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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View 한동철의 ‘부자는 다르다’] 허드렛일 하고 3만원 내던 그 사모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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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면

한동철
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
부자학연구학회 회장

제가 부자학을 연구하면서 만든 개념 중에서 ‘선악후선설(先惡後善說)’이란 것이 있습니다. 처음에 부자가 되기까지 과정은 악의 성격이 강하고, 이후 부자로 사는 과정은 선의 성격이 강하다는 뜻입니다. 한국 굴지의 부자로 칭송 받는 어느 집안도 처음에는 장리(長利·고리대금업)로 돈을 모았고, 나중에는 그렇게 모은 모든 재산을 기부했습니다. 독점으로 부를 이룩하고, 자선으로 끝을 맺으려는 빌 게이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부자 되는 과정엔 왜 악한 성격이 있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인생의 목적을 금전 추구로 제한하는 속성이 발동하면서 부자가 되려고 악행들(가족 재산 탈취, 무자료 거래 자행, 종업원 이득 착취 등)을 하기 때문입니다. 제 부자학 강의를 듣는 어느 여대생이 나쁜 부자 큰아버지에 대해 한풀이를 한 적이 있습니다. “교수님, 저희 큰아버지가 할아버지 재산을 몽땅 독차지한 후 시장에서 사채놀이 해서 떼부자가 됐는데, 저희 집이랑 삼촌들은 굶을 지경이었습니다.” 빈손으로 시작한 대리점으로 100억원을 모았다는 분의 고백도 있습니다. “교수님, 저도 깨끗하게 사업한다고 무자료 거래를 안 하는 대리점으로 표창까지 받았어요. 그런데 실은 90% 정도만 자료 거래였습니다. 부끄럽습니다.”

 둘째, 남들을 눌러야 독점적인 이득이 생기고 빨리 부자의 길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느 어르신이 한숨 쉬며 독점 부자를 욕합니다. “동네 갈비집을 싹 죽이려고 사람을 사서 못된 짓을 숱하게 했고, 자기는 불법으로 점포를 늘리며 동네 가게들을 전부 없애버렸습니다. 염라대왕이 한탄할 부자입니다.” 사실 세계 최고의 부자들은 거의 모두 독점의 길(석유·소프트웨어·통신 등)을 걸었습니다.

 셋째, 은밀히 불법 거래를 하면서 해선 안 될 방식으로 돈을 모은 사람들이 이 땅에 많습니다. 몇몇 대기업이 한때는 수출입을 통해 금괴를 밀거래했고, 일부 정치가의 돈이 모텔에 투자돼 수천 배의 이득을 취했으며, 폭력 조직들이 인간 장기를 불법으로 거래해 돈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유한한 인간의 목숨을 직시하고 악한 행위들을 선행으로 바꾸어 나간 부자가 아주 많습니다. 1년밖에 못 산다는 진단을 받고 나서 ‘선행의 큰 손’으로 변해 40여 년을 더 산 록펠러가 그렇습니다.

강남에 사는 중견그룹의 사모님은 매년 수십억원씩 들여 자선 행위를 합니다. 그분이 저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교수님, 결국은 저를 위해서 하는 일이에요.” 어떤 시대나, 어떤 국가나, 어떤 사회나 부자가 되는 과정은 악의 요소로 우글거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부자로 사는 생활은 선행의 연속이 돼야 합니다. 누구를 위해서요? 바로 부자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꼭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느 절의 스님이 필자에게 들려준 큰 부잣집 사례도 그렇습니다. “멀리서 차에서 내려 꼭 부엌에서 하찮은 일을 손수 하고 3만원을 내고 가는 사모님이 있다”고요.

 자신의 꿈을 이룩하려고 손가락에 못이 박이도록, 무릎이 부서지도록, 머리가 깨질 정도로 노력한 사람이 부자가 돼야 합니다. 그러나 부자 되기 전에 피하지 못할 악행을 했더라면, 꿈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후에는 집단선(善)이나 사회선(善)으로 갚음을 시작해야 합니다. 폼 잡는, 멋 부리는, 여유 즐기는 선행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나간다면 악의 가면에서 선의 얼굴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진심으로, 진정으로, 진실되게 노력하는 부자가 많아져야 합니다. 인류 역사상 소득 1만 달러에 가장 빨리 도달한 국가가 대한민국입니다. 그런 자랑스러운 우리나라에서 2030년 소득 10만 달러에 도달하자는 외침이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그런 웅대한 역사를 부자가 이끌었다는 찬사와 함께, 부자가 사회의 등불이 되려면 자신들의 집안 문을 열고, 자신의 마음을 열고, 아름다운 선을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한동철 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부자학연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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