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할머니들 폐지 싸움 … 고령화 사회 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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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하철 전동차 안을 돌며 무가지(無價紙)를 거두거나 주택가에서 폐지(廢紙)를 줍는 노인들의 모습이 부쩍 늘었다. 대부분 60~80대 고령층이다. 이들이 하루에 열심히 모으는 폐지는 최대 100㎏ 안팎이다. 전문수집상이 폐지 1㎏에 매기는 가격은 요즘 150원 안팎이다. 폐지 50㎏을 모아야 7500원 정도를 번다. 하루에 2만원 벌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폐지 수거 노인들은 최저생계비(2011년 1인 기준 53만2583원) 이하로 생활하는 절대 빈곤층에 속한다. 지난해 말 서울 관악구에서 폐지 수거 노인 12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월수입이 40만원 미만이라는 응답자가 90%에 달했다. 이들은 기초수급조차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인 경우가 허다하다. 부양(扶養)받지도 못하면서 서류상으로 자식 등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한계상황에 내몰린 노인들은 생활비를 스스로 버는 것밖에는 선택이 없다. 전문적 지식이나 기능이 없는 노인들에게 폐지 수집은 쉽게 뛰어들 수 있는 ‘노동’이 됐고, 경쟁도 치열해졌다.

 급기야 노인들끼리 폐지를 놓고 몸싸움을 벌이는 사건이 최근 발생했다. 서울 화곡동에서 60대와 80대 할머니 두 명이 폐지를 서로 빼앗으려고 실랑이를 벌이다 경찰에 입건됐다. 이 중 60대 노인은 떼밀려 도로에 넘어지면서 덤프트럭에 머리를 부딪쳐 중상을 입었다고 한다. 정치권이 무상급식 등 공허한 복지논쟁에 매달려 있는 동안 노인들은 몇 천원의 폐지를 위해 몸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줘 준 사건이다.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폐지 수거 노인은 지난달 개봉된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에서 여주인공으로 등장할 정도로 우리 사회에 익숙한 풍경으로 이미 다가왔다. 지난해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이 열 명 중 한 명꼴이었다. 2026년에는 20.8%로 늘어난다. 노인복지를 위한 획기적인 인프라 확충이 없는 한 ‘폐지 노인’은 증가할 수밖에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노인들의 폐지 싸움 사건은 고령화 사회의 그늘에 대비하라는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