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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옥의 〈노말시티 (Normal City)〉

중앙일보

입력

오래전 고1때, 이것을 구상할 당시는 양쪽의 성을 지닌 주인공이 자기자신이 어느곳에서도 중간선, 경계선 (BORDER LINE)이라는 사실에 고민하는 여성상이었다.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닌것같고 여자이면서도 남자이기도 한 그 중간선의 관계를 스스로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아마도 그때는 좀 더 단순한, 그리고 감정쪽에 치우친 즐기는 고민 설정이었겠지만 결국 본론은 지금도 같은 것이다. SF의 흔한 (?!) 설정인 인공아라든가, 시대의 조류에 흔해져버린 양성/동성문제에 거듭된 작품생활의 반복속에서 초기에 생각했던 관점이 하나 떠올랐다. 〈별빛속에〉에서의 그 흔한 (이표현이 너무자주 나오지만) UFO라든가 왕녀라든가를 다루었을 때 생각한 것, 중요한 건 소재가 아니라 내부에 와닿게하는 ‘느낌’을 원했었단 사실을 - '인간'이란 결국 영원한 소재이다. 옛날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 강경옥 -

작가 경경옥이 얼마나 SF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수있는 머리말이다. 노말시티(NORMAL CITY)의 설정은 미래의 지구와 화성이지만 사실 눈에 띄는 SF적인 소재는 별로 찾아볼 수 없다. 〈별빛속에〉에서부터 보아왔던 텔리포트를 비롯한 여러가지 초능력이 작품속의 주인공들과 함께 또 하나의 주요역할을 맡고있을 뿐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작품에서 표현되는 초능력들은 SF적이라기 보다는 환타지적이라고 볼수있다. 그것은 분명 과거에나 현재에도 존재하는 현상이었고 비록 변형된 형태이지만 미래에서만 가능할 현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불어, 일반(NORMAL) 사람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능력이며 그런 연유로 그들의 환타지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1993년에 시작되어 거의 2여년동안 작품이 중단되었다가 다시금 윙크에 연재되고 있는 '현재진행형 ing' 작품인 노말시티. SF작품치고는 조금 약한 그림체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뛰어난 이유는 역시 강경옥작가의 인간본질에 근접하고 있는 글들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글들은 복잡한 캐릭터들과 그들에 대한 작가의 탁월한 심리묘사와 함께 회를 거듭할수록 독자를 더욱 빨아들이는 힘을 가지고 있다.

노말시티(NORMAL CITY)는 그 대전제에 있어서 에리히 프롬 (ERICH FROMM)의 1956년 저서인 건전한 사회 (THE SANE SOCIETY)와 맥을 같이한다. 화성의 컨트롤시티(CONTROL CITY)로부터 지구의 노말시티로 온 마르스는 지구 중립국가 정부국아래에서 작전을 수행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되는데, 과연 노말시티내의 보통의(NORMAL) 인간들이 인간적인지 아니면 자신의 인간성에 끊임없이 의문을 가지는 마르스가 인간적인지 질문을 던진다.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인 시온을 죽인다던가, 여러번의 자해를 시도하는 파괴성을 보여주기도 함으로써 그녀 (혹은 그의)의 인간성에 의문을 가지게 되지만 이것역시 프롬의 1973년작인 인간파괴성의 분석(THE ANATOMY OF HUMAN DESTRUCTIVENESS)를 보면 인간의 또하나의 본능중의 하나로 해석이 되는 부분이다.

정신병원의 환자들을 우리는 정신병환자라고 쉽게 이야기 하지만, 어떤각도로 보면 그들은 현재와 같은 대화단절의 비인간적인 사회에서 그들의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민감한 성향에 따른 반응으로 정신병이 발생하였을 뿐이며 그렇지 않고 비인간적인 환경에 잘 적응하는 존재는 적자생존에서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 정상적이다라고 간주되는 것은 아닌가라고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에서 의문을 던지고 있는데, 이러한 비인간적 환경이 개선됨이 없이 혹은 인지조차 되지않고 지속될 경우, 그 결말은 인류의 대전멸이 될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노말시티내에서의 시민들은 겉으로는 지극히 정상적으로 혹은 건전하게 보이나, 그 속을 조금만 볼것같으면 얼마나 비인간적인지 금방 알수있다. 정부와 대등할 정도의 권력과 기술, 재정을 갖고있는 사기업(맥스사)이나 개인(트롤)은 맘만 먹으면 못할것이 없다. 자신들보다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에스퍼를 차별화하는 시민들. 시외곽 혹은 내부에도 거주하는 오염된 사람들과 이들에 대한 배격. 죽음조차 의미없는 클론의 창조와 수단화. 이미 한차례의 인류 대전멸을 경험한 토대위에 세워진 노말시티의 모든것들이 인간의 또 하나의 본능인 죽음의 본능이 시키는 대로 또다시 처절한 결말을 맺을 조건들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문제는 그것이 노말시티라는 강경옥작가가 만든 세상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하여 우리사회에 만연해있는 비인간성을 만화 특유의 과장됨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스프리건이나 아키라에서 도구로 키워졌던 어린이들처럼 그리고 트롤의 어릴적 열등감에 대한 대안으로 미와 힘을 갖춘 고양이와 같은 실험체 혹은 애완용의 키티 (KITTY) 101로 탄생하였지만 마르스는 그러한 번호표로 불려지길 거부한다. 이러한 성향은 트롤에 의하여 창조된 다른 에스퍼들 역시 정도의 차이가 있으나 토롤에게 반항을 한다는 사실에서 찾아볼 수도 있는데, 이런설정에서 결국 작가는 인간이란 신에 의해서든 인간에 의해서든 세상에 존재하게 되는 순간부터 신도 로보트도 아닌 자유의지를 가지는 인간이다라고 보여주는 듯하다.

마르스의 생물학적 파트너인 비너스, 비너스를 좋아하는 아멘시타, 가장 친한 친구였던 시온을 죽인 그리고 이샤를 좋아하는 마르스, 꿈속의 가이와 현실에서의 마르스를 좋아하게 된 이샤, 베트맨의 펭귄맨처럼 마냥 미워만 할수는 없는 존재인 트롤등이 작품의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노말시티는 어떻게 마무리 지어질까? 트롤은 창조주인 타이렐회장이 레플리컨트에 의하여 최후를 맞이했듯이 블레이드 러너적 결말을 취할것인가? 아니면 에리히 프롬식의 인간을 구원하고 노말시티를 구할수 있는 마르스과 토롤과의 화해적 결말을 취할것인가? 비너스와 이샤중 마르스는 누굴 선택할 것인가? 혹은 아무도 선택하지 않을것인가? 정신은 원래의 시온으로 밝혀진 시온의 트론은 향후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11/15일자 윙크지에 92화를 연재한 노말시티는 아직 미완이지만 〈별빛속에〉와 함께 강경옥작가의 또 하나의 대표작이 벌써 되어버린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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