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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79)

중앙일보

입력

일러스트 Ⓒ 김영진, heakwan@ymail.com

단식, 개안수련 3

이사장은 말을 끊고 사이를 두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병력과, 무위했던 치료과정을 회한에 차서 돌아보고 있었다. 때로는 모멸감을 느끼면서도 살고 싶은 욕망만을 좇아서 의사들의 갖가지 처방과 메스에 기꺼이 던져주었던 자신의 몸이 마루타에 불과했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사장은 자신의 눈빛을 받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들이 지나가는지 알아차리는 데 탁월한 내공을 가진 사람이었다. 사람들에게서 회한과 자책을 이끌어내면 그 다음의 말들은 저절로 강력한 힘을 얻었다.

“그렇습니다. 소용없는 짓이에요!”
그는 결연한 눈빛을 내쏘며 짝, 손뼉소리를 냈다.
“소용없고말고요. 현대의학의 치료법은 다 이런 식이에요. 다시 말해, 내분비 기능장애에 의한 병들, 예컨대 간질환, 심장질환, 당뇨, 고혈압, 천식, 중풍, 치매, 신장질환, 관절염, 각종 암을 현대의학이 다 극복했다, 라는 말은 허세다, 소문이다, 뻥이다, 뭐 그겁니다! 수술이나 항암제로 완전히 고친다? 천만의 말씀!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권위 있는 의사들의 보고서나 언론보도에 다 나오는 얘기예요. 뉴욕타임스는 한참 전에 암세포로 가는 보급로를 차단하는 혈관생성억제를 통한 암 치료제 개발을 일면 톱기사로 다룬 적 있어요. 세계적인 신문의 일면 톱기사요. 하지만 결과는 어땠습니까. 동물실험에선 효과가 나타났지만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에선 성과가 거의 없었어요.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그래요. 여러분도 치료과정에서 이미 느끼셨겠지만, 병원은 죽어가는 우리를 근본적으로 구하지 못합니다. 사람을 물질로 보는, 이 싸가지 없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구할 수 있어요. 필요한 건 의식의 혁명입니다. 인간은 고도의 의식을 가진 신비한 유기체예요. 물질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보다 넓고 근원적인 관점에서 인간을 보지 않는 한, 우리는 죽어갈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아야 해요. 마음의 분열을 이겨내는 의식의 변혁으로, 마침내 밝은 눈을 얻어야 병을 이길 수 있어요.

나의 자연의식치유법은 약육강식의 일등주의로 병을 이기려 하지 않아요. 오히려 병을 모시고 달래서, 내가 새롭게 획득하는 영적 광채 앞에 병을 무릎 꿇려, 충직한 시종으로 만들자는 겁니다. 자연법이지요. 단식은 그중의 한 과정일 뿐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마음으로 관(觀)하면 집중의 단계는 저절로 높아집니다. 헛것들이 보이면 헛것들과 친해지세요. 나와 상관없이 나타나는 영이나 헛것은 애초에 없어요. 악령조차 내가 만들어내는 그림자니, 가까워지세요. 고통으로 굶지 마시고, 내 영혼의 흐름을 친구처럼 보면서, 동행하면서, 즐겁게 단식하세요.”
이사장의 목소리는 호소력과 카리스마가 넘쳤다.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사람들은 언제나 자책이 이끌어내는 절망과 그가 제시하는 희망 사이를 위태롭게 오가곤 했다. 결과는 그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와 굴복으로 이어졌다. 개안수련 프로그램은 이사장에 의해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맞춤식으로 제시됐다. 누구든 그의 프로그램을 거부하는 사람은 없었다. 초보이고 아주 몸이 허약한 몇 명은 5일 단식과정에 들었다. 3일 단식하고 이틀 보식하는 것이 가장 짧은 개안수련 과정이었다. 그 외의 대부분은 7일 굶고 3일간 보식하는 10일 과정을 수행했다. 두 주일 이상의 프로그램이 주어지는 사람은 소수의 경험자였다.

물을 마시는 것은 기본이었다.
하루 2,000cc의 물이 제공되는데 그중의 일부는 이사장이 특별히 제조했다는 ‘명안수’를 사서 마셨다. 명안수는 아무 맛도 없었다. 값은 상당히 비싼 편이었다. 감잎차와 죽염이 제공됐다. 백주사가 단전호흡법을 가르쳤으며, 명상시간을 나날이 늘렸다. 명상은 앉아서 하는 좌공(座功)과 누워서 하는 와공(臥功)으로 나눴다. 내가 하는 일 중에는 수련자에게 하루 한 번씩 하는 족탕(足湯)을 준비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섭씨 42도로 수온을 맞춘 물을 나무통에 담아 수련자에게 하나씩 제공하는 일이었다. 시시때때 더운 물을 추가하는 일도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엄지발가락엔 간장과 비장, 두 번째 발가락엔 대장과 위장, 세 번째 발가락엔 신장, 네 번째 발가락엔 담장, 다섯 번째 발가락엔 소장과 방광의 경락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나는 비로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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