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기사로 더 생각해 보세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1면

6·25전쟁 중 한반도 지도를 보며 신의주 폭격 작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미 공군의 모습. [중앙포토]

‘미국의 힘’ 생각하게 한 지도

내가 미군을 볼 때마다 악착스럽게 구했던 게 있다. 그들이 갖추고 있는 최신 무기나 장비도 탐나지 않았다. 내가 적에게 쫓기는 다급한 과정에서 미군을 만날 때마다 늘 그들에게 구걸하다시피 해서 얻어낸 것은 지도였다. 바로 5만 분의 1 축척의 정밀 지도.

당시 우리 군대도 5만 분의 1 지도를 갖고 있었다. 일본이 일제 강점기 때 한반도와 중국 동북 지역을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 둔 것이다. 6·25전쟁 초기에 일선의 각 주요 사단은 이 지도를 보면서 작전을 펼쳤다. 그전까지만 해도 ‘대동여지도’급의 대한민국 전도(全圖)로 작전을 수행했던 형편이었던 터라 일본 지도만으로도 세밀한 작전 수행이 가능했다. 그러나 일본 지도는 미군의 지도와 비교해보면 구형이었다. 흑백으로 만들어진 일본 지도와 달리 미군 지도는 컬러인데다 좌표(座標)도 세밀하게 그려져 있었다.

좌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좌표에 그려진 부호로 서로 약속 장소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포탄이 떨어지는 탄착(彈着) 지점을 세밀하게 그어진 좌표로 이야기하는 것과 지명을 말한 뒤 “그곳으로부터 어디쯤에 쏴달라”고 하는 것은 포격(砲擊)에서는 천양지차(天壤之差)인 셈이었다. 측량의 나라인 미국이 만든 지도는 세밀하면서도 정확했다.

미군의 5만 분의 1 지도. 이는 새로운 전쟁을 예고하는 틀이었다. 나는 미군의 지도를 보며 많은 것을 생각했다. 재래식 전투는 이제 끝이다. 첨단의 시야를 지닌 미군의 힘을 이용하지 못하면 이 전쟁에서 결코 승리를 바랄 수 없었던 것이다. <2010년 2월 26일자 10면 ‘6·25전쟁 60년’>



신문 일기에 이렇게 정리해요

☞백선엽 장군이 미군에 지도를 구했던 이유를 정리한다.
☞‘대동여지도급 대한민국 전도 → 일본이 만든 지도 → 미군의 지도’로 바뀌면서 우리 군대는 어떤 변화를 겪었나?
☞‘지도의 중요성’을 고려해 ‘미래의 지도 모습’에 대해 생각해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