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정부 정책 공간이 좁아지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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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어제 세계 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웠다면서 “정부의 정책 공간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고 했다. “역풍에 돛을 펴야 하는 상황이니 긴장의 끈을 놓지 말라”는 당부도 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만큼 지금 상황은 녹록지 않다. 국제 곡물가는 급등하고 있고, 제3차 석유위기가 도래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데다 식량 자급률도 27%가 채 안 되니 그 충격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해진다. 장바구니 물가가 치솟고 있고, 휘발유 가격도 연일 상승세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세계 경제환경의 변화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런 상황을 예견하고 대비하지 못한 정부 책임은 적지 않다. 진작 정부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면 충격의 파장은 덜했을 것이다. 사실 물가 급등은 이미 예측됐다. 지난해 6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식량농업기구(FAO)는 “자급도가 낮은 국가의 식량안보에 비상이 걸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그보다 한참 앞서 유가와 구리 등 원자재 값이 급등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지난해 잠재성장률을 훨씬 웃도는 성장을 했을 때도 물가 우려는 터져 나왔지만 정부는 별다른 대비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5% 성장과 3% 물가상승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며 의욕을 부렸다. 우리는 당시 과욕은 절대로 금물이라고 지적했지만 정부는 귀 기울이지 않았다.

 이제 와서 누구 잘못이 더 큰가를 따지자는 건 아니다. 그러기엔 지금의 현실이 매우 심각하다. 윤 장관 말처럼 우리가 쓸 수 있는 정책 수단도 별로 없다. 해법은 정부가 경제정책을 대단히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것뿐이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도그마는 철회해야 한다. 대신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고, 우선순위를 가변적으로 조정하는 운용의 묘(妙)를 살려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국제 곡물가와 유가에 취약한 구조를 혁신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외부 환경에 가장 취약한 나라라는 오명(汚名)을 벗을 때도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