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 점 완성에 10년, 자연을 닮은 작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1982년작 ‘세번째 피부’. 훈테르트바서에게 세번째 피부는 살갗, 옷에 이어 집이다. 훗날 이 그림에 기초해서 오스트리아 빈의 시영아파트를 ‘훈테르트바서 하우스’로 리모델링했다.


그는 평생을 자연과 더불어, 아니 자연처럼 살았다. 말로만 환경미술이 아니라 그의 삶이 곧 자연의 일부였다. 평생 여행을 하며 떠돌다가 머물 때는 숲 속에 작은 집을 짓고 은둔했다. 농사를 짓고 옷과 모자, 가구도 직접 만들었다. 여행을 할 때도 낡은 범선을 개조해 탔다. 인간이 자연에 부여한 시간과 속도전 같은 삶을 거부한 것이다. 작품 한 점을 10년에 걸쳐 완성하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화가 겸 건축가 프리덴스라이히 훈테르트바서 (1928~2000). 강렬한 색감과 독창적 형태로 회화·건축·디자인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한 환경미술가다. 환경운동가·사회운동가·평화주의자로도 유명하다. 작품 수익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했다.

 특히 그의 동화적이며 자연친화적인 건축물은 마법 같다는 평을 받았다. 그의 고향 빈을 찾는 관광객이 빼놓지 않는 시영아파트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나 쓰레기소각장이 대표작이다. 그가 리모델링한 ‘훈테르트바서 하우스’는 아름드리 나무가 건물벽을 뚫고 외곽으로 자라나고, 시내 중심에 있는 쓰레기 소각장은 공해물질이 전혀 배출되지 않는 친환경건축의 모범사례다. 오스트리아의 가난한 마을을 친환경 관광단지로 개조한 ‘블루마우 온천휴양지’는 지역경제 부흥 효과를 낳았다. 영화 ‘반지의 제왕’ 중 호빗마을 디자인, 그린피스의 ‘고래와 바다를 살리자’ 포스터도 그의 작품. 미국·뉴질랜드에는 그의 이름을 딴 환경주간이 있을 정도다.

 직선 대신 곡선, 끝없이 순환하는 자연을 닮은 나선형 이미지, 동화적인 원색의 색채감각 등이 주된 특징이다. 수직이 인간의 질서라면 수평은 자연의 질서라는 그는, 이젤을 쓰는 대신 바닥에 종이를 펴놓고 사방을 돌리며 그렸다. 위아래, 좌우가 따로 없는 작품도 있다. 작가의 사인을 네 귀퉁이에 모두 남겨, 때때로 작품 상하가 뒤바뀌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색에 대한 통념을 뛰어넘어 모든 색을 직접 만들어 썼다.

 그 훈테르트바서의 특별전이 3월 15일까지 서울예술의 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유화·실크스크린·목판화·건축모형 등 160여 점이 전시된다. 전세계에 흩어진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그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02-545-3945

양성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