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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저 8] 조지프 니덤의 '중국의 과학과 혁명'

중앙일보

입력

케임브리지대 생화학 교수로 있던 조지프 니덤(1900∼1996)
은 2차대전중 중국 정부의 과학고문으로 중국에서 지내는 동안 중국의 전통 과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로부터 50여년간 “중국의 과학과 문명” 편찬은 그에게 필생의 작업이 되었고, 이 작업을 중심으로 ‘중국과학사’ 학계가 형성됐다.

니덤이 이 작업에 착수할 당시 중국의 과학 전통은 중국인 자신들에게까지 외면당하고 있었다.

19세기 중엽부터 유럽 열강의 침략에 거듭 수모를 겪은 중국인들은 전통을 버리고 유럽 문명을 배우는 것이 장래를 열어갈 길이라는 믿음을 널리 가지게 되었다. 1910년대에 루쉰(魯迅)
이 ‘사이언스’와 ‘데모크라시’를 중국의 두 스승으로 떠받든 것이 이 믿음의 단적인 표현이다. 그 후에도 군벌의 할거와 일본의 침략을 겪으면서 전통에 대한 중국인의 자신감은 더욱 약해지기만 했고, 공산중국 성립 후에는 ‘죽(竹)
의 장막’으로 외부세계와 단절되었다.

중국이 몇백년 전까지 과학기술의 많은 분야에서 유럽보다 높은 수준을 지키고 있었고 현대과학의 형성에도 공헌한 바가 많다는 사실을 니덤이 밝혀냄으로써 서양문명은 절대적으로 우월하고 동양문명은 절대적으로 열등하다고 보는 ‘근대적’ 믿음이 무너졌다. 이것은 70년대 중국의 국제무대 복귀와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발전 이후 새로운 국제관계 전개에 하나의 열쇠가 되었다.

중국과학사의 광맥이 얼마나 큰 것인지는 작업을 시작할 당시 니덤 자신도 몰랐다. 54년 제1권을 낼 때까지도 그는 혼자의 힘으로 10년쯤 걸려 3천쪽 정도를 내면 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파고들어갈수록 광맥은 커졌고, 그가 타계할 때까지 40여년간 수십명의 협조자의 도움을 얻어 2만쪽 가량을 출판했지만 원래의 기획 의도에 비추어서는 아직도 미완성 상태에 있는 것이 “중국의 과학과 문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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