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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 잠꼬대는 병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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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 잠꼬대는 병이다
CEO를 위한 건강정보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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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만 해도 직원 약 20명을 거느린 중소기업 사장이었던 김만복(50)씨. 갑자기 찾아온 불황 때문에 부도를 낸 후 지금은 보험 영업을 하며 근근이 생활한다. 부부 사이가 나쁜 편은 아니지만 김씨의 잠버릇이 워낙 고약해 요즘에는 각방을 쓴다. 잠꼬대를 심하게 하는데, 들어보면 악몽을 꾸는 듯하다. “도와줘” “저리 가” 등 소리를 지르다가도 “무슨 일이야?”라고 물으면 벌떡 일어났다가 대답도 없이 다시 쓰러져 잔다. 여기까지라면 흔한 잠꼬대쯤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상한 행동까지 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자다가 장롱을 발로 차는 바람에 골절상을 입었다. 그 전에는 아내 얼굴을 주먹으로 때려 멍들게 한 적도 있었다.

노령일수록 렘수면장애 많아
중년이 지나면서 이런 증상을 보이는 사람이 늘고 있지만 나쁜 잠버릇 정도로 무심히 넘기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은 RBD(렘수면행동장애)라는 엄연한 병이다. 렘수면은 쉽게 말해 얕은 잠을 자는 상태다. 대부분 이때 꿈을 꾸며 주변의 작은 소리에도 잠을 깬다. 자는 동안 4~5번의 렘수면과 깊은 잠을 자는 논렘수면이 반복된다. 보통 한 주기는 90~110분 정도다. 렘수면은 수 분에서 수십 분 동안 계속된다. 렘수면 때 알파파가 뇌에서 나온다. 이때 깨어있을 때와 유사한 맥박·혈압·호흡 등이 나타난다. 논렘수면에 빠지면 호흡과 맥박이 느려지고 근육이 이완된다. 뇌파도 느려지고 델타파가 나온다.

일본 도쿄 요요기 수면클리닉의 이노우에 유이치 원장은 “잠꼬대 정도는 놔두면 낫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치료하지 않으면 나을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RBD 조짐이 보이는 사람은 하루라도 빨리 전문가를 찾아가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환자는 50대 이후의 남성에게 집중돼 있다. 60대 중반이 가장 많은데 80대에 발병하는 경우도 있다. 중국이나 유럽 등에서 실시한 역학조사에 따르면 환자는 고령자 200명 중 1명꼴로 나타난다. 보통 때는 온후하고 성실한 사람에게 많다고 한다.

이노우에 원장은 “어떤 부분의 뇌 신경에 장애가 발생해 RBD가 생기는지는 밝혀졌지만 대부분은 왜 그런지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병에 대한 인지도는 매우 낮은 편이다. 대부분이 단순한 잠꼬대 정도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알츠하이머나 레비소체병 인지증 등 뇌변형 질환과의 상관관계다. 파킨슨병에 걸린 사람 중에 RBD 환자가 많다는 사실은 그 전부터 알려져 있지만 RBD 환자 일부가 그 후 파킨슨병이나 레비소체병 등으로 이행될 위험이 있다고 한다. RBD를 발견함으로써 뇌변형 질환을 예견하고 조기치료로 연결 짓기 위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RBD는 주로 먹는 약으로 치료한다. 항간질약인 크로나제팜이 사용된다. 한 번 복용하면 며칠은 증상이 누그러진다. 완전히 치료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잠꼬대를 하면서 난폭한 행동을 하는 증상은 상당히 억제되며 잠꼬대를 하는 횟수도 준다. 이 약이 잘 듣지 않으면 호르몬제인 멜라토닌이나 도파민신경 촉진제 등을 조합해 사용하게 된다. 스트레스나 술이 증상을 심하게 하기 때문에 RBD 환자는 술을 끊는 것이 좋다.

약은 되도록 계속 복용해야 한다. 증상이 조금 호전됐다고 약을 중단하면 다시 악화하기 때문이다. 진단은 수면 폴리그램 검사에서 렘수면 중의 근육 움직임을 확인하고 꿈의 내용과 행동이 일치하는지 알아본다. 혼자서는 자신의 증상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치료를 위해서는 가족의 도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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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처럼 수면장애도 문제지만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못 자는 불면증도 괴롭긴 마찬가지다.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스트레스가 쌓이는 사회 환경 탓에 잠 못 드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 오사카에서 3대째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마이 마코토 박사는 내원 환자의 약 10%에게 수면제를 처방한다. 처음부터 잠이 안 온다고 호소하는 사람보다는 감기나 고혈압, 당뇨병 등을 상담하기 위해 병원을 찾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위가 더부룩하다” “두근두근 거린다” 등의 호소를 잘 들어보면 실은 잠을 잘 못 자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잠을 못 자고 신경의 긴장이 계속되면 혈압이나 혈당치가 불안정해지거나 생활습관병 등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최근 연구에 의해 밝혀졌다.

불면 원인을 제대로 밝혀야
일본 후생노동성 연구반이 32만 명의 진료보수 데이터를 조사한 결과, 2009년에 3개월간 한 번이라도 수면제를 치료용으로 처방 받은 사람은 4.8%였다. 20명 중 1명꼴이다.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비율도 높다. 65세 이상의 경우 여성은 6명 중 1명, 남성은 10명 중 1명꼴이다.

수면제 사용이 쉬워진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전에는 마취약의 일종인 발비츨 계통이 수면제로 사용됐다. 이 약은 신경을 차단해 기절(?)하게 함으로써 잠을 재운다. 이 때문에 심장이나 호흡기에 영향이 있어 투입량이나 사용방법에 문제가 있으면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주류가 벤조디아제핀 계통으로 바뀌었다. ‘정신안정제’ ‘항불안제’로도 불리는 이 약은 졸음을 방해하는 불안이나 긴장을 제거함으로써 수면을 유도한다. 약효는 2시간 정도에서 수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10년 전부터는 졸음만을 유도하는 비(非) 벤조디아제핀계도 가세했다.

수면제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불면의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지 않고 막연하게 사용하고 있는 경우도 문제로 지적된다. 불면 때문에 진료 받은 사람 가운데 1개월 이상 계속되는 만성불면은 약 10% 정도였지만 그중 약 80%는 다른 병이 불면을 초래한 경우다. 울증이나 불안정신증 등 마음의 병이나 체내시계의 리듬 장애, 다른 병 때문에 복용하고 있는 약의 부작용 등이 원인이다. 따라서 근원적인 병을 치료하지 않으면 불면 문제는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다.

수면클리닉 자미원의 허정원 원장은 “수면제는 어디까지나 잠자는 것을 돕는 소도구에 불과하다”며 “불면의 원인이나 병을 제대로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수면제를 오·남용하면 큰 부작용이 생길 수 있지만 의사와 상담해 제대로 사용하면 그다지 무서운 약은 아니다. 환경이나 계절의 변화에 따라 약효가 자신에게 맞는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국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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