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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걸린 브래들리의 역전 게임

중앙일보

입력

선수생활서 몸에 밴 타이밍 감각,
反클린턴주의와 철저한 인맥관리로 지지층 넒혀가

미국 캘리포니아州의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실리콘 밸리의 벤처 자본가들이 매달 서로 만나 미래의 첨단산업을 이끌어갈 기업인들을 물색한다. 투자자들이 스스로를 ‘천사’(angel)
로 부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기발한 사업 아이디어를 가진 유망 업체가 눈에 띄면 충분한 창업자금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천사들’의 눈에 띄지 않으면 물론 빈손으로 나가야 한다. 그 천사들이 지난해 8월 한 모임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 빌 브래들리(56)
로부터 이례적인 호소를 들었다. 브래들리는 뉴저지州 연방 상원의원(3선)
출신으로 1년간의 스탠퍼드大 객원교수 생활을 위해 서부에 갔지만 그보다는 실리콘 밸리의 신판 ‘골드러시 붐’에 매료된 것이 분명했다. 브래들리는 꿈과 아이디어가 그토록 빨리 현실화하는 데 놀랐다며 미국에 대한 자신의 유사한 비전을 펼쳤다. 결국 투자자중 한 명이 나서 그에게 대통령이 되는 것이 꿈이냐고 물었고 브래들리는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제 가족과 저는 낙하산도 없이 50층 빌딩에서 뛰어내려야 할지를 결정해야 합니다”고 말했다.

실리콘 밸리 사람들은 자신이 택하는 일에 따르는 위험에 대한 그같은 솔직한 대답을 좋아한다. 많은 벤처 자본가들이 그에게 투자할 준비를 갖춘 것도 그 때문이다. 평생 공화당을 지지했으면서도 선거운동이라면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는 밥 피츠윌슨도 그에 대한 지지를 약속했다. 브래들리는 피츠윌슨이 운영하는 투자회사의 단골 손님이 됐고, 그 회사를 방문할 때마다 그에게 벤처기업 설립에 따르는 복잡한 문제들을 캐물었다. 브래들리가 대통령 출마를 공식 발표하자 피츠윌슨은 그에게 1천 달러짜리 수표를 끊어주었다. 그로선 최초로 낸 정치 기부금이었다.

그는 또 공화당이 주종을 이루는 친구들과 친지들에게도 자신처럼 브래들리에게 기부하도록 부탁하는 전자우편을 띄웠다. 피츠윌슨은 “그가 말하는 것중에는 내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 대목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됨됨이며 그외 모든 것은 부차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브래들리는 민주당의 전통적인 돈줄을 놓고 앨 고어 부통령과 싸우기보다는, 선거운동에는 적극적으로 나선 적이 없으면서도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본과 연줄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노렸다. 그는 실리콘 밸리에서 보았던 유망 신생기업들을 모델로 삼아 스스로를 빌 클린턴 대통령과 정반대되는 사람으로 내세웠다. 타인의 인정(認定)
엔 아랑곳하지 않은 전설적인 운동선수로, 대범한 생각을 두려워하지 않는 지식인으로, 또 아무것도 감출 게 없는 성숙한 사람으로 자신을 홍보한 것이다.

브래들리는 워싱턴을 떠났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자신의 이채로운 경력에 다시 집중시킬 수 있었다. 농구선수였던 그의 꿈과 피땀어린 노력은 과거에 대한 향수를 간직한 베이비붐 세대에게 깊은 공명을 울리는 이야기다. 부드럽게 말하는 그의 스타일조차 이젠 그가 무게있는 후보라는 방증이 됐다. 그에 따라 브래들리는 내년 2월 뉴햄프셔州 예비선거가 실시될 때까지 충분한 선거자금을 모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브래들리는 “우리가 87년 당시의 마이크로소프트社라면 다른 모든 후보들은 IBM”이라고 농담했다.

물론 약간의 차이는 있다. 마이크로소프트社가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그것이 지금처럼 거대 기업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브래들리의 선거운동이 신생기업을 아무리 본떴다 해도 분명한 사실은 그가 고어와 겨룰 수 있을 만큼 철저한 사전 준비를 갖춘 후보라는 점이다. 프린스턴大 농구팀 선수로, 美 프로농구(NBA)
명예의 전당 헌액자로, 또 영향력 있는 상원의원으로 보낸 30년 동안 그는 대통령직에 출마할 경우에 대비해 기꺼이 자신을 돕겠다는 사람들을 수없이 확보했다. 96년 상원을 떠난 뒤 2년 동안 그는 그같은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브래들리는 최종적인 출마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출마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내리는 중요한 결정에 대해서는 좀처럼 친구들에게 알리지 않으며 자신이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를 스스로 선택한다. 그러나 대개는 그가 적절한 때와 장소에서 그같은 결정을 내리는 것을 보면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브래들리의 삶을 관통하는 주제는 바로 타이밍 감각이다. 청소년 시절부터 학업과 운동으로 찬사를 받은 그는 자신의 본능적 감각을 철저히 믿었다. 88년 누군가가 그에게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설 것을 권유했을 때도 그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4년 뒤인 92년에도 민주당 후보로 유망했지만 또다시 출마를 사양했다. 부인의 유방암이 결정적 요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진단이 나오기 전부터 불출마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 친구들의 설명이다. 그는 12세 난 딸 테레사 앤이 어디를 가도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브래들리가 상원의원으로 재직하는 동안, 그리고 부인 어니스틴이 뉴저지州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동안 딸은 브래들리와 함께 워싱턴에서 살았다. 어니스틴은 또 열심히 책을 쓰던 중이었고 브래들리는 이를 방해할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그는 박빙의 상원선거를 이제 막 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출마 타이밍이 적절치 않아 보였던 것이다.

브래들리가 정치는 붕괴돼 있고 사소한 싸움에 휘말려 있다고 양당을 싸잡아 공격하며 96년 상원의원직 은퇴를 결정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민주당 주자로서 그의 기회가 사라졌다고 믿었다. 그러나 브래들리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생각이 달랐다. 브래들리의 오랜 뉴욕 닉스팀 동료선수인 윌리스 리드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상원을 떠나며 내게 ‘좀 쉴 작정이지만 자네에게 다시 연락을 하겠네’라고 말했다. 난 그를 잘 알기 때문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브래들리는 97년 초 뉴저지州 뉴어크의 자택으로 돌아가 헬스클럽 부근에 조그만 사무실을 마련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메릴랜드大에서 연구교수로 2년 간 지내며 상원의원 재직 시의 의정활동 경력을 담은 저서 ‘현재, 과거’(Time Present, Time Past)
의 마무리 작업에 들어갔다. 월스트리트 회사인 J.P. 모건社의 고문직(연봉 32만7천 달러)
도 갖고 있던 브래들리는 TV에도 진출해 농구경기 해설자로, 또 CBS 방송을 위해 에세이 제작에도 손을 뻗쳤다. 결국 TV 진출은 실패했지만 브래들리는 TV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줄 때가 가장 진실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TV 대신 순회 연설을 통해 1년 동안 1백60만 달러 이상을 벌었다.

브래들리는 스탠퍼드大 정치학자이자 대학시절 룸메이트인 댄 오키모토의 주선으로 그해 가을 캘리포니아州 실리콘 밸리의 팰러 앨토로 갔다. 인종 문제에서 세계화에 이르는 주제에 관한 5차례의 연설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브래들리는 항상 정보를 주는 데보다는 얻는 데 더 관심이 많았다.

브래들리는 스탠퍼드大 내 객원교수 사무실을 사양하고 실리콘 밸리의 페이지 밀 로드에 있는 1층 사무실을 임대했다. 또 주거지로는 또다른 프린스턴大 동문으로 갭社의 창립자인 돈 피셔의 빈집으로 입주했다. 브래들리의 생활양식은 실리콘 밸리 주민들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볼품 없는 뉴저지州 자동차 번호판을 단 상처투성이의 흰색 세단을 타고 다녔으며 뒷좌석엔 책과 논문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는 대부분의 공식 행사에도 늘 똑같은 평범한 타이를 매고 참석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진실한 면을 더욱 부각시켜 주었다. 브래들리는 첨단 기술자들을 고어에게 내주는 대신 다른 후보들이 관심을 갖고 있지 않던 벤처 자본가들에게로 눈을 돌렸다. 브래들리는 또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을 발견했다.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일생의 대부분을 공적 무대에서 자신을 존경하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보낸 그가 자신을 평범한 미국인으로 간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또 처음으로 스탠퍼드大 농구팀의 열렬한 팬이 됐다. 오후 늦은 시간이면 그는 스탠퍼드大 농구팀의 연습장면을 지켜보기 위해 메이플스 퍼빌리언으로 차를 몰곤 했고 한번은 선수들을 위한 작전지시를 냅킨에 그려준 적도 있다.

브래들리를 아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가 출마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알아차린 것도 이 무렵이다. 브래들리는 외동아들로 결코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자신의 생각을 일부만 알려주는 버릇을 갖고 있다. 그것은 사람들을 감질나게 하지만 친구들과 스태프들에겐 진정한 충성심과 유대감을 고양시키는 것 같다. 그들은 브래들리와 대화하면 그가 상대의 말을 경청한다는 느낌을 갖는다.

브래들리가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아내 어니스틴뿐이지만 그녀도 때로는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그녀는 지난주 남편을 만나러 뉴욕에 갔을 때 남편이 방금 치아 신경 치료를 받은 사실을 알았다. 그녀는 “나는 그가 그런 치료를 받고서도 내게 말 한 마디 하지 않은 데 대해 너무 화가 났다”고 말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그의 대통령 출마 결정에는 가족 간에 충분한 토의가 있었다. 어니스틴은 “사실 둘이 함께 결정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의 결정은 내가 도와줄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내가 당신의 출마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출마를 원치 않는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타이밍도 적절한 것 같았다. 어니스틴은 자신의 책을 이미 탈고했고, 딸 테레사 앤도 뉴욕大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브래들리 부부는 지난해 여름 휴가를 이용해 다른 커플들과 함께 간 터키 여행길에서 친한 친구들로부터 몇 마디 충고를 들었다. 그 친구들은 여행에서 돌아오고 난 뒤 의견이 엇갈렸다. 일부는 틀림없이 출마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일부는 설마라고 생각했다. 브래들리가 실리콘 밸리에서의 한 해를 마무리하던 지난해 가을 마침내 결정의 순간이 왔다. 브래들리는 친구 오키모토에게 “이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브래들리는 일단 출마를 공식화하자 ‘비즈니스’를 염두에 두고 실리콘 밸리를 다시 찾았다. 지난해 12월 대통령 출마 여부를 가늠할 조사위원회 발족을 발표한 지 며칠 뒤 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또다른 오랜 친구 존 루스가 이끄는 모금책들을 만나 2천5백만 달러의 목표액을 설정했다. 또 오랜 친구이자 벤처 자본가인 테드 슐라인이 전문가 집단을 조직해 공격적인 모금 계획을 수립하는 한편 브래들리의 명성을 이용해 티셔츠·모자·범퍼스티커 등의 인터넷 판매에 나섰다. 집계 결과 브래들리 진영은 75만 달러의 기부금을 웹을 통해 확보할 수 있었다. 한편 뉴저지州에서는 브래들리의 프린스턴大 동문이자 자금줄인 릭 라이트가 그와 마주 앉아 “자네가 아는 사람이 누구 누구인가”고 노골적으로 물었다. 브래들리는 미국 전역을 지역별로 하나씩 짚어가며 연고자들의 이름을 댔다. 라이트는 “사실 깜짝 놀랐다. 그와 40년 지기인데도 내가 그가 아는 사람들의 극히 일부만 알고 있었다니”라고 그때를 회상했다.

브래들리는 그 ‘리스트’를 통해 매우 다양한 유권자 집단들로부터의 자금과 신뢰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핵심은 월스트리트였다. 브래들리는 18년 간 상원 재정위원회에서 일했고 당시의 금융인 상당수가 아직도 그의 화려한 농구선수 시절을 기억한다. 일례로 골드먼 삭스社의 존 손턴 회장은 자신의 열번째 생일 파티 때 프린스턴大 대표 선수로 뛰던 브래들리의 경기를 보러 간 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손턴은 지난 여름 처음 브래들리를 본 뒤 그를 위해 런던에서 모금행사를 주선했다.

물론 돈은 브래들리의 약진에 큰 몫을 차지하지만 스타 파워도 그와 대등한 몫을 차지한다. 브래들리는 첫 선거유세에 마이클 조던을 끌어들였고, 조던은 앞으로 더 적극적인 지원에 나설 지 모른다(논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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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브래들리는 흑인사회도 파고들고 있다. 고어는 클린턴을 지지하는 흑인 유권자들을 고스란히 물려받고 싶어한다. 브래들리의 친한 흑인 친구들 중에는 코넬 웨스트 하버드大 교수와 작가 존 에드거 와이드먼, 유명 변호사 테드 웰스가 있다(웰스는 브래들리의 자금 담당역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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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들리는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 기반인 흑인사회를 열심히 공략할 의사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앨 샤프턴 목사의 뉴욕 시장 선거운동본부장을 역임한 자크 데그라프를 스카우트했다. 데그라프 덕택에 브래들리는 대통령 선거 후보 중 최초로 할렘을 방문하고 샤프턴의 교회에서 연설하는 등 고어의 지지기반을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데그라프는 흑인 유권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가 쉬웠다고 말했다. 뉴욕 닉스 선수 시절 브래들리는 늘 아침 일찍 할렘에서 열리는 홍보행사에 참석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래들리는 예비선거가 본격 시작되는 내년 봄보다는 바로 지금 최고의 순간을 구가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고어는 엄연한 현직 부통령이고 아직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브래들리의 효율적인 초반 선거운동 기세는 시간이 가도 꺾일 줄 모른다. 오는 14일 그는 닉스의 홈구장 매디슨 스퀘어 가든으로 돌아가 스파이크 리·존 매켄로·크리스토퍼 리브 등이 참석한 가운데 수많은 지지자들과 함께 어울릴 것이다. 그는 그 행사에서 최소 1백50만 달러 이상을 모금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리콘 밸리의 천사들도 미소짓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들은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훌륭한 투자 대상을 알아보는 감각은 뛰어나기 때문이다.

With Karen Breslau in Silicon Valley,
Martha Brant in Chicago and
David A. Kaplan in New York

[Matt Bai 기자] 뉴스위크 한국판 통권 404호 199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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