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확산일로 ‘재스민 혁명’ 후폭풍을 주목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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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장기간의 기상관측 자료 분석을 통해 나온 나비효과에 따르면 어떤 미세한 일이 발단이 돼 예측할 수 없는 엄청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지난해 12월 17일 북아프리카 튀니지 중부의 소도시 시디 부지드에서 발생한 26세 대졸 노점상 무함마드 부아지지의 분신자살이 나비의 날갯짓이 될 걸로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청년 실업의 가혹한 현실과 정권의 폭압성에 좌절한 그의 자살은 걷잡을 수 없는 태풍으로 변해 4주(週) 만에 튀니지의 23년 장기독재 체제를 무너뜨렸다. 그로부터 한 달도 안 돼 ‘최후의 파라오’로 불리던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30년 체제마저 붕괴됐다. 그 기세가 북아프리카와 중동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중국까지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에 자극받은 중국의 일부 네티즌들이 그제 베이징과 상하이 시내 한복판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깜짝 시위를 벌였다.

 이집트와 튀니지 사이에 있는 리비아가 당장 풍전등화(風前燈火)다. 42년째 집권 중인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가 군(軍)과 친(親)정부 세력을 동원해 무자비한 진압에 나서면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 사망자만 300명에 이른다는 보도도 있다. 국제사회의 쏟아지는 비난을 무시하고 유혈 진압을 계속할 경우 엄청난 희생이 불가피하다. 카다피 원수는 당장 강제진압을 중단하고, 시위대의 요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걸프해의 섬나라 바레인을 비롯해 아라비아 반도의 예멘과 요르단, 북아프리카의 알제리와 모로코에서도 잇따라 유혈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수니파와 시아파 이슬람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도 심상치 않다.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중동의 시위 사태는 장기간의 억압적 통치체제에 대한 불만이 불평등과 부패, 빈곤과 실업, 물가고 등 사회·경제적 문제와 만나 줄폭탄 터지듯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전체 인구의 60% 선에 달하는 꿈을 잃은 30세 이하의 젊은 층이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통해 서로 뭉치고 있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현상이다. 강제로 막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세상의 변화와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잠재우기 어렵다. 그것은 튀니지와 이집트 경우처럼 정권교체일 수도 있고, 거버넌스(governance·국정)의 전면적 쇄신일 수도 있다. 유혈 진압은 더 큰 화를 부를 뿐이다.

 중국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웨이보(微博)를 통해 ‘모이자’는 사발통문이 신속하게 확산되고, 이것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는 현상은 인터넷 단속과 페이스북, 트위터 차단에도 불구하고 정보 통제가 쉽지 않은 현실을 보여준다. 그 결과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처음으로 비록 상징적이지만 민주화 요구 시위가 거리의 현실이 됐다. 철저한 예방과 단속으로 이번에는 그냥 넘어갔지만 계속 그러리란 보장은 없다. 중국까지 민주화 열풍에 휩싸일 경우 그 파장은 가늠하기 어렵다. 북한만 외딴 섬으로 남아있을지도 의문이다. 튀니지발(發) 태풍의 파장과 진로는 예측 불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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