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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의 권력 하이재킹 … 이집트 최악 시나리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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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김영희
대기자

현상타파 뒤에 오는 것은 불확실성(uncertainty)이다. 이집트 혁명처럼 타파되는 현상이 완고할수록 따르는 불확실성도 크다. 이집트 젊은이들이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의 30년 철권통치에 마침표를 찍고 아래로부터의 M(모바일)혁명의 역사적인 위업을 달성했다. 그것은 첨단 정보통신기술(IT)이 가져온 문명의 새 패러다임에 무지했던 무바라크의 전근대(pre-modern)에 대한 포스트모던(post-modern)의 승리다.

 지금부터가 문제다.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이 무바라크의 퇴진 소식을 환영하면서 이집트의 변화는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한 것도 오늘 이후를 걱정한 말이다. 무바라크는 부통령 오마르 술레이만(Omar Suleiman)에게 넘기는 형식으로 9월 대선까지 대통령 자리를 지킬 궁리를 하여 10일 밤 권력을 부통령에게 넘기고 자신은 9월까지 대통령 자리에 남아있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여전히 사태 파악을 못 했다. 시위대의 격렬한 반발을 보고 나서야 그는 짐을 쌌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큰 권력의 공백이 생겼다. 30년 장기 독재로 야당은 자라지 못했다. 유일한 야당세력인 무슬림 형제단은 미국과 이스라엘과 유럽의 경계 대상이다. 무슬림 형제단이 총선에서 의회의 다수당이 되면 이집트에 이란 같은 신정(神政)을 펴거나, 적어도 팔레스타인과 알제리와 가자 지구처럼 반미·반이스라엘로 방향을 틀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기실현적 예언일 수 있다. 무슬림 형제단이 총선에서 많은 의석을 차지한다는 보장은 없다. 더 큰 걱정은 군(軍)의 견물생심(見物生心) 발동이다. 1979년 한국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뒤 서울의 세종로 바닥에는 권력이 굴러다녔다. 그것을 육군소장 전두환이 주워 87년까지 군사독재를 하지 않았던가.

이집트 군부 수중에 국정운영의 최고권력이 떨어졌다. 군 최고평의회는 비상사태령 해제, 헌법 개정, 자유롭고 공정한 대선을 치르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집트군 수뇌부는 경제적인 이권에 깊이 개입되어 있다. 이 나라에서는 군 지도부에 줄이 닿지 않으면 큰 사업을 할 수 없다. 이집트의 장성들은 수십 년 동안 산군복합체의 노른자위를 누렸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전두환처럼 군이 권력을 잡아 52년 나세르의 쿠데타 이후 계속된 부패한 군부통치가 연장되는 것이다. 차선이라고 해야 군의 기득권을 인정하는 개혁이다.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무기 제공과 군사원조를 통해 미국은 이집트 군부에 대해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 오바마 정부는 이집트 사태 초기에 사태의 본질 파악에 실패해 무바라크의 대통령직을 9월까지 유지하는 쪽으로 타협하는 실책을 저질렀다. 그것은 이집트 시위대에 대한 배신이었다. 미국도 이집트와 아랍의 다중(multitude)의 힘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 이집트 시위대를 모욕한 오바마 정부는 이집트 군부의 혁명 가로채기를 차단해 이집트 시민들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한다.

 이제 세상은 묻는다. “다음은 어느 아랍 국가인가?” 두 개의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성공한 뒤 아랍은 어제와 같을 수 없다. M혁명의 불길은 당연히 국경을 넘어 아랍세계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 탈영토화(deterritorialization)로 국경을 넘나드는 것이 모바일 혁명의 특징이다. 아랍의 정치지형은 근본적으로 바뀐다. 아랍·중동 석유에 경제의 사활을 건 한국도 실기하지 말고 새로운 중동·아랍에 정책의 코드를 맞춰야 한다.

김영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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