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 세계 상대 식량 구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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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전 세계를 상대로 전방위 식량 지원 요청에 나선 것으로 파악됐다. 외교 소식통은 9일 “북한은 지난해 말부터 아프리카 국가들을 제외하고 미국과 국교를 맺고 있는 유럽·동남아 국가, 국제기구 거의 모두에 식량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북한이 식량을 요청하지 않은 나라나 기구가 어디인지를 찾는 게 훨씬 빠를 만큼 무차별적으로 식량 지원 요청에 나선 상태”라고 전했다.

 정부 당국자도 “북한은 선진국인 미국과 유럽 국가들엔 무상으로, 동남아 등지의 개발도상국들엔 ‘나중에 갚을 테니 꿔달라’며 식량 지원을 요청 중”이라며 “이 같은 움직임은 최근 부쩍 심해졌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까지 북한의 식량 지원 요청에 응해준 나라나 기구는 없는 것으로 안다”며 “북한은 미국을 제외하곤 일본 등 미수교국엔 식량 지원을 공식적으로 요청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세계식량계획(WFP)에 보고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식량 생산량은 2009년(411만t 추정)보다 3%가량 증가했다”며 “북한이 WFP에 보고하는 수치는 실제보다 적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진짜 생산량은 그보다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만큼 정부는 북한이 식량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강성대국 진입의 해’로 설정한 내년에 맞춰 식량을 비축해두기 위해 전면적 외교에 나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이 당국자는 설명했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의 미국에 대한 식량 지원 요청에 대해 “지난달 뉴욕에서 미 국제개발처(USAID)와 주유엔 북한대표부 측이 만났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이 자리에서 USAID 측은 북한에 ‘식량 지원이 재개되려면 2008년 북·미 간에 합의했던 전면적이고 투명한 식량 지원 모니터링 조건을 전면 수용해야 한다’고 못 박았으며, 북한은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의향을 비쳤다”고 전했다.

북한이 식량 조달을 위해 중국에 무역상을 대거 파견하고 있다고 아사히(朝日)신문이 9일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북한 내각 각 부처와 군 산하에 있는 300개가량의 무역회사가 베이징에 약 1000명, 상하이에 약 600명, 지방 거점 도시별로 100~200명씩을 파견하고 있다. 이들 무역상은 1인당 연간 5000~6만 달러 정도 본국에 상납하고 나머지는 거래비용이나 생활비로 쓰고 있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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