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용석의 Wine&] 혹평 받다 호주 문화재 유산 된 펜폴즈의 ‘그랜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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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지난 25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호주 와인 펜폴즈의 론칭 행사가 열렸다. 펜폴즈 측은 기존 수입사를 롯데주류로 바꾸고 한국 와인시장을 재공략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국내 와인시장에서 금양인터내셔날에 이어 2위인 롯데주류는 펜폴즈로 1위를 탈환하겠다는 야심이다. 롯데주류 신승준 상무는 “펜폴즈로 국내에서 주춤하고 있는 호주 와인의 인기도 올라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1844년 설립된 펜폴즈는 호주 최고급 와인 ‘그랜지(Grange)’를 만드는 회사로 유명하다. 1950년 펜폴즈의 수석 와인메이커였던 막스 슈버트는 프랑스 보르도를 방문한 후 현지 와인의 품질에 놀랐다. 호주로 돌아온 그는 보르도 현지 방식을 따라 와인 생산을 시도했다. 1950년대 중반 ‘그랜지 51년산’을 내놓았지만, 전문가들은 “제정신인 사람은 아무도 마시지 않을 것”이라며 혹평했다. 회사 경영진은 그랜지의 생산 중단을 지시했다. 하지만 그는 비밀리에 와인을 계속 만들었다. 1960년엔 자신이 만든 와인을 남몰래 시드니 와인박람회에 출품했고, 그랜지는 금메달을 따내는 이변을 낳았다.

 그랜지는 이후 세계 와인시장에서 호주 돌풍을 일으켰다. 미국 와인전문지 ‘와인스펙테이터’는 그랜지를 ‘세기의 와인’으로 꼽았다. 모두가 비난했던 그랜지 51년산은 지난 2003년 경매에서 한 병에 5만500호주달러(약 5600만원)에 낙찰됐다. 호주는 그랜지 덕분에 싸구려 와인 이미지를 벗고 와인 강국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그랜지는 현재 호주에서 문화재 유산으로 등록돼 있다.

 펜폴즈는 애초 양조용이 아니라 치료용으로 생산됐다. 19세기 중반 호주로 이민 간 영국인 외과의사 크리스토퍼 로손 펜폴즈가 환자에게 처방하기 위해 와인을 만든 것.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치료보다 맛으로 와인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고, 펜폴즈는 와인회사로 탈바꿈했다.

 20세기 들어 와인이 건강주로 각광받게 된 것은 ‘프렌치 패러독스’ 때문이었다. 1970년대 미국의 한 방송에서 매일 육류를 섭취하는 프랑스 남부 사람들이 심장병에 걸리는 확률이 현저히 낮은 이유로 와인을 꼽았고, 이를 프렌치 패러독스라 부른 것. 방송 이후 와인은 미국 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먼나라 이웃나라』의 저자인 이원복 덕성여대 교수는 “프렌치 패러독스는 평소 음식을 천천히 섭취하고, 삶의 여유를 즐기는 프랑스 남부인들의 생활방식과 관련이 있지 않나 싶다”며 “와인 자체보다 와인을 통해 천천히 음미하며 대화를 나누는 문화가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손용석 포브스코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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