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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터뷰]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 펴낸 탤런트 서갑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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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충격적인 내용을 담은 자전적 性 고백서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를 펴낸 탤런트 서갑숙(38)
씨. 이 책은 출판 직후 서점의 반품소동,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청소년 유해간행물’ 판정, 검찰의 내사 등으로 일파만파 파문을 불러일으키며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파문이 커지자 한차례 기자회견을 가진 그는 그후 일절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한때 ‘잠적설’이 나돌기도 했다. 지난 11월12일 “월간중앙”과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그간의 심경과 책을 펴낸 동기를 숨김없이 밝혔다. [편집자]

자전적 성 고백서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를 펴내 장안의 화제를 모았던 탤런트 서갑숙씨. 서점의 반품 소동에서 시작된 ‘서갑숙 파문’은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음란물 판정시비, 검찰의 내사 등을 겪으면서 일파만파로 번졌다.

이 책은 출판 직후부터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서점가에 배부를 시작하자마자 책이 동나기 시작한 것. 총판(도매상)
에서는 책을 확보하기 위해 계속 출판사에 추가주문을 냈다. 출판사측은 출간 3일만에 재판을 찍었지만 하루 1만권 이상의 추가주문이 들어오자 서둘러 인쇄필름을 더 만들어 인쇄소 네곳에서 책을 찍어댔다. 그래도 모자랐다. 총판 사장들은 아예 차를 인쇄소에 대기시켜 놓고 책이 나오기만 기다릴 정도였다. 출간 10일만에 당초 목표했던 5만부를 훌쩍 넘겼다.

‘음란성’ 여부를 판단하기로 한 검찰도 책을 구하기 위해 애를 먹었다. 직원이 검찰청사 주변 서점을 다 돌아다녀도 책을 구할 수 없자 직접 출판사로 전화를 걸었던 것. 출판사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의 죄(?)
를 심사받기 위해 ‘증거물’을 제출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었다.

시중 서점에서는 30∼40대 독자들이 뻔질나게 들락거렸다. 당시 기자가 지방 소도시에 사는 지인에게 들었던 일화. 어느날 술자리를 함께 하던 동료가 “잠깐 나갔다 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잠깐 어디 다녀오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 동료는 술자리를 2차로 옮길 때가 다 되어서야 나타나더라는 것. 그러면서 하는 말이 “시내 서점을 다 돌아봤는데 책이 없대.” 무슨 소리인지 의아해하는 친구들에게 그 사람은 “서갑숙이 몰라? 이런 덜 떨어진 친구들”하며 픽 웃더라는 것이다. 1999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한국 사회는‘서갑숙 신드롬’으로 이렇게 한바탕 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서씨 본인은 10월25일 한차례 합동기자회견을 끝으로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일부에서는 ‘잠적설’을 제기하는 등 그의 거취는 궁금증을 더했다.
지난 12일 오후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 응한 그는 “그동안 새로 책을 쓰느라 두문불출했을 뿐 항간의 억측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동안 일부 언론에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잠적했다’는 식으로 보도했는데 새로 펴내는 누드에세이집 원고를 11월9일까지 넘겨 주기로 한 약속을 지키느라 모처에서 집필하고 있었어요. 지난 6월말 “나도 때론…” 출간 계약을 맺고 여름 내내 집에서 원고를 썼죠, 그 다음엔 바로 실크로드로 한달간 촬영을 다녀왔어요. 귀국할 때쯤 책이 나왔는데 화제가 되는 바람에 소동이 벌어진 거예요.”

화장도 하지 않은 맨얼굴에 다소 초췌한 표정으로 약속 장소에 나타난 그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며칠새 연거푸 인터뷰를 하면서 매번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바람에 정신적으로 몹시 피곤했다”며 언론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사실 성 담론은 서씨가 처음으로 제기하는 문제는 아니다. 90년대 초반 마광수 연세대 교수가 소설 “즐거운 사라” 때문에 대법원까지 가는 법정공방 끝에 교수직을 박탈당하는 수모를 겪었고 최근에는 작가 장정일씨가 “내게 거짓말을 해봐”로 역시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들이 문학작품을 통해 성 담론을 내세웠다면 “나는 솔직하게 살고 싶다”라는 문화평론서를 낸 김지룡씨 같은 이는 문화비평을 통해 성 담론화를 추구하고 있다. 여성으로는 구성애씨가 ‘아우성’(아름다운 우리들의 성)
교육을 통해 성 문제를 밝은 곳으로 끄집어내야 한다고 주장하며 상당한 사회적 호응을 얻었다.

성 담론을 주장하는 ‘전사’로 친다면 서씨는 한참 후배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처럼 뜨거운(?)
시선을 한몸에 받는 것은 왜일까. 우선 ‘여자가’ 당돌하게 자신의 섹스 경험을 고백했다는 것이 화제를 불러모은 이유가 될 것 같다. 더구나 일반인에게 잘 알려진 탤런트이며 두 아이의 엄마이자 이혼녀라는, 극적인 요소를 모두 갖춘 사람인 바에야.

― 정말 반향이 대단했죠.
“성(性)
이라는 게 흥미로운 주제이기는 하지만 저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도 저의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누구 말마따나 ‘덜 떨어진 여자가 나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니까’ 하는 식으로만 접근하는 것에 질렸어요.”

― 여자로서 자신의 성 경험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텐데.
“그렇지만 성 문제는 남의 얘기 하듯 하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요.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는 이디피에스(음담패설)
로는 성에 대한 억압을 해소할 수 없어요. 우리 사회가 성 담론화를 이야기하면서도 이처럼 주저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죠. 그러니까 저를 두고 ‘옳다’ ‘그르다’ 하는 식으로만 반응이 오는 게 아닌지 모르겠어요.”

◇섹스를 통해 사랑을 배운다

― 책에서 말하고 싶었던 게 한마디로 뭡니까.
“한마디로 ‘정신적인 사랑과 육체적인 사랑은 둘이 아닌 하나다’라는 거죠. 제가 ‘사랑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서 썼다고 하면 저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봐요. 그래서 공식적인 답변을 준비했죠. ‘나를 억압하는 그 모든 부자연스러움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그랬다’. 그러면 또 이렇게 질문을 계속해요. ‘왜 남은 생각하지 않고 그랬느냐, 특히 남편과 딸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경솔한 짓 아니냐’라고. 여기에도 역시 공식적인 답변은 있어요. ‘나만을 위한,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생각이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나만의 기쁨을 위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했다’라고 말하죠. 더 이상 저를 추궁하는 듯한 질문에는 대답하기 싫기 때문이죠.”

그는 ‘섹스’가 아니라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인터뷰 내내 거듭 강조했다.
“제가 어느날 문득 깨달은 것이 ‘사랑’이에요. 그 주제를 탐구하기 위해 시작한 긴 여행에서 저는 끊임없이 새로운 세상을 발견해 나가는 것이거든요. 제가 말하는 그 큰 사랑 안에는 우리가 그동안 간과했던 ‘섹스’라는 문제가 들어 있어요. 그리고 성이라는 것은 자기 정체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죠. 그래서 제가 책을 쓸 때 이성간의 성과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제가 ‘사랑’에 미숙해서 겪었던 실패담을 솔직히 털어놓은 거예요. 글을 쓸 때 어떤 제 의견을 달지 않고 그냥 경험만 이야기하는 바람에 ‘섹스 고백서’로만 주목받게 됐지만 사실은 이런 생각을 바탕에 깔고 글을 썼던 겁니다.”
그는 책을 통해 자신의 경험담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혼음, 9시간에 걸친 마라톤 정사, 동성애, 강간, 자위행위에 이르기까지.

― 은밀한 사생활을 그렇게 공개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 아닐까요.
“분명히 이 책은 청소년용으로 쓴 게 아니에요. 그런데 어른들이 청소년을 핑계삼아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 못하게 하려 했다는 건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어른들도 ‘빨간책’을 보고 자랐잖아요. 그렇다고 모두가 이상한 사람이 된 건 분명 아니잖아요. 그런데 지금 자신의 자녀들인 청소년을 믿지 못하겠다는 건 우리 사회의 자정능력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이죠.”
그에겐 아홉살과 열한살 된 두 딸이 있다. 일전에 ‘아우성’ 성교육으로 유명한 구성애씨가 서씨의 책에 대해 ‘엄마로서 너무 성급하고 가볍게 처신한 것 아니냐’고 비판한 적이 있다. 청소년과 섹스쪽으로 이야기를 옮겼다.

― 엄마들 입장에서는 구성애씨 얘기에 더 공감하는 것 같습니다. 당신도 이제 곧 청소년이 될 두 딸의 엄마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좀더 신중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 질문에는 이렇게 답하겠어요. 제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나쁜 이야기가 아니거든요. 사람마다 자식을 교육시키는 방법이 다 다르겠지만 하여튼 나는 성 문제를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떳떳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요.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은 우리 일반 상식에 어긋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겠죠. 저는 딸들에게도 이렇게 가르칩니다. 너희들이 사랑을 하게 되면 결혼해야 될 나이라서 결혼하고, 육체적 관계를 가졌다고 결혼해야 된다는 생각은 하지 말라고.”

― 사회통념상 딸들에게 그렇게 가르친다는 것은 충격적인 발언입니다. 특히 순결 문제는 자칫하면 청소년 탈선을 부추긴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할 발언 같은데.
“육체적인 순결이건 정신적인 순결이건 순간순간마다 최선을 다했을 때 생기는 거죠. 그리고 그런 사랑의 경험을 다양하게 가져 보면 자기판단이 생기죠. 사람을 보는 눈도 생기고, 사랑에 대한 자기 생각도 성숙해지고. 그러면 정말 그 어느 모퉁이에서 기다리고 있을 운명적인 사랑을 만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 이번에 파문이 확산되면서 비판여론도 만만찮은데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봅니다. 이번 일로 우리 눈에 성 담론에 대한 실체가 어느 정도 드러난 것이 오히려 다행스럽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막연히 짐작만 하던 것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는 것이죠. 우리가 일단 눈으로 볼 수 있으면 정리하기가 더 좋고 어느 방향으로 흐를 수 있잖아요. 어두운 곳에서 이야기하면 어두운 곳에서 그냥 끝나는 이야기가 바로 성에 대한 이야기인데 밝은 곳으로 서서히 나오고 있다는 거죠. 저에 대한 비난이든 칭찬이든 상관 없어요. 이제는 성 담론이 최대공약수 내지 공통분모를 찾아서 어느 방향으로 흐르겠죠. 밝은 곳에서 논의되면 그것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흐를 것이라고 생각해요. 다수가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역사잖아요. 그리고 흘러서 남는 게 전통이구요. 그런 점에서 제가 옳다, 틀리다 하는 것은 개의치 않아요.”

― 서갑숙씨의 문제제기에 대해 관심을 갖는 언론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언론도 있겠지만…. 그런데 어떤 점이 그렇게 불만입니까.
“저에 대한 칭찬이든 비난이든 이런 식으로라도 성 담론을 둘러싼 공론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참 발전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어떻게 담론하고 어떻게 공론화할 것인가 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죠. 그런데 우리 언론은 그런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저를 둘러싼 이야기로 흥미를 돋구는 데 열중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 대목에서 그는 TV 토크쇼에 출연했을 때의 일화를 들려 주었다.

“녹화하는데 몇몇 사람이 제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이 있었어요. 전유성씨는 ‘제가 처음 이 책을 봤을 때 뭐 이렇게 덜 떨어진 여자가 있나 이런 생각이 들었고요, … 뭔가 좀 새로운 이야기를 하니까 이렇게 재미있구나, 나도 세상을 좀 재미있게 살기 위해 뭔가 새로운 일을 해야 할까, 무슨 일을 저질러야 할까 생각 좀 해봐야겠어요’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또 조영남씨는 ‘도전하는 용기가 가상하다’는 식으로 저를 칭찬하는 이야기였고요. 그런데 그중에서 ‘나도 남자로서 한번 껄떡대보고 싶은 심정이 생긴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왔거든요. 이 대목에서는 이렇게 질문할 수 있겠죠. ‘봐라, 남성들이 여자를 얼마나 우습게 생각하고 우스갯거리로 생각하느냐.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고…. 제가 발끈 화를 낼 것으로 예상하고 그런 질문을 했지만 제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하는 남자가 귀여워요. 위트 있고 귀엽잖아요.”

― 서갑숙씨가 화를 내거나 당황하는 모습을 보려고 그런 것 아닐까요.
“이렇게 해도 화 안내고 저렇게 해도 화 안내고 하면 자꾸 추궁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자꾸 노리갯감으로 만들면 사실 화가 나죠. 바늘로 손등을 콕콕 찌르면서 ‘안아프니’ 한다면 오기가 발동해서 ‘안아파’ 할지라도 그건 아픈 거잖아요.”

― 이야기를 좀 바꿔볼까요. 아까도 말했지만 구성애씨가 신문 칼럼에서 ‘성급했다’고 비판했는데.
“그분의 글을 찬찬히 읽어 보니까 어떤 편견을 갖고 계시더라고요. 가부장제를 인정하는 편견을 가지고 40대 남성들을 전부 매도하더라고요. 사회적으로 큰 목소리를 내고 있는 분인데 자기 편견의 틀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셈이 되잖아요. 그런 태도는 위험해 보여요. 언뜻 느끼기로 그런 시각에서 보니까 제 책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돈 벌기 위해 책 쓴 것 아니다

― 진정한 사랑을 찾아서 가는 것은 좋은데 그 사랑의 감정이 없어졌을 때는 어떻게 하느냐, 가족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있죠. 현실적으로 그런 문제를 도외시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런 식으로 나오면 제가 할 말이 없어요. 저는 진정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분은 현실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이니까 서로 초점이 다른 거죠.”

― 지난 10월말 기자회견 때 상업적인 동기에서 책을 쓴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죠. 솔직한 대답을 듣고 싶은데요.
“그런 질문을 할 만한 상황이 되어버린 거죠. 갑자기 책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니까. 그래서 제가 상업적인 의도가 아니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납득하지 못하는 거죠. 출판사와 계약할 때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지난해 IMF 때는 그런대로 책이 나갔는데 올해는 책시장이 너무 죽어 2만부 나가기가 힘들대요. 5만부만 나가면 베스트 10 순위 안에 든대요. 그래서 출판사와 제가 책을 잘 만들어서 5만부 판매를 목표로 했어요. 책이 한권에 7천원이고 권당 7백원씩 받기로 했으니까, 마음먹은 대로 팔리면 제가 받을 돈이 3천5백만원 되죠? 제가 16년 동안 연기생활을 해왔고 앞으로도 해야 하는데 그 돈은 잠깐 드라마 출연해서 버는 것보다 훨씬 적어요. 정말이에요. 말씀드린 대로 성과 사랑에 대한 제 신념이 있어서 책을 낸 거예요.”

서씨가 정확하게 밝히지는 않았지만 출판사측에 따르면 지금까지 대략 17만권 정도가 팔린 것으로 추산된다. 근래 보기드문 대히트작인 셈이다. 여기서 단순계산만으로도 그의 수입이 1억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그가 ‘돈 때문에 오해받는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인터뷰 도중 그는 기자에게 불쑥불쑥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사랑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육체적 사랑에 대해 당신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같은 것들이었다. 기자가 “평소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하자 그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지 않았다? 이해해요. 저도 그랬으니까. 그런데 제가 죽 보니까 여자들이 남자들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 그래요? 성 문제는 오히려 남자가 여자를 모르기 때문에 시작되는 게 아니고요?
“여자나 남자나 마찬가지예요. 여자도 남자를 몰라요. 서로의 정신을 이루고 있는 구조도 모를 뿐더러 몸의 구조도 몰라요. 상대방에게 어떻게 해줘야 좋은지, 예를 들어 여자의 빰을 만졌을 때와 남자 뺨을 만졌을 때 좋은 느낌의 정도가 달라요. 몸의 메커니즘이 다르기 때문이죠. 더 깊이 말하자면 우리는 자기 자신의 몸조차 잘 몰라요. 여성은 여성 자신의 몸을, 남성은 남성 자신의 몸을 몰라요. 그런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으니까.”

― 지향하는 ‘뜻’은 그렇게 ‘고상’할 수 있지만 어쨌든 소재는 단순하고 자극적인 섹스행위 아닙니까.
“상당히 주의깊게 읽지 않으면 그냥 노골적인 성 고백서로 보이겠죠. 그런데 저는 그 속에 제 생각을 털어놓은 겁니다. 아버지 얘기를 하면서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이야기하고 싶었고, 사랑의 공유를 이야기하면서 사랑의 원시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나중에 편집에서 상당부분 걸렀지만 동성애도 다뤘어요. 겉으로 드러나는 사람의 성격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 속에 내재해 있는 남성성과 여성성, 이런 문제를 다루고자 했던 것이죠. 제가 ‘밀린 숙제 하기’에서 캠퍼스커플이었던 옛 남자친구에게 섹스로 복수하는 이야기를 했잖아요. 그런 주제들은 유교적 관념에서 보면 납득할 수 없을 거예요.”

― 책 내용이 모두 서갑숙씨의 체험담 아닙니까. 그런 내용에 빠져들다 보면 이야기하고자 했다는 그 부분을 이해할 사람이 많을 것 같지 않은데.
“이야기가 더 나아가면 그 안에서 또 사람들 각자가 갖고 있는 가학성과 피학성의 이야기도 나오게 되죠. 말하자면 그 많은 이야기를 제가 단지 제 경험담으로만 제시했거든요. 심리학 하는 분들이 제 책을 보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성의 정치랄까, 철학이랄까, 자신의 정체성과 연관되어 있는 해답을 구하려고 노력하는 걸 알 수 있을텐데 제가 말하고자 하는 걸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이나미씨나 김정일씨나 지금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있고 또 앞서 나가는 분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직도 시각이 겉에서 맴돌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고보면 모든 사람들이 가치관의 혼돈, 자기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상태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 지나치게 자극적이다, 변태적이다, 말도 안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건 현상적으로 겪어야 될 부분이고요, 원래 제가 말하려고 한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이야기는 이제부터라도 시작되어야 될 것 같아요. 나 자신은 자유롭게 사랑을 논의해 보고 싶어서 이야기를 시작한 건데 자꾸 엉뚱하게 끌어가려고만 하니 제가 언론도 피하고 싶었던 거죠.”
그는 많이 지쳐 있었다. “계속되는 집필작업으로 몸도 지친 데다 내가 뜻했던 사회적 담론은 없고 말초적 경험담에만 관심을 가지는 사회의 속물근성 때문에 정신적으로 피로를 느낀다”고 했다.

지난 10월 기자회견을 통해 ‘열린 사회’를 주장했던 그는 “다양한 사람들이 제 목소리를 내고 이를 수용할 수 있는 것이 열린 사회”라며 “여자가 성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는 건 왜 안되는가”라고 반문했다.

“지금 새로운 천년을 이야기하면서 온갖 계획과 구호가 나오고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새로운 천년에는 우리 모두 솔직하게 성 문제를 털어놓고 이야기합시다’라고 외치고 싶어요. 이미 세상은 획일적인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근거로 개개인이 스스로 판단을 내리는 세상이 됐어요. 성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 그 뜻은 좋지만 현실적으로는 엄연히 ‘청소년에게 해롭다’는 시비가 붙었습니다. 그런 사회적 지적에도 귀담아 들을 대목이 있는 게 아닐까요.

“분명히 이 책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놓고 쓴 건 아니죠. 우리 모두의 성과 사랑을 이야기하자는 건데. 좋아요. 윤리위원회에서 ‘청소년들은 읽지 말라’고 했으면 청소년에게 안 팔면 되는 거죠. 그건 반대로 어른들은 읽어도 좋다는 얘기니까 어른들이 좀 읽고 자신의 성과 사랑을 돌아보고 정리해 보았으면 좋겠어요.”

― 그런 쪽보다는 ‘재미’삼아 읽는 쪽이 월등한 것 같은데.
“자녀들이 ‘아버지 어머니, 제가 사랑을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러이러한 상황이고 이러이러한 고민이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라고 했을 때 적절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균형감각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어른들은 ‘아이들’을 핑계삼아 스스로에게 그런 생각을 해볼 기회를 부여하지 않는 거죠. ‘애하고 부모하고 어떻게 한 자리에서 낯뜨겁게 그런 이야기를 합니까’ 이런 식이죠. 성을 부끄러운 이야기, 불 끄고 하는 이야기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요. 저도 그랬어요. 육체적인 사랑은 정신적인 사랑의 ‘부록’처럼 그저 따라오는 것인 줄 알았어요. 저도 육체적인 사랑에 대해 큰 관심을 두지 않았고 무지했고 미숙했어요. 그런데 어느날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거죠.”

― 그렇습니까? 사람들은 대부분 ‘정신적 사랑’에 육체적 사랑이 수반된다고 보잖아요. 그게 평범한 진리 아닙니까. 우리 사회가 육체적 사랑에 대해서는 좀 쉬쉬 하는 분위기인데.

“정신적인 사랑에는 영혼의 교류가 있지만 육체적인 사랑에는 그게 없다, 그런 사고 자체가 어불성설이죠. 간단하게 말한다면 마음 안에 몸이 있고, 몸 안에 마음이 있지 않아요? 몸하고 마음하고 따로따로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서로 신체접촉을 하면 그걸 내 마음이, 내 정신이 느끼잖아요. 그 접촉이 부드럽고 따뜻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따뜻한 정신이겠죠. 아기들을 보면 행복한 느낌을 갖잖아요. 그 아기가 제일 처음 세상에 태어나서 자기 몸을 만지면서 놀잖아요. 자기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빨고 성기도 만지작거리고. 그러면서 자기 몸에 대해 인식하게 되고, 자기 정체성을 본능적으로 인식하는 거죠. 마찬가지로 남녀간의 사랑도 서로의 신체를 접촉하면서 서로를 인식하게 되는 것이죠.”

― 사랑하지 않아도 ‘성욕’만으로 이성의 육체를 원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는데 왜 만져보고 싶지 않고, 살과 살을 맞대며 안아 보고 싶지 않겠어요. 그게 바로 섹스예요. 제 주장은 그래요.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의 접촉을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는가에 대해 각자 자신에게 물어보고 생각해 봐야 된다. 섹스를 단순한 욕망 배설의 도구로 사용할 것이냐,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의 기쁨과 나의 기쁨을 함께 균형있게 발전시켜 나가는 섹스를 할 것인가. 그런 얘기를 하자는 것이었어요.”

― 사람들은 그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의 감정이 없어졌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이냐, 그런 문제를 걱정하는 것 아닐까요.
“사랑이 없어지면 정리하는 데 얼마간의 과정과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앞으로 결혼제도의 파괴 같은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그것까지는 제가 아직 모르겠고. 제 생각은 이래요. 사람이 사랑만으로 사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사랑만 중요한 것도 아니죠. 생활도 중요하고 가족의 울타리도 중요하고, 모든 게 중요해요.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정도를 지나칠 때죠. 나 하나 희생함으로 해서 나를 포함한 이 모든 게 잘 굴러간다는 생각이 정도를 넘으면 그건 절대로 자신을 위해서나 가족들을 위해서 플러스로 작용하지 않아요. 오히려 편부 편모 슬하에서 자란 아이들이 더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어요. 부모가 끊임없이 싸우는 아이들은 정신적인 억압이 더 크대요. 이런 부모들은 뭐라고 그러느냐, 너희 때문에 내가 산다, 너희 때문에 희생하고 산다, 나라는 존재는 없다는 거죠. 그러면 자녀들은 ‘누가 우리 때문에 살아 달라고 그랬어요’ 하며 반항하죠. 희생을 하고 사는 게 사랑이 아니라는 거죠.”

◇이혼은 좀더 신중히 생각했어야 할 문제

― 서갑숙씨도 이혼한 경험이 있는데….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생각에서 조금도 참지 못하는 것도 균형감각이 없는 것이고, 그렇다고 자기를 없애고 무조건 희생하며 참고 산다고 하면서 사실은 가족이나 상대방에게 책임전가를 하는 것도 균형감각이 없는 짓이죠. 어쨌든 ‘사랑’이 파경에 이르지 않도록 잘 만들어가는 게 결혼생활인데 그건 어느날 갑자기 되는 게 아니라 깊이 생각하고 만들어가야 되는 것이거든요. 과거에 저는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에 엄청난 혼돈을 겪었죠. 지금 생각하면 제가 좀더 성숙했더라면 이혼을 결정하지 않고도 잘 헤쳐나갈 수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미숙하고 성이나 사랑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빚은 거죠. 실패한 거죠.”

― 반응들이 너무 양극단을 달려 힘들지 않았습니까.
“하다못해 이 책이 대필이냐, 아니냐 하는 걸 가지고도 물고늘어지더라고요. 깡통인 연예인이 어떻게 이런 글이란 것을 쓰겠느냐는 것이죠. 묘사하는 부분이라든지 글의 안전장치라나 그런 걸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그리고 또 픽션이 가미됐다는 이야기도 하더군요.”

인터뷰를 시작한 지 두시간이 넘어서자 비로소 그의 말문이 자유롭게 트였다. 처음에 주저하던 태도는 없어지고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과 우리 사회의 위선에 대해 직설적으로 견해를 피력했다.

“모두들 제 이야기만 듣고 싶어 해요. 누구랑 어떻게 섹스를 하고 하는…. 아예 인터뷰가 아니라 여론재판을 하고 싶은데 제가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내 외면하고 자신들이 짜놓은 구도대로 이야기를 몰고 가요. 제가 정말로 하고 싶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는 사랑이에요.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사랑 이야기냐 그러시겠지만 우리 곁에 언제나 있으면서도 쉽게 알 수 없는 그것에 대해 말하고 싶어요. 진지한 이야기는 사람들이 싫어한다지만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지금부터 얘기하지 않으면 영원히 행복을 찾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 친구와 함께 한 남자를 상대로 2대1 섹스를 나눈 이야기도 있었죠. 그리고 사랑의 공유라는 말을 썼는데 이해하기 어렵던데요.
“제가 실험을 해봤던 것이죠. 사랑이란 원래 나누는 것, 싸우는 것이 아니고 화합하는 것, 하나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소유와 집착 때문에 나와 상대방의 세계를 자꾸만 좁혀 나가게 되잖아요. ‘나만의 사랑’ 하는 식으로…. 그래서 원래 사랑의 기능이 화합하는 것이고 하나되게 하는 것이라면 ‘사랑을 공유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점에 대해 생각이 미쳐 그런 실험을 해본 거죠. 실패로 끝났죠. 안되더라고요. 저 역시 소유와 집착의 사랑에서 못벗어나는 거예요.”

― 우리 인간이 현재 가지고 있는 의식수준의 한계일 수도 있겠죠.
“거기서 사랑의 공유가 가능하다면 ‘사랑’을 가르치는 종교가 전쟁을 없앨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해요. 그러면 인류는 진일보할 수 있겠죠. 모든 종교가 가르치는 가장 큰 가르침이 ‘사랑’이잖아요. 그래서 기회가 닿는다면 종교계의 원로분들과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어요.”

― 누드집을 내는 것도 ‘사랑’의 탐구와 관계가 있습니까.
“원래 제가 세가지를 계획했어요. 맨처음에 책을 내면서는 마음을 벗는 작업, 누드에세이집은 몸을 벗는 작업이죠. 이렇게 몸과 마음을 다 벗고 인간의 원형인 자연의 상태에서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하는 거죠. 물론 그동안 잘못했던 것을 고백하고 털어놓는다고 해서 다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앞으로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일종의 ‘의식’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것도 신부님에게 은밀하게 고해한 것이 아니라 만인 앞에서 했기 때문에 더욱 노력하게 되겠죠. 물론 제 노력이 실패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합니다. 그것은 시간이 지난 후에 검증될 부분이니까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고. 마지막으로 제가 연기자니까 연기자의 본분대로 무대에서 관객들과 만나서 호흡하는 거죠.”

― 사실 이 질문을 꼭 하고 싶습니다. 지금 자신이 자유롭다고 느낍니까. ‘마음을 벗는 작업’으로 책을 펴냈는데 사회적인 압력이나 비난 때문에 오히려 자유롭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닌지.
“결론부터 말하면 저는 자유로움을 느끼고 있어요. 지금 말씀하신 그런 의미의 사회적인 억압, 이런 사회적인 틀 때문에 제가 자유롭지 않은 것은 아니거든요. 그런 비난 때문에 제가 상처받는다든지, 제 에너지가 쇠퇴한다든지 하면 자유롭지 못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어떠한 비난이나 사회적 억압이라도 제겐 상처가 될 수 없어요. 제게 신념이 있기 때문이죠. 제가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것은 제가 한 일이 있으니까 제 의무를 적절하게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는 제가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작업, 일, 생활, 삶, 사랑. 이런 것들이죠. 지금 저는 그동안의 삶 중에서 가장 행복하고 절정인 클라이막스 상태예요. 이 클라이막스가 멀티로 가기 위해서 적절한 조절이 필요하죠. 자유란 것은 한번 얻어지면 영원히 없어지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동전의 양면 같은 단 하나의 이것을 알기 위해서 그동안 그처럼 많은 고통과 시련을 겪어야 했나 봐요. 전 지금 굉장히 편안해요.”

― 지금 서갑숙씨가 찾은 ‘사랑’이라는 실마리를 따라 여행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는데 지금 말한 자유도 그런 자기확신에서 나오는 건가요?
“제가 좋아하는 표현 중에 ‘신발 끈을 단단히 조인다’는 게 있어요. 신발에는 존재의 의미가 있대요. 독일에서는 신발이 자기존재를 뜻한대요. 신발 끈을 조여맨다는 표현은 발을 내디딜 준비가 되었다는 거죠. 저는 여지껏 공중에 붕붕 떠다녔어요. 현실에 발을 못디뎠던 거죠. 무거운 짐을 지고 이리저리 이사다녔어요. 남의 셋방살이 하면서. 그것도 초라하고 부끄러운 짐을 지고 다니면서…. 그 짐들을 벗어던지고 땅에다 발을 딱 붙이고 나무를 심을 거예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삶이거든요. 그동안이 제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의미있는 시간이었어요.”

― 그 말을 들으니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안보고 손가락만 본다’는 비유가 생각나는군요.
“비난의 목소리도 많고 칭찬도 많은데 심경이 어떻습니까, 하고 묻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죠. 산에 올라가서 ‘야호 ―’ 하고 소리치면 메아리가 대답하잖아요, 그러면 굉장히 정겹잖아요, 그런 심경이에요. 어쨌든 제 이야기를 우리 사회가 좀더 진지하게 받아들였으면 해요.”

◇몸과 마음을 벗고 새 삶 살겠다

― 누드에세이는 촬영도 끝나고 원고도 탈고했으니 곧 책으로 나오겠군요.
“그런데 친구들이 옆에서 말리는 거예요. ‘야, 힘들지’. 그래서 ‘그래, 힘들다’ 그랬더니 ‘그 누드집은 좀 천천히 내라’고 하더라고요. 그렇지만 내가 하고 싶었고 또 이미 계획했던 것이라서 출판사와의 계약대로 낼 겁니다. 친구들은 누드집이 나오면 이번 책처럼 또 소동이 벌어질까 염려해서 그러는 거겠죠. 그래서 그랬죠. 오늘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내일 어떻게 될지 미리 짐작해서 복잡하게 살 필요없다고요.”

― 누가 말린다고 해서 그만둘 것 같지는 않군요. 그런데 누드집 나오면 진짜 판매금지 걸리는 것 아닌가요.
“그러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판매금지되는 ‘음란물’이라는 건 보는 사람에게 어떤 성적인 감정을 유발시키는 거라고 들었는데…. 제 누드에세이를 보고 성적인 게 유발되는 사람은 드물 것 같아요(웃음)
. ‘나 어때’ 하고 포즈를 취한 것이라면 몰라도. 저는 아주 미끈한 몸매의 싱싱하고 푸르른 20대의 몸이 아니잖아요. 수술 자국도 있고, 애기 둘 낳은 엄마의 배를 가지고 있는 몸인데요. 그러니까 시대에 따라서 변하는 미의 기준이 아니라 아름다움의 본성 있잖아요. 실크로드에서 자연 상태로 돌아간 원시성의 아름다움, 모든 길의 시작인 실크로드에서 제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하는 의미가 있죠.”

― 세번째 계획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말하지 않았는데.
“모노드라마요? 역시 사랑에 대한 꿈, 사랑에 대한 이야기예요. 제 책 내용을 근거로 한 것은 아니고. 우리 모두가 생각할 수 있는 성과 사랑을 담은 이야기를 드라마로 구성해서 관객들과 어울리고 싶어요.”

― 당분간 모노드라마 준비 때문에 바쁘겠군요.
“그것 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하도 들쑤시는 통에 어디 멀리 여행을 다녀올 생각이에요. 여담인데 일전에 충무로에서 ‘뜰 때 떠야 됩니다, 영화 합시다’ 하는 제안이 들어왔어요. 그래서 안한다고 분명히 제 의사를 밝혔는데도 다음날 신문에는 제가 ‘아홉시간의 정사’라는 영화에 출연하기로 했대요. 내년 3월에 개봉한다고 아예 못박아 놓았어요. 또 방송 MC 하자는 것도 거절했어요. 제가 뭘 하더라도 모노드라마가 끝난 후에나 새로 시작할 거예요. 지금 계획대로라면 내년 3월에나 무대에 올릴 수 있을텐데….”

― 일전에 책이 문제시되면서 방송 출연이 정지된 걸로 아는데.
“그건 아니고 출연하고 있던 청소년 드라마에서 퇴출당했죠.”

― 개인적으로 특별한 격려를 해준 사람은 없습니까.
“가장 큰 격려는 M에게서 받았어요.”
M은 그가 책에서 ‘내게 정신과 육체가 하나라는 것을 일깨워준 사람’이라고 밝힌 인물이자 세간의 화제를 모았던 ‘9시간의 정사’의 주인공이다. 그는 책에서 자신의 정사 장면을 비디오테이프에 담아 두었다고 밝힌 바 있다. 역시 M과 함께 찍었다.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그는 우리 사회의 성 담론을 위해서라면 이를 공개할 용의가 있다고도 말했다. 막상 이야기가 이 부분에 미치자 그는 무응답으로 거부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막상 M에 대해서는 ‘M리스트에 누가 오르내리느냐’며 관심을 보였다. 그는 M이 누구인지 알려지는 것에 극도로 신경을 쓰고 있었다.

― M은 가공의 인물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제가 책에 쓴 내용은 전부 사실입니다.”

― 그와 결혼할 겁니까.
“그건 아직 성급한 이야기 같습니다.”

― 당신을 ‘성 해방의 투사’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던데요.
“노 생큐.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제가 살고 싶은 삶을 살고, 표현하고 싶은 장르를 통해 저를 표현할 뿐입니다. 연기자니까 연기도 하고, 글을 쓸 수 있을 때는 글도 쓰고….”

김일곤 월간중앙 기자 <memento@joongang.co.kr>
월간중앙(http://win.joongang.co.kr) 제 289호 1999.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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