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물에 담갔다 꾸덕꾸덕 말려 지져내면 담백·쫄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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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호 10면

설을 치르고 나니 후유증이 꽤 크다. 아무리 안 쓰려고 해도 모인 사람들에게 손가락을 빨게 할 수 없으니 결국은 살 것 다 샀고, 아무리 안 먹으려고 해도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채웠으니 배 속에서 기름기가 돌아다니는 것 같다. 한 달치 반찬값과 기름기를 모두 월초에 한꺼번에 먹어치운 셈이 됐으니, 2월은 기름기 없이 허리띠 졸라매며 강퍅하게 살아야 한다.

이영미의 제철 밥상 차리기 <47> 동태의 재발견

올겨울은 모든 것이 비싼데, 그래도 만만한 것이 동태다. 작년 여름에 동태 값이 치솟을 때에는 셰익스피어 희곡의 시저 대사처럼 “동태, 너마저!” 하는 외마디 소리가 터져나올 지경이었다. 윤기 반지르르 흐르는 생태도 아니고, 원양어선에서 건져 올려 탱탱 언 채로 들어오는 러시아산 동태 값이 한 마리에 5000~6000원이라니. 그래도 겨울에 들어서면서 다행히 동태는 예전 값으로 떨어졌다. 길거리 리어카에서 자잘한 것들은 네 마리에 5000원에 살 수도 있으니, 이처럼 싼 생선이 어디 있으랴.

사람들은 동태로 해먹을 음식이 별로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얼리지 않은 생태라면 맑고 시원하게 국물을 끓여먹을 수도 있으련만, 냉동해서 육질의 맛이 떨어진 동태는 그저 고추장, 된장 풀고 얼큰한 찌개나 해먹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얼큰한 생선찌개를 그리 즐기지 않으니 이것은 거의 해먹지 않고, 시어머님에게 배운 동태간국이나 반건조 동태구이 같은 것들을 해먹는다.

동태로 탁하고 얼큰한 찌개가 아닌 깔끔하고 맑은 국물이 있는 음식을 해먹고 싶다면 동태간국을 끓이면 된다. ‘간국’은 짭짤한 국물이란 뜻이다. 짭짤하게 소금으로 절인 생선을 국처럼 끓인 것, 혹은 조리듯 자작하게 끓여 반찬 삼아 먹는 것을 대개 간국이라 부른다. 그래서 간국의 핵심은 생선을 짜게 절이는 것이다. 동태를 깨끗이 다듬어 소금으로 짭짤하게 절여 냉장고에 하루쯤 둔다. 어두육미(魚頭肉尾)이니 당연히 머리도 버리지 않는다. 간국은 여기에 그대로 물을 부어 끓이는 것이다. 물 대신 쌀뜨물이나 찹쌀가루를 약간 푼 것을 넣으면 맛이 더 부드러워진다.

식성에 따라 무나 부재료를 넣어도 되지만, 나는 버섯이나 다른 재료를 그리 많이 넣지 않고 그저 깨끗한 동태 맛을 즐기는 편이다. 조선간장으로 간을 하고 넉넉한 마늘과 파를 썰어 넣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물과 함께 끓는 과정에서, 동태 살에 밴 짭짤한 소금기는 동태 맛과 함께 자연스럽게 우러나와 국물을 감칠맛으로 채운다. 생선을 절여서 하루쯤 두는 과정에서 약간 발효된 듯한 맛이 생기는데, 바로 그 국물이 우러나와 아주 매력적인 맛이 되는 것이다. 먹기 전에 식성에 따라 매운 고춧가루를 좀 넣어도 좋다.

적절하게 간이 밴 동태 살은 어찌나 쫄깃하고 맛이 있는지. 생태 맑은 탕은 살이 단단해지지 않도록 살짝 끓여 부드러운 살의 맛을 즐기는 것에 비해, 동태는 이미 냉동으로 인해 살이 퍼석해졌으니 아예 쫄깃하고 깊이 있는 맛으로 변화시켜 버리는 것이다. 즉 동태는 생태에 비해 싱싱한 맛이 떨어진 상태니, 싱싱하지 않다는 그 특성을 결점이 아닌 장점으로 만드는 조리법인 셈이다.

반찬으로 먹는 간국은 국물을 조금 잡아 자작하게 끓인다. 마치 자반 고등어 찜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파와 마늘, 식성에 따라 약간의 고춧가루 정도만 넣어 끓인다. 이것도 쌀뜨물을 쓰면 더 좋다. 자반 고등어든 절인 동태든 짜게 간을 하여 약간 발효된 생선의 맛을 즐기는 아주 훌륭한 방법이다. 쫄깃해진 동태 살을 젓가락으로 떼어내어 역시 짭짤한 국물에 적셔 먹으면 그야말로 밥도둑이다.

동태로 그럴듯한 생선구이를 할 수도 있다. 동태를 두어 도막을 내어 마치 구이용 생선을 손질하듯 길이로 넓적하게 가른다. 딱딱하게 언 동태를 집에서는 손질하기가 힘드니 아예 생선가게에서 이렇게 다듬어 달라고 하는 것이 좋다. 대개 생선가게에서는 어떻게 먹으려고 고등어나 삼치처럼 다듬어 가냐고 물어볼 터이나, 그냥 빙긋이 웃으면 된다.

동태를 깨끗하게 씻은 후 간을 하는데, 간은 물간을 해야 한다. 즉 소금을 생선에 직접 뿌리는 것이 아니라 소금물을 만들어 거기에 생선을 담가놓는 것이다. 물간은 간은 심심하게 하면서 살은 촉촉하고 부드럽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소금물은 싱거운 동태 살과 뒤섞여 생선구이의 간 정도로 바뀌는 것을 예상해 만들면 된다. 한 시간쯤 두어 간이 배어들면 건져서 그늘에 널어 말린다. 봄·가을에는 바깥바람 쐬면서 말리면 되는데, 요즘처럼 추울 때에는 건조한 아파트 실내에 두는 것이 가장 좋다. 바깥에서 말릴 때에는 파리가 달려들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은 기본이다. 생선을 말리는 용도로 나온 망이나 채반이 있으니 이런 것을 쓰면 편하다. 실내에서 말릴 경우에는 비린내가 좀 나지만, 싸고 맛있는 반찬을 위해 그 정도는 감수한다.

하루 정도가 지나면 동태 살의 표면은 약간 마르고 속은 마르지 않은 상태가 된다. 좀 더 마른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덜 마른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니, 취향에 따라 말리는 정도는 조절하면 된다.

이 꾸덕꾸덕 마른 동태를 프라이팬에 넉넉히 기름을 두르고 지져내면 완성이다. 살 자체가 고소하고 맛있는 고등어나 삼치, 감칠맛 넘치는 조기나 이면수도 아니고, 싱겁고 맹맹한 동태 살을 기름에 지진다고 무슨 맛이 있겠느냐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의외로 담백하고 맛있다. 동태를 말리는 과정에서 살은 쫀득한 질감으로 변하고 감칠맛도 더해진다. 정말 이게 동태일까 싶을 정도다.

시어머님은 명절이나 가족 모임이 있을 때마다 이것을 하셨다. 나이 들어 이제는 못하겠다고 매해 푸념을 하셨지만, 이기적인 입맛의 아들·며느리들이 “이것만은 안 돼요” 한목소리였다. 3년 전부터 이 음식은 이제 맏동서 형님의 몫이 되었고, 나도 간간이 집에서 해먹는다. 너덧 마리씩 다듬어 말려서 냉동실에 보관해 놓고, 필요할 때마다 기름에 지져 먹으면 반찬 걱정이 없다. 동태야, 고맙다.


이영미씨는 대중예술평론가다.『팔방미인 이영미의 참하고 소박한 우리 밥상 이야기』와 『광화문 연가』『 한국인의 자화상, 드라마』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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