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인터넷 카페 ‘창의와 꿈’ 운영하는 부모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창의력을 강조하는 시대다. 많은 부모들은 ‘어떻게 하면 자녀의 창의력을 기를 수 있을지’ 고민하다 서둘러 학원부터 알아본다. 그런데 자녀의 창의력 교육을 위해 직접 팔을 걷어 부친 부모들이 있다. 인터넷 까페 ‘창의와 꿈(cafe.naver.com/einstein2)’에서는 유·초등 아이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창의력 그림 그리기 프로그램을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준비물은 연필과 종이뿐이다.

준비물은 종이·연필, 그리고 엄마와의 대화

 9일 오후 서울 삼성동 주부 양지향(39)씨의 집. 유치원에서 돌아온 딸 신현서(7)양이 한참 그림 그리기에 빠져있다. 신양은 3월에 초등학생이 된다. 신양 앞에 놓인 A4종이엔 4개로 나뉜 네모가 그려져 있다. 각각의 칸엔 간단한 도형이 하나씩 담겨 있다.

 신양은 첫 칸 알파벳 A를 닮은 도형에 덧칠해 우산을 그리고 빗 속에서 우산을 든 소녀의 모습을 그렸다. 옆 칸에 있는 반원은 운전대로 바꿔 그렸다. 이어 자동차를 운전하는 아빠의 모습을 그렸다. 이 두 칸의 그림을 이으니, 비 오는 날 아빠가 자동차를 갖고 와 딸을 마중 나온 장면이 됐다. 신양은 그림을 두고 엄마와 이야기 꽃을 피웠다.

 양씨는 “직장에 다니는 빵점 짜리 엄마였는데 창의력 그림 그리기를 하면서 아이와 대화가 많아졌다”고 소개했다. “현서의 마음이 그림에 표현돼 아이의 생각을 읽는 데 도움이 컸어요.” 신양은 “인터넷 카페에 올려진 내 그림을 보고 친구들과 이웃 아주머니들이 칭찬을 해줘 즐겁다”고 자랑했다. 양씨는 “성취감과 자신감이 커진 것이 큰 소득”이라고 설명했다.

엄마가 집에서도 영재교육 시킬 수 있어

 이 창의력 그림 그리기는 소재도 주제도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 혼자 상상력만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주어지는 건 단순 도형일 뿐이다. 아이가 도형을 어떻게 연상하냐에 따라 그림이 달라진다. 그 도형은 물체와 인물 그림의 일부로 다시 태어난다.

 카페 운영자인 최정미(51)씨는 “단순한 것 같지만 어렵다. 처음엔 네모 한 칸조차 채우지 못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생각이 풍부해질수록 네모 칸을 늘려가게 되더군요.” 최씨는 요즘 다양한 활동지를 만들어 인터넷 카페에서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획일적인 창의력 교육에서 벗어나 영재교육을 대중화하기 위한 시도”라는 게 그가 카페를 만든 취지다.

 그가 KIM영재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만든 활동지는 6종류다. 주어진 도형으로 그리기, 신체·물체·모양을 찾아 그리기, 주어진 그림·단어·숫자로 상황장면 그리기, 상상동물 그리기, 가족에 대한 이야기 그리기, 이야기가 있는 그림 그리기 등이다.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주어진 상황을 바꾸거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스토리텔링 능력도 요구한다.

 최씨는 “네모 칸들을 모아 연재물을 만들거나, 네 칸을 이어 하나의 큰 그림으로 만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생각의 가지치기는 아이들마다 다르다. 최씨는 “창의력은 서로 다른 아이의 개성과 같다”며 “무조건 학원에 맡겨 영재교육을 하려다 이 카페에 들러보고 생각을 바꾸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인터넷 카페 문을 연지 6개월 밖에 안됐지만 입소문을 타면서 회원 수가 840여명에 이른다.

문제해결 자신감 커져, 영재시험에도 나와

 놀이로 즐기던 카페 회원 아이들이 최근 영재교육원 선발시험에 합격하기도 했다. 나서정(12)양은 전남대 영재교육원에, 이지아(10)양은 교육청 영재교육원에 각각 합격했다. 부모들은 학원도 다니지 않고 합격한 것에 놀라워했다. 나양의 어머니 정진희(40·전남 광주)씨는 “2, 3차 영재성·학문적성 시험에서 비슷한 문제가 나와 아이도 놀랬다”고 전했다. “사물을 보는 관점과 생각의 폭을 진단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씨의 딸 자매도 창의력 그림 그리기를 하면서 태도가 바뀌었다. 자신감과 자립심이 커졌다. 정씨는 “아이가 “이건 내가 이렇게 해볼게요”라며 문제해결에 망설임 없이 나선다”고 전했다.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그리기에 빠져들면서 행복해 하는 모습이 많아졌어요.”

 주부 임은경(38·전북 익산)씨는 아이의 관찰력이 발달한 결과를 카페에 글로 남겼다. 그는 “아이가‘이건 젖병 같다. 요건 샴푸 뚜껑 같네’라며 도형을 연상해내는 습관은 물론, 주변에서 비슷한 사물을 찾아내는 관찰력도 발달했다”고 전했다.

엄마도 눈높이 교육법 깨닫고 갈등요소도 줄여

 그리기는 엄마에게도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초등생 남매를 둔 이승연(39)씨는 “아이들이 생각을 자유롭게 구사하고 많은 표현을 쏟아내는 걸 보고 놀랐다”며 카페에 글을 올렸다. 이씨는 “창의성이라고 하면 으레 비싼 교구와 유명한 교재로 가르쳐야 하는 걸로 알았다”고 말했다.

 김영진(35·충북 청주)씨는 끝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5살, 7살 자매에 반응하다 보니 “엄마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촉매가 됐다”는 글을 남겼다. “알지 못했던 아이의 생각을 알게 되고 아이의 경험을 함께 나누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어떻게 가르칠까 고민만했는데 아이에게 다가서는 눈높이를 알게 됐다”는 설명이다.

 최윤희(38·경기도 남양주)씨는 “자녀와의 관계에서 갈등요소를 줄이고 아이의 동기심을 높여주는 법을 터득했다”는 소감을 남겼다. “카페에 올려진 아이 그림 밑에 달린 네티즌들의 칭찬 댓글을 보고 아이가 더 열심히 하려 노력합니다. 생각하는 시간도 늘어났죠.”


[사진설명] 신현서양이 자신의 공부방에서 그 동안 그린 창의력 그림들을 펼쳐 보이고 있다. 한자리에서 십여 장을 뚝딱 그려낼 정도로 “재미있는 상상이 자꾸 머리에 떠오른다”고 자랑했다.

<박정식 기자 tangopark@joongang.co.kr 사진="황정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