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엘리트들도 “키파야” … 무바라크 백기 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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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3주째 이집트 반정부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수도 카이로에 일촉즉발의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반정부세력이 지난달 25일 시위 개시 이래 세 번째 금요예배일을 맞는 11일(현지시간) 또다시 ‘100만 명 항의시위’를 열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슬람권 국가의 반정부시위에서 금요예배는 시위를 ‘혁명’으로 이끄는 불씨 역할을 했다.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에서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는 금요예배 때 모인 시민들의 시위를 통해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렸다.

 11일 예정된 ‘100만 명 항의시위’는 전국의 노동조합 세력까지 가세해 이집트 전역에서 반정부시위가 더욱 격화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10일 카이로에서 열린 시위에 의사·변호사·대학교수 등 사회지도층이 대거 참여하는 등 이집트 반정부시위가 새로운 동력을 얻고 있다.

 이날 카이로의 대형병원 의사 등 의료 관계자 3000명은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에 가세했다. 카이로의 카스르 엘 아이니 병원의 의사 수백 명은 흰색 가운을 걸친 채 “동참하라, 이집트인들이여”라는 구호를 외치며 병원에서 타흐리르 광장까지 가두행진을 벌였다. 변호사 등 법조인 수천 명도 대통령궁을 향해 행진했다. 이집트 주요 대학의 교수들도 7일부터 잇따라 성명을 내고 민주화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평화적 시위를 계속해 달라고 청년과 대학생들에게 호소했다.

 카이로의 버스와 지하철 운전사들이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동참하는 등 노동자들의 총파업도 확산되고 있다. 9일 시작된 총파업이 철도·전기·철강 등 각 분야로 확산되면서 시위 개시 이래 최대 규모의 파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9일 이집트 반정부 지도자들은 시민들에게 무바라크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실현하기 위해 ‘100만 명 항의시위’를 전개할 것을 촉구했다. ‘이집트 민주화의 상징’으로 떠오른 구글 현지 간부 와엘 고님(30)은 “민주화를 위해 죽을 준비가 돼 있다”며 11일 시위에 힘을 실었다.

 이 같은 시위 격화 조짐에 이집트 정부는 군대를 동원한 강경진압을 경고해 대규모 유혈충돌이 빚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흐메드 아불게이트 외무장관은 9일 아랍권 위성채널 알아라비야와 인터뷰에서 “혼란이 빚어진다면 군대가 국가를 통제하기 위해 개입할 것”이라며 “이는 매우 위험한 상황으로 악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카이로=이상언 특파원, 서울=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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