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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알면 과학이 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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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엔 눈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기상이변 때문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눈은 단순히 낭만과 관계있는 것만은 아니다. 저수율이나 풍흉(豊凶) 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 라니냐의 영향있나〓세계 기상이변의 주범인 라니냐(혹은 엘니뇨) 때문에 눈이 적을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연세대 김정우교수(대기과학) 는 "라니냐가 계속되면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이 강해지기 때문에 강설량이 많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고 말했다.

라니냐는 엘니뇨와 정반대의 현상. 서부 태평양의 수온이 예년보다 높아 각종 기상 이변을 일으킨다. 지난 여름 수해도 라니냐로 해석하는 학자들이 많다.

라니냐나 엘니뇨는 과거부터 있었으나 최근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기상청 김승배씨는 "아직 국내에 이렇다할 연구결과는 없으나 라니냐와 강설량이 연관관계를 가진 것은 확실하다" 고 말했다.

미국 등지에서는 뚜렷한 상관관계가 확인된 상태. 기상청 통계에 따르면 라니냐가 기승을 부릴 때 겨울 기후가 이상 패턴을 보인 것은 세차례. 67년.73년에는 올해 겨울과 비슷하게 저온.건조한 날씨를 보였고 88년은 정반대로 고온.다습했다.

따라서 라니냐의 영향이 우세하다면 빈설(貧雪) 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모든 지역에서 적설량이 적다고 만은 볼 수 없다. 강설은 지형상의 영향이 크기 때문. 한때 2m 안팎의 눈이 내린 기록을 갖고 있는 울릉도나 스키장이 몰려있는 대관령.서해안 등은 지형적 이유로 눈이 많은 지역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큰 눈이 내리는 것은 보통 ''호수(湖水) 효과'' 때문" 이라며 "찬 바람이 서해나 동해의 습기를 많이 빨아들인 후 폭설을 퍼붓는 것이 대표적인 예" 라고 설명했다. 호수효과는 북미의 오대호에서 유래한 말. 캐나다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이 상대적으로 따뜻한 오대호를 지나면서 눈구름을 만들어 뿌리는 현상을 일컫는다. 나이아가라 폭포나 버펄로 인근이 북미 최고의 폭설지로 꼽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 눈에도 질(質) 이 있다〓눈은 습기에 따라 습설(濕雪) 과 건설(乾雪) 로 나뉜다. 잘 뭉쳐져 눈싸움하기에 적당한 눈은 습설. 밀가루가 날리듯 잘고 뻑뻑하면 건설이다. 미국의 한 기상연구팀에 따르면 ''지독한'' 습설은 물을 40% 안팎까지 머금고 있다. 거의 ''물반 눈반'' 인 셈. 반면 물기가 1%에 불과한 건설도 있다.

미국 농무부가 매년 눈의 질을 주시하는 것은 농업용수 확보 때문. 습설이 내리느냐 건설이 내리느냐에 따라 저수율은 크게 달라진다.

국내에 내리는 눈의 질은 눈구름을 가진 기단의 영향을 받는다. 기상청 관계자는 "서해나 동해의 습기를 많이 머금은 눈은 습설일 가능성이 크다" 고 말했다. 이런 경우는 대개 눈의 양도 많다. 그러나 내리는 눈의 눈송이가 작거나 추운 날 눈이 내릴 때, 적설량이 적을 때는 대부분 건설이다.

◇ 눈을 알면 과학이 보인다〓창밖을 보지 않고서도 간 밤에 눈이 내린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다. 바로 눈의 흡음(吸音) 효과 때문. 주변의 소음이 눈에 흡수돼 평소보다 고요해진다. 지붕에 눈이 쌓이면 포근한 느낌이 드는 것은 눈의 단열(斷熱) 효과 때문이다. 눈은 결정으로 이뤄졌는데 격자(格子) 의 공간 중 최고 90~95%가 공기로 채워져있다. 이 공기는 움직임이 거의 없기 때문에 찬 기운을 전달하지 않는다. 눈의 크기는 보통 1.5㎝ 이하. 그러나 섭씨 0도 근처에서 대기가 불안정하면 눈송이가 5㎝까지 커지기도 한다. 독일의 한 기상관측자료에 따르면 길이 최고 10㎝가 넘는 눈송이가 관찰된 적도 있다고 한다.

''눈이 많이 오면 풍년든다'' 는 옛말은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다. 이듬해 저수량이 풍부해지는 것은 물론 식물 생장이 좋은 조건이 만들어지기 때문. 하버드대 스티븐 웁시 교수팀은 땅 위에 눈이 덮이면 토양 내 박테리아 등이 잘 자라 이산화탄소 배출이 늘어나게 되므로 식물 생장에 좋은 조건이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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