 뚫고, 공연장이나 미술관은 열심히 지었지만 임대주택은 나 몰라라 했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집은 더없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럼에도 정부와 공공기관이 임대주택사업을 경시한 건 이해하기 어렵다. 역대 정권마다 서민의 주거 안정을 외쳤지만 구호뿐이었다. 그동안 공공투자는 정치인의 입김에 휘둘려 도로·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 집중됐고 주택은 늘 뒷전이었다. 그 저변에는 집은 개인재산이고, 따라서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자연히 임대주택은 민간에 의존하게 됐다. 민간 임대주택이라고 해 봤자 별게 아니다. 집을 몇 채 가진 사람이 세 놓은 집이다. 그들은 정부를 대신해 나름의 역할을 했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투기꾼이라는 비난뿐이었다.

 정부를 대신해 임대주택사업을 하고 있는 토지주택공사(LH)도 이젠 손 놓은 상태다. 현재 LH가 운영하거나 짓고 있는 임대아파트는 약 50만 채다. 과거 주택공사가 해오던 것을 다 아우른 숫자가 요 정도다. 노무현 정권이 임대주택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쳤던 것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그는 세종시와 혁신도시라는 정치사업을 무리하게 밀어붙여 결과적으로 오늘날 LH에 천문학적 빚을 안겨줬다. LH는 125조원에 달하는 빚더미에 깔려 계획했던 공공임대주택 가운데 현재 거의 30만 채를 착공조차 못하고 있다. 돈이 되는 분양아파트 사업은 꾸준히 하고 있다.

 LH 부채 가운데 임대주택 관련은 전체의 약 4분의 1인 33조원에 달한다. 정부는 어떻게든 이 빚을 덜어주고 LH로 하여금 다시 임대주택을 짓도록 해야 한다. 전세금이 없는 저소득층을 위해 월세 임대아파트도 공급해야 한다. 동시에 투자할 곳이 없다며 돈을 쌓아 놓고 있는 대기업들이 임대주택사업을 할 수 있도록 물꼬도 넓게 터줘야 한다.

심상복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