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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입은 주차빌딩, 도시 랜드마크 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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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경기도 용인시 보정동의 헤르마 주차빌딩.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 이정훈씨는 “단순한 주차빌딩도 디자인 개념을 잘 적용하면 경제적 가치도 높이고 도시를 달라 보이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새로 지어진 주차장 하나가 동네풍경을 바꿔놓았다. 주차장은 단순 철골구조물일 뿐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주차장 같지 않은 주차장, 경기도 용인시 보정동에 있는 헤르마 주차빌딩이다. 이 건물은 욕심이 다부지다. 튀고 싶은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서가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향해 던지는 한 젊은 건축가의 단단한 목소리를 담고 있어서다.

 건축가는 이정훈(36·조호건축 대표)씨. 지난해 이 작품으로 ‘젊은 건축가상’(새건축사협의회·문화관광부)을 받았다. ‘2010 젊은 건축가상’ 수상자 7인에 대한 심사총평을 쓴 배형민(서울시립대) 교수는 “우리나라 현실과 대면하면서 끊임없이 생각을 놓지 않는 건축가”라고 말했다.

주차건물의 모서리 부분. 건물 네 면을 각기 다른 형태로 만들어 시각적 즐거움을 더했다.

 헤르마 주차빌딩은 독특한 디자인의 4층 규모다. 인근 카페거리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한다. 1층에 6개의 상업시설이 있고, 2~4층이 주차장으로 쓰인다. 주차장과 상가가 하나로 섞이는 ‘토털 디자인’(total design)을 이룬다. 계절과 시간, 그리고 시각에 따라 다양한 색채로 빛을 반사한다.

-이런 주차건물, 본 적이 없다.

 “주차장 그 이상의 것을 만들고 싶었다. 천편일률적 주차장은 흉물에 가깝다. 주차장도 동네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

-무엇을 염두에 뒀나.

 “기본적으로 두 가지 문제를 풀어야 했다. 첫째, 상업건물인 만큼 건축주의 제한된 비용으로 경제성을 충족시켜야 했다. 둘째, 기존과 다른 개성 있는 주차장을 만들어야 했다. 택지개발지구 안의 주차건물은 법규상 주차시설과 상업시설의 비율이 80대 20이다. 하지만 어느 가게가 보기 흉한 주차장에 달린 건물에 들어오고 싶어하겠나. 이 주차건물이 동네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숙고했다. ”

-생각은 기발하지만 비용이 문제다.

 “맞다. 작업하며 부딪힌 가장 큰 저항이 비용이었다.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외장 재료로 스위스산 ‘폴리카보네이트’를 사용했다. 자재업체와 협상해 저렴한 가격으로 쓸 수 있었다.”

-이 재료를 고집한 이유는.

 “전공이 건축재료다. (웃음) 건물이 비록 고정된 것이지만 이미지의 변화를 연출 하고 싶었다. 특수코팅된 폴리카보네이트는 주변의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시간·장소·시각 등에 따라 반사되는 빛이 달라진다. ”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다면.

 “주차장도 공공재 다. 큰 역 근처 환승주차장의 살벌한 풍경을 떠올려보라. 하루에 수많은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그곳을 지나다닐까 생각하면 안타깝다.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최소한의 윤리’가 끼어들 틈이 없다. 주차장이든, 상가든 볼썽 사나운 건물로 지어지는 데는 구조적인 이유도 있다. 삶의 질과 도시의 경쟁력을 염두에 둔 도시계획이 아니라 부동산 개념으로만 다뤄지고 있다.”

-도시계획의 문제점을 말하나.

 “ 우리나라 신도시 개발은 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구역 분할에만 매달린다. 아파트든 상가든, 투자와 임대·분양 방식으로 이뤄지는 개발방식을 재고해야 한다. 신도시의 경우,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부지를 팔 때 보다 세밀한 밑그림이 필요하고, 디자인 심사도 함께 하는 등 도시계획의 업그레이드가 절실하다고 느꼈다.”

용인=이은주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이정훈(36)=1975년생. 성균관대 건축공학과·철학과 졸업, 국비장학생으로 프랑스 유학. 프랑스 낭시 건축대학 건축이론 석사, 프랑스 건축사 취득. 파리 시게루 반·런던 자하 하디드 건축사무소 실무. 프하라 내셔널 뮤지엄 국제현상설계 최종 후보 (2006), 조호건축 창립(2009), 국립현대미술관 국제현상설계 공모 우수작(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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