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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창극 칼럼

발의 정치, 귀의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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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문창극
대기자

설 연휴에 남도지방을 여행했다. 땅끝을 넘어 보길도에 이르기까지 도로도 잘 정비돼 있었고, 사는 모습들도 이제는 많이 고르게 됐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깊은 산속 고요한 송광사 입구에 눈에 띄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민족문화 외면하고 종교편향 지향하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반대한다.” 우리나라 최고의 승보사찰, 불교계의 인재를 길러내는 이 평화로운 도량에 웬 정치구호인가 하는 언짢은 생각이 먼저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곧 오죽했으면 여기서도 이런 현수막을 걸었을까 하는 생각이 뒤따랐다. 이 정부는 불교계의 이런 마음을 알고나 있는 걸까?

 설날 이틀 전 이 대통령의 신년방송 좌담이 있었다. 대통령과 마주 앉은 사람은 대학교수와 앵커였다. 평생을 언론인으로 지낸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이었다. 청와대 기자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엄연히 각 언론사를 대표해, 아니 그 매체의 독자를 대신해 청와대를 취재하고 있는 그들을 제치고 엉뚱한(?) 두 사람과 마주 앉은 대통령. 자신들이 앉아야 할 자리를 빼앗기고 대신 그 대담 장면을 취재하느라 바쁜 그 모습…. 뺨을 맞고 있는 기분은 아니었을까. 국회에서의 연두연설은 고사하고, 왜 대통령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연두 기자회견조차 피했을까. 당연한 역할을 빼앗긴 언론인들이 느끼는 수치감을 알고나 있는 걸까.

 이명박 대통령의 부지런함은 그의 상표가 됐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재래시장을 찾아다니는 모습도 종종 보았다. 서민들의 생활을 살피고자 함이다.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면 왜 현수막까지 내걸고 자신을 반대하는 사찰들을 방문하지 않을까. 불교계 인사들과 만나 그들의 소리를 들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1000만 신도가 믿는 불교계를 설득하는 것이 시장 아줌마와의 대화보다 덜 중요한 것일까? 왜 기자들은 피하고 청와대가 선정한 사람들하고만 좌담을 하려는 걸까. 불편한 소리, 반대의 소리, 비판의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대통령은 인사 방식에 대한 질문을 받자 ‘팀워크’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효율적으로 일을 하자면 팀워크가 맞는 사람끼리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면으로 보면 ‘팀워크’란 말은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사람들만 선호한다는 뜻은 아닐까. 청와대 비서 출신을 독립기관인 감사원장으로 임명한 것도 그런 심정에서 나오지는 않았을까. 국정은 효율성도 중요하지만 방향과 화합이 더 중요하다. 대통령은 한 팀의 대표가 아니라 전체의 대표자다. 올망졸망한 자기 사람만 쓰다 보면 정부가 왜소해진다. 대통령이 듣기 싫어 해도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대통령의 인사가 비판을 받는 이유도 바로 이런 데 있는 것이다.

 대담자가 ‘우리 정치와 언론이 갈등을 부추긴다’고 말문을 떼자 대통령은 “변하지 않은 곳이 몇 군데 있다”고 묵시적인 동의를 했다. 우리 정치와 일부 언론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시각으로 보자면 대통령에게 반대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관은 역시 두 곳밖에는 없다. 그것은 불편한 진실이다. 대통령은 개헌을 해야 할 이유로 영·호남의 갈등을 들었다. 그러나 개헌을 한다고 수백 년 내려온 유산이 하루아침에 없어질까?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공존할 수밖에 없다. 다름을 인정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왜 다르냐”고 비난하기보다는 상대의 소리를 들어주는 것이다.

 물론 말하기는 이렇게 쉽지만 그렇게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우리는 잘 안다. 부부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아내의 쌓인 얘기를 남편이 잠자코 들어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남편도 항변하고 싶은 말이 많고 억울한 얘기도 많지만 그저 잠잠히 들어주는 것이다. 그 오랜 얘기를 듣다 보면 상대방의 상처난 마음이 이해되고 화해의 과정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권위자일수록 남의 말을 듣기보다 자기 말만 하기를 좋아한다. 이는 단지 지금 대통령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우리의 역대 대통령 모두가 비슷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진보든 보수든 우리는 자기 주장만 폈지 상대의 말을 들어보려 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렇게 사회적 갈등을 겪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우리 민주주의의 앞날은 주장하는 입이 아니라 들어주는 귀에 달려 있다.

 대통령은 좌담에서 여러 계획을 밝혔다. 리더 한 사람이 열심히 뛰어다니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서라도 방관하고 외면하는 사람들이 없어야 한다. 정치를 비난한다고 정치현실이 바뀌지 않는다. 차라리 그 현실을 바라보는 눈을 바꿀 수밖에 없다. 내 맘에 들지 않더라도 함께 가야 할 존재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비록 쉽게 설득시킬 수 없어도 애쓰고 있다는 감동을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은 인사청문회 때 반기를 든 한나라당에 청와대와 여당이 한 몸임을 강조했다. 함께 귀를 막고 달려가자는 얘기인가. 부지런한 발보다 귀가 넓은 대통령을 보고 싶다. 그것이 정치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문창극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