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의 금요일 새벽 4시] “원래 11만7000원 있었는데 10만원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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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청와대, 국회, 대사관, A매치가 열리는 경기장, 높으신 분이 참석하는 행사장…. 무슨 공통점이 있을까요. 바로 검색대입니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테러 등에 대비하기 위한 ‘착한 장치’입니다. 하지만 사진기자들에겐 아주 ‘불편한 장애물’입니다. 어깨 가득 둘러멘 카메라 장비들을 일일이 확인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투비아 이스라엘리 주한 이스라엘 대사 인터뷰를 위해 이스라엘 대사관을 갔습니다. 앞선 취재기자는 볼펜과 수첩, 그리고 녹음기가 전부입니다. 이제 사진기자인 제 차롑니다. 카메라 하나에 렌즈 셋, 스트로보 다섯에 조명스탠드 둘, 우산 둘, 여기에 삼각대 하나까지 이고 진 접니다. 카메라 배터리를 갈아 끼워 보라고 할 때 뭔가 심상찮은 기운을 느꼈습니다. 렌즈를 전부 갈아 끼우고 셔터를 눌러보라 하더니, 스트로보까지 모두 터뜨려 보라고 합니다. 우산을 펴서 구석구석 살피고, 삼각대까지 폈다 접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페레스 전 대통령 인터뷰(2010년 6월 12일자 섹션) 때보다 심한 검색을 합니다. 사무실로 돌아와 옆자리에 앉은 후배에게 풀어놓은 넋두리는 비수가 돼 돌아왔습니다. “선배, 면도한 지 얼마나 됐어요? 그리고 그 비니도 쓰고 들어갔죠? 딱 테러리스트 외모구먼, 뭘.” <박종근>

◆“이름을 천천히, 다시 한번 발음해 주세요. 철자는 어떻게 씁니까?” 『Mr. 버돗의 선물』의 저자 테드 겁 교수를 인터뷰하기 위해 오전 1시에 미국 보스턴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제 소개를 했더니 이름을 다시 한번 말해 달라는 겁니다. “아, 제 아들 이름과 같은 것 같아서요.” 그의 목소리가 반가워집니다. “오, 맞아요. 제 아들 이름에도 ‘현’자가 들어갑니다.” 유대계 백인이라던데 어찌된 일인가 싶었습니다. 그가 설명합니다. “아들이 둘인데, 둘 다 한국에서 입양했습니다. 지금은 스물한 살, 스무 살 대학생으로 컸지요. 각각 따로 입양했는데, 둘은 친형제입니다. 우리 부부가 지금까지 한 일 중에서 가장 잘한 일입니다.” 아들이 태어난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걸 도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한국계 미국인인 친구를 아이들의 대부(代父)로 삼았답니다. 생전 처음 해본다는 한국 기자와의 인터뷰도 특별하게 정성을 기울이는 게 보였습니다. 전화 인터뷰는 분위기가 딱딱할 때가 많습니다. 눈을 맞추고 대화하지 못하는 탓이기도 하고, 만나주지 못해 전화로 하자고 제안할 정도로 바쁜 취재원들은 초 단위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겁 교수도 시간이 더 걸리니 e-메일 인터뷰는 사양하고, 반드시 전화로만 인터뷰를 하겠다고 했거든요. 이번 인터뷰에서는 겁 교수 아들들 덕을 톡톡히 봤습니다. 강의와 저술, TV 출연 등으로 바쁜 그가 아들들 때문에 한없이 부드러워졌기 때문입니다. <박현영>

◆5시간30분. 김정식 목사와 인터뷰한 시간입니다. 기자 되고 한 사람을 붙잡고 이렇게 길게 얘기해 본 것은 처음입니다. ‘까칠’한 질문도 많이 했습니다. 목사 되기 전까지 제대로 살았다고 생각하느냐, 장애인 봉사활동을 오래 했다는데 돈 문제로 잡음은 없었느냐…. 종교·봉사 활동은 둘 다 쉽지 않은 주제입니다. 종교는 민감한 문제고, 봉사활동은 검증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무례하게 들릴 수 있는 질문을 쏟아냈던 것도 그래서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쯤 되면 인상을 한 번 쓸 만도 한데 김 목사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는 “내가 어떻게 알려지는지보다 장애인들이 필요한 도움을 받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혹시 내가 실수라도 했을 때 내게 도움을 받았던 사람이 상처받을까 봐 한동안 밖으로 안 드러나게 활동을 한 적도 있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한 번으로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판단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가 어떤 삶을 살고 싶어 하는지는 알 것 같았습니다. 그의 지갑을 봤습니다. 1만7000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김 목사는 “원래 11만7000원 있었는데, 도움이 필요한 친구가 있어 10만원은 줬다”며 멋쩍게 웃었습니다. <김선하>

사람섹션 ‘제이’ 36호
에디터 : 이훈범 취재 : 김준술 · 성시윤 · 김선하 · 박현영 기자
사진 : 박종근 기자 편집·디자인 : 이세영 · 김호준 기자, 최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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