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보가 되고만 성인전용관 허용기사

중앙일보

입력

5년동안 난산을 거듭해 온 통합방송법이 간신히 국회 문화관광위원회를 통과했다. 여당 단독 처리에다 아직 법사위와 본회의 통과를 남겨놓은 상태여서 여전히 변수는 남아 있지만 방송계에서는 그래도 일단락을 지었다는 표정들이다. 이제 후속조치들만이 남았다. 해결되지 않은 쟁점사항은 앞으로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것도 정 안되면 훗날 재개정 작업을 통해서 풀어야 할 일이다. 방송계와 학계만큼 이번 법통과를 반기는 사람들은 짐작컨대, 문화부 기자들일 것이다. 방송법 관련 기사를 쓰는 일은 그만큼 "지긋지긋" 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기사쓰기조차 "지긋지긋"한 일. 그러나 아직 한가지가 더 남았다. 성인영화전용관 관련기사다. 성인영화전용관이 뭔지, 이게 왜 필요한 건지, 이 문제는 왜 이렇게 안 풀리는 건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도데체 독자나 시청자들조차 지겨워할 일을 계속해서 쓸 수밖에 없는 기자들은 또 얼마나 지겹겠는가. 이건 웬 지면낭비에 전파낭비인가. 얼마만큼 더 떠들고 "울어대야" 하는가.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전용관과 관련한 최신 버전은 정부와 국회의 "따로 놀기"다. 지난 달 중순, 정부는 국무회의를 통해 영화진흥법 의 제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성인전용관을 허가하고 15세 관람가 등급을 부활하고, 미성년자 연령 기준을 18세에서 19세로 높이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그동안 논란을 빚었던 〈거짓말〉이나 〈둘 하나 섹스〉같은 국내영화나 〈아이즈 와이드 셧〉같은 외화에 상영의 길을 터준 것이다. 영화문화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마련되겠구나,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당연히 언론들은 일제히 성인영화전용관 허용기사를 주요기사로 다뤘다.

그런데 결국 그 기사들은 오보가 되고 말았다. 정부 발표 딱 열흘만에 국회에서 성인영화전용관 설치를 전면 백지화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의지가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국회가 영화진흥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주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 물 건너간 것이다. 대신 여야는 15세 관람가 등급의 부활과 청소년 보호 연령기준을 19세로 높이는 데는 합의하고 이에 대한 법개정만을 추진중이다. 결국 영화계는 완전히 "닭쫓던 개" 신세가 됐다. 등급외전용관도 얻어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청소년보호 연령기준만 높아져 일반극장에서 상영할 수 있는 성인영화에조차 상당수의 관객들을 잃게 됐기 때문이다.

성인영화전용관 얘기가 나올 때마다 청소년보호나 성인영화를 바라보는 데는사회 성윤리적 관점도 중요하고 또 그것이 지배적일 수밖에 없지만 경제산업적인 관점도 전혀 배제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들이었다. 시각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늘 의견은 한쪽으로만 쏠리게 마련이다. 그러다보니 지금껏 늘 한쪽은 다른 한쪽을 비정상적으로 몰아 세우기만 했다. 전용관을 반대하는 일부 보수적인 사람들은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나 '한국민족민주예술총연합' 같은 "정치적" 단체가 포르노영화관을 만들자고 선동이나 하고 다니고 이를 18살 정도에게도 보여줘도 된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두 단체는 국내 문화계에서 가장 지적인 그룹에 속한다. 한편 일부 젊은 층들 사이에서는 이런 보수원로들을 퇴출시켜야 한다는 극단적인 입장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성보다 감정에 휩싸여 일이 진행되다 보면 갈등의 골만 깊어지는 법이다.

흥미로운 것은 국내에서 볼 수 없는 〈거짓말〉이 유럽에서는 꽤 괜찮은 인기를 모으고 있다는 것이다. 수출실적도 나쁘지 않다는 소식이다. 이 지역을 중심으로 현재까지 약 40만달러어치, 4억5천만원 정도의 판권 계약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유럽지역에 가장 많이 팔렸다는 〈아기 공룡 둘리〉가 25만불의 실적이었으니까 이보다 더 좋은 셈이다. 이 영화의 제작사는, 최근들어서는 "그냥 맘편하게 해외장사나 하겠다"며 생각을 바꾼 것 같다. 아이러니컬한 얘기다. 국내 영화문화 발전에 애써 온 한 중견 제작사의 의지를 꺽은 셈이 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요즘 일부 계층에서 유행한다는 "이민 욕구"를 느낀다고 한다.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것이다.

얼마 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한국영화축제의 밤에는 〈거짓말〉상영도 있었다고 한다. 파리에 유학중인 한국인 학생들, 한국영화에 부쩍 관심이 높아진 프랑스 대학생들이 몰려 상영관이 혼잡했다고 한다. 베니스영화제 등을 통해 〈거짓말〉이 그만큼 화제를 모았다는 얘기다. 그러나 관람평들은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무엇보다 "지루하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는데, 이 영화를 섹스물로 간주하는 우리로서는 이해가 안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우리나라에서처럼 주인공들의 특정신체부위를 "뿌옇게" 가리거나 하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다. 영화를 작품내용으로 판단하는가, 아니면 단순 볼거리로 판단하는가에 따라 반응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 통신원이 한 말이다.

포르노잡지 〈허슬러〉를 만든 미국의 래리 플린트는 "나는 분명 쓰레기다. 그러나 나같은 쓰레기마저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는다면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다"고 얘기한다. 일명 쓰레기론이다. 래리 플린트의 기행의 일생을 다룬 영화 〈래리 플린트〉는, 그러나 국내에서는 정상적으로 상영되지 못했다. 지나치게 외설적인 장면이 많다는 이유로 장면들이 뭉텅뭉텅 잘려나갔기 때문이다.

국민들 대다수는 물론, 포르노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또, 포르노때문에 검열행위가 정당화돼서는 결코 안된다고 생각한다. 성인영화전용관 설치법안을 통과시킨 얼마 전의 국무회의는 국민들의 욕망과 이성을 어느 정도 헤아렸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국회는 이를 뒤집기에 바빴다. 최소한의 논의조자 갖지 않은 채.

정부와 국회는 국민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것인가? 아직도 국민들이 그렇게 어리숙해 보이는 것일까? 누군가가 이제 답을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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