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인천 연안부두에 설날 아침 성묘객들 모인 까닭은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인천 연안부두 앞바다의 13·17번 부표는 명절이면 가족을 바다에 묻은 성묘객들로 붐빈다. 4일 설을 맞아 부표를 찾은 성묘객들이 국화꽃과 차례 음식을 던지며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최모란 기자]

“여보. 나 왔소.”

 4일 낮 12시쯤 인천 연안부두 앞바다. 근해 유람선 뉴월드호의 뒤 갑판에 선 정이영(66·여·인천시 남구)씨가 조용히 속삭였다. 정씨는 “먹고살기 바빠서 이제야 왔어요. 야속해하지 말아요”라며 차가운 겨울 바다 위로 국화를 던졌다. 3개월 전 그녀는 이곳 13번 부표 해역에 남편의 유해를 뿌렸다. 폐암으로 1년간 투병하던 남편은 “물결 따라 바람 따라 떠돌아다니고 싶다”며 “바다에 유골을 뿌려달라”고 했다.

 “막일 하면서 전국을 떠돌던 사람이 병원에 갇혀 있는 게 답답했나 봐요. 선산도 있었는데 마다하더라고요.”

 인천 앞바다에는 설·추석 명절마다 바다 성묘객들로 붐빈다. 이날 하루만도 연안부두를 세 차례 출항한 성묘 유람선에 300여 명이 다녀갔다. 유람선 선착장에서 8㎞ 정도 떨어진 13·17번 부표가 성묘 해역이다. 평소에는 뱃길을 알리는 부표지만 이들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을 가슴에 묻은 장소다.

 20여 분의 항해 끝에 “부우웅~” 하고 뱃고동이 울렸다. 성묘 해역에 도착했다는 신호다. “어머니~” “아들아~”하는 외침들이 터져 나왔다. 저마다 품고 왔던 국화꽃을 바다에 던졌다. 곶감·북어포·사과·배 등 차례상에 올렸던 음식이나 담배를 던지는 이들도 있었다. 유람선 스피커에서는 고인들을 추모하는 피아노 연주곡이 흘러나왔다. 30분 후 배가 돌아갈 채비를 하자 김분출(70·여·서울시 동작구)씨는 “안녕. 잘 있어”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7년 전 백혈병으로 먼저 간 딸을 이 바다에 묻은 그녀는 “시간이 지나면 잊을 줄 알았는데 더 가슴이 아프다”라고 말했다.

 인천 앞바다의 해상 성묘는 2002년부터 시작됐다. 김진만(40) 현대유람선 대표는 “10여 년 전부터 바다에 유골을 뿌리고 싶다며 배를 빌려달라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 바다장례식장 사업을 겸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7000여 명이 인천 앞바다에 묻혔다.

 평소에는 주 1회(일요일 낮 12시) 정도 추모 배편을 운영하지만 설 연휴가 낀 지난달 29일부터 6일까지는 24차례의 특별편을 운항했다. 설처럼 명절일 때는 1500~2000여 명이 바다 성묘를 다녀간다. 매년 3·6·9·12월에는 합동 천도재도 열린다. 유골을 뿌리고 성묘를 하는 곳을 13·17번 부표 해역으로 정한 것은 어장에서 멀리 떨어졌기 때문이다.

  북한이 고향인 실향민들이나 사할린 동포·화교·외국인 근로자들의 유골도 이곳에 묻힌다. 현대유람선 김영배(40) 부장은 “과거 이민선이 출항한 바다여서인지 미국이나 하와이 교포들이 이곳에서 바다장례를 치르기도 한다”라고 전했다. 탤런트 김명국씨(아들)와 한진희씨(장모), 방송인 김구라씨(어머니) 등도 가족들을 바다에 묻고 이곳을 자주 찾는다.

인천=최모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