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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로 보는 세상] 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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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태어나고(生), 늙고(老), 병들고(病), 죽고(死)…. 사람이 살면서 피할 수 없는 고통(苦痛)이다. 불가(佛家)에서는 이를 사고(四苦)라 했다. 그중에서도 병(病)은 삶의 바로 옆에서 우리를 괴롭힌다.

 글자 ‘병(病)’은 ‘녁(疒)’자 밑에 ‘병(丙)’을 넣은 것이다. ‘녁(疒)’은 아픈 사람이 젓가락에 의지해 앉아 있는 모습이다. 그러기에 이 글자가 들어간 단어는 대부분 질병과 관계가 있다. 아픈 증세를 뜻하는 통증(痛症)이 그러하고 피곤하다는 뜻의 ‘피(疲)’도 마찬가지다. 잘 낳지 않은 질병은 ‘痼(고)’이고, 몸에 찬바람이 들어 생긴 병을 ‘풍(瘋)’이라고 했다. 지금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질병인 ‘암(癌)’에도 여지없이 ‘疒’자가 쓰인다.

 우리는 흔히 질병(疾病)이라고 쓰지만, 이 두 글자는 지칭하는 대상이 서로 다르다. ‘病’은 폐병과 같이 신체 내부에서 발생한 질병을 일컫고, ‘疾(질)’은 골절 등 외부의 충격으로 인한 병을 뜻한다. 또 ‘疫(역)’은 돌림병을 지칭한다. 요즘 우리나라 농촌을 덮치고 있는 구제역(口蹄疫)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어찌 사람의 몸뿐이겠는가. 국가도 자정능력을 잃으면 병들고, 사회도 건전하지 못하면 병이 생기는 법이다. 나라를 병들게 하고 국민을 재앙으로 몰아간다는 뜻의 ‘병국앙민(病國殃民)’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화국병민(禍國病民·국가를 망치고 국민을 병들게 한다)’이 같은 말이다. 병이 깊어 치유할 수 없는 상태를 뜻하는 ‘병입고황(病入膏肓)’에 이르게 된다면 개인이나 국가 모두 죽음에 직면하게 된다.

 신체와 국가의 병을 동일시한 구절이 『한비자(韓非子)』의 고분(孤憤)편에 나온다. ‘죽은 사람과 같은 병을 가진 자는 살아남기 힘든 법이다(與死人同病者, 不可生也). 망한 국가와 같은 형국의 나라는 존재할 수 없다(與亡國同事者, 不可存也)’고 했다. 개인이 병들지 않으려면 건강해야 하듯, 국가도 망하지 않으려면 힘을 길러야 한다는 뜻이다.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의 병가(病暇)가 세계 IT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암의 공격에도 잘 견뎠던 그다. 쾌유(快癒)를 빈다. 세계 IT업계는 잡스가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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