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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는 나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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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밥을 먹으러 식당에 들렀다. 생전 처음 본 나를 이모라 한다. 가만히 보니 손님·종업원·주방장 할 것 없이 너도나도 언니·이모·삼촌이란다. 엊그제 TV에도 강호동과 선우용녀 보고 ‘호동이 형, 용녀 이모’라고 부르던데. 아무래도 우리 모두 한 가족인가 보다. 하긴 남의 슬픈 일도 자기 일같이 아파하고 따뜻하게 대하는 인정 많은 우리 국민. 한 가족이라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파한다는 말대로 남이 잘되는 꼴은 그다지 반기지를 않는다. 슬픔은 같이 나눌지언정 남의 성공에는 배가 아픈 모양이다.

 알랭 드 보통이란 작가는 ‘평등하다는 생각 자체가 질투심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하면서 ‘질투가 무섭다면 동창회는 참석하지 말라’고 재미있는 충고도 하더라. 유난히 유행 따르기를 좋아하고 같은 스타일의 옷과 화장이나 취미까지도 같이하고 또 공감하는, 모두가 다 평등한 가족인 우리 국민은 그래서 질투와 시기심이 유독 많은가 보다. 하긴 나도 너무나 동떨어지게 나보다 잘난 사람에겐 아예 질투심이 생기지도 않더라.

 부러움과 동시에 질투심도 유발시키는 다른 사람들의 성공. ‘누구는 성공했다. 누구누구는 못 했다’ 등의 판단들은 주로 남들이 한다. ‘성공’이란 ‘목적하는 바를 이룸’이란 뜻이라는데 그렇다면 당사자가 뭘 목적으로 삼았는지는 알고서 판단하는가. 그 평가의 잣대는 또 뭘까. 명함에 적혀 있는 사회적 지위, 아님 취득한 물질의 양으로? 사회적 명성이란 것도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니고 물질적인 것 또한 끝도 없는 것이기에 아무리 성공을 했다 한들 ‘더 성공한 사람’은 꼭 있는 법. 그러기에 질투와 시기심이 맘속에 있는 한, 그 사람은 행복하긴 글렀다. 더 잘난 사람은 늘 있으므로 죽을 때까지 질투의 끈도 놓기 힘들다.

 나 또한 마찬가지. ‘질투는 나의 힘’이라며 늘 남과 비교하는 샘이 많은 성격인 탓에 난 늘 힘들었다. 그래서 꾀를 하나 냈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그 성공이란 정의를 내 맘대로 정하기로. 성공을 했건 못했건 주인공은 나다. 그 판단도 물론 내가 한다. 아무리 남들이 성공했다 말해도 내 안에 기쁨이 없다면 그건 성공이 아니요, 모두들 나를 패배자라 해도 내가 행복하다면 성공한 삶이다.

 옥수수에 붙어 있는 수많은 알갱이들. 저마다 생긴 모습과 색이 다르단다. 하물며 우리 인간들이야 얼마나 각각이겠는가. 그 사람마다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절대로 평등하지 않은, 고유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단다. 이처럼이나 다른 사람들을, 몇 가지만 비교해 성공 유무를 따진다고? 그 사람의 삶의 목적이 뭔지도 모르는 남들이 성공을 판단한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없는 건 아닐까. 마음속에 행복이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성공한 사람 아닌가.

 1년이면 두 번씩이나 주고받는 새해 인사. 설이 지나야만 진짜 새해다. 새해가 될 때마다 좌우명이랍시고 ‘뭐든지 하면 된다’ 하고 끝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도 좋겠지만, 가끔은 자신에게 채찍 대신 당근을 주며 ‘그만하면 잘했어 성공이야’ 하고 다독여주면 어떨까.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