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TV속에 애국가는 이제 그만.

중앙일보

입력

지금은 사라졌지만 한때 극장에서는 영화를 상영하기전에 애국가를 틀었다. 그러면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야한다. 엄숙하고 경건한 시간이다. 〈껄떡쇠〉나 〈젖소부인…〉상영하는데 웬 애국가? 이런 질문하면 공산당이었다. 난 지금도 궁금하다. 왜 영화관에서 애국가를 틀었고 지금은 슬그머니 그것이 사라졌는지...

지금도 TV는 편성의 시작과 끝을 애국가로 장식한다.
이발소 그림같은 백두산 천지모습과 온갖 근하신년 연하장의 일출장면, 그리고 손잡고 어딘가로 뛰어가는 아이들의 유치찬란한 모습들이 끊임없이 중첩되면서 애국가는 가사 자막의 힘을 빌어 완벽한 한편의 국가 직영 노래방 화면을 만들어 낸다.

그 촌스럽고 유치한 영상과 근대국가주의의 엄숙함. 이 양자가 맞물려 빚어내는 절묘한 어색함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그 시간에 TV에 애국가가 방송되어야할 당위성이 없기 때문이다. 방송에 당위성이 없기 때문에 애국가 화면을 제작하는 편성제작 PD는 가사와 이발소 그림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올림픽 경기를 떠올려보자.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딴 우리선수가 태극기에 경례를 하고 장내에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가장 훌륭한 화면은 바로 그 선수의 표정과 게양되는 태극기이다. 거기에는 백두산 그림도 무궁화 화면도 불필요한 것이다. 낮은 목소리로 애국가 가사를 읇조리는 선수의 입모습만으로도 우리는 감동을 느낀다. 애국가가 제대로 표현되고 있으며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모든 방송에는 그 나름대로 동기가 있으며 당위성이 개입해야만 생동감있고 살아있는 서비스가 된다. 그렇지 않으면 죽은 방송이고 의미없는 방송이 되고 만다.

TV의 시작과 끝에 왜 애국가가 방송되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올바른 대답은 극장에서 애국가를 없앤 이유에 있다. 억지 춘향으로 만들어진 유치한 애국가 화면을 서비스하는 것은 자원의 낭비를 넘어 근대주의의 폭력에 가깝다.

별것을 다 갖고 시비를 건다며 불평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PD라면 누구나 애국가 화면을 만들기 위해 유치한 이발소 그림들을 뒤져야하는 담당PD의 쑥스러움과 자괴감을 잘 알고 있다.

분명한 이유가 없이 방송되는 프로그램은 죽은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TV속에 애국가는 죽은 방송이고 그것은 애국가에 대한 온당한 대접이 아니다. 이제 TV편성의 애국가도 그만 사라질 때도 되었다.

enky현재 방송PD로 일하고 있는 enky는 TV의 올바른 대안문화을 찾기 위해 TV를 비판하고자 합니다.이 공간을 통해 현장에서 작업하는 사람으로서 가지게 되는 고민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일상 깊숙이 자리한 우리의 방송문화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