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한 판만 더 지면 … 이창호 22년 만에 ‘무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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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최철한 9단, 이창호 9단(왼쪽부터)

이창호 9단이 국수전 타이틀 매치에서 1대2로 밀리며 막판에 몰렸다. 이제 한 판만 더 지면 이창호는 타이틀이 하나도 없는 상태가 된다. 한국 바둑을 찬연하게 빛냈던 ‘이창호’란 태양이 막 서산에 걸렸다. 1989년 14세의 나이로 첫 타이틀을 따낸 이후 한 해도 빠짐없이 우승을 보태 무려 138회나 우승했던 이창호 9단이 22년 만에 처음으로 ‘무관’의 위기에 선 것이다. 많은 팬이 이창호가 강력한 반격을 성공시켜 3대2 역전승을 거둬주기를 고대하고 있다. 이 9단을 궁지에 몰아넣은 천적 최철한 9단은 자신의 운명적인 ‘악역’에 몸서리치고 있다.

 이창호의 신화가 너무 찬란했기에 팬들은 그가 무관이 되는 것을 도저히 용납하기 힘들다. 오히려 팬들은 이창호가 결혼과 함께 힘껏 부활해 다시 한번 세계를 제패하는 멋진 드라마를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이창호 9단이 이긴 국수전 1국 때는 축하의 댓글이 쇄도하더니 25일의 3국에서 이창호가 지며 막판에 몰리는 상황이 되자 인터넷 바둑사이트들은 일제히 조용해졌다.

  최철한 9단은 걱정이다. 그는 2004년 응씨배에서 이창호를 꺾고 결승에 올랐으나 결승에서 중국의 창하오에게 패배한 뒤 네티즌의 호된 비판에 시달렸다. “우승도 못할 거면서 왜 이창호를 이겼느냐.” 또는 “최철한 바둑은 이창호만 상대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연구된 바둑”이란 터무니없는 비판이 대다수였지만 그로 인해 신경쇠약에 걸릴 지경이 되면서 깊은 슬럼프에 빠지고 말았다. 성품이 순한 최철한의 별명이 ‘독사’ 또는 ‘맹독’이 된 것도 이런 분위기와 전혀 무관하지 않다.

 최철한은 5년 후 응씨배에서 우승하며 비로소 슬럼프를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도 결승전 상대가 하필이면 이창호 9단이었다.

 이창호의 타이틀전 14세 우승(1989년)과 세계대회 17세 우승(1992년)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이창호는 18세(1993년) 때 처음으로 연간 우승 횟수가 10회를 돌파했고 20세(1995년)와 21세(1996년) 때는 연간 13회 우승으로 절정을 이룬다. 이후에도 1999년까지 우승 횟수에서 연평균 10회 이상을 달성한다. 2000년대 들어서도 이창호는 2001년 8회, 2002~2003년 연속 7회 우승으로 전성기를 이어간다. 하지만 이창호는 2004년의 국수전과 기성전 타이틀 매치에서 19세의 홍안 최철한에게 연속해서 타이틀을 잃는다. 바둑계에 이창호의 ‘천적’이 등장한 것이다. 이창호와 10년 후배 최철한의 질긴 악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통산 전적에선 아직 이창호 쪽이 27승26패로 앞서는데도 중요한 고비에선 꼭 최철한이 이겼다.

 이번 국수전에서도 최철한의 승리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최철한은 지난주 농심배에서 쿵제 등 강자들에게 4연승하며 한국에 우승컵을 안겨줬다. 상승세이고 컨디션도 최상이다. 게다가 스코어는 2대1로 유리하다. 이창호의 신화를 지켜 본 팬들로선 도저히 용납할 수도 믿을 수도 없는 ‘이창호의 무관’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국수전 도전 4국은 다음 달 14일 열릴 예정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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