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300년전 신라 반도체 기술의 비밀은 돋보기에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보존처리를 거쳐 최근 공개한 경주 감은사지 동탑 출토 금동사리함과 원래 여기에 장식물로 붙어있던 초미니 신라 풍탁 5개를 직접 관찰한 한국과학기술사학계의 원로 전상운(71) 전 성신여대 총장은 이렇게 평가했다.
이 신라풍탁(풍탁) 5개는 그 크기가 쌀 낟알 하나 보다 작은 길이 0.5∼07㎜,무게 0.04g에 지나지 않아 현미경을 동원하지 않고 육안으로 관찰해서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물건인지 조차 알기 힘들다.
그런데 이 풍탁을 현미경을 통해 들여다보면 벼 낟알보다 적은 데에다가 지름 0.1㎜에 불과한 금 구슬 덩어리를 3∼4개씩 다닥다닥 녹여 붙였고 금제철사를 교묘히 넣어 여기에다가 각종 장식물을 달았음이 드러난다.
풍탁이란 바람부는 대로 흔들리면서 소리를 내는 풍경.
여하튼 금판이나 미세한 금 구슬은 어떻게든 만들었다고 치고 신라인의 시력이 현대인보다 월등히 뛰어났을 리 만무할 터인데 1천300년전 신라인은 도대체 무슨 도구를 사용했기에 이처럼 미세한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지난 3년7개월 동안 이 금동사리함과 풍탁 복원에 매달린 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실 강대일 연구관은 돋보기나 현미경없이는 도저히 이런 풍탁을 만들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강 연구관의 이런 추정을 뒷받침이나 하듯 실물을 관찰한 전상운 교수는 "신라인들이 돋보기를 만들어 썼음은 문헌기록에도 나온다"고 말했다.
전 교수가 말한 기록이란 조선초기에 그 원본이 출판된 것으로 추정되는 「동경잡기」라는 경주지방 읍지.
여기에 보면 신라인들이 수정을 갈아 돋보기로 썼으며 이것으로 빛을 모으면 불이 나는데 그 불을 `화주''라고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는 것.
비록 「동경잡기」가 조선시대에 편찬된 기록이긴 하지만 이로써 신라인들이 수정으로 돋보기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며 이들 풍탁은 이 기록이 틀림이 없음을 증명해주고 있다고 전 교수는 말했다.
그는 "풍탁을 만든 신라의 공예기술이 놀라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보다 훨씬 이전인 청동기시대에 한반도에서는 지름 20㎝에 불과한 다뉴세문경이라는 청동기물을 만들어 여기에 무려 1만3천5백개나 되는 금을 그었음을 볼 수 있다"면서 "과학기술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한국 고대사는 문헌사학자들이 보는 것과는 딴 판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