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바이올린〈The Red Violin〉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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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중에는 이런 류의 영화들이 있습니다.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해서 그 사람의 인생유전을 추적해가는 영화들 말이지요. 그것은 완전히 개인적인 것에만 국한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역사적인 사실과 결부되어 정치, 사회적인 성찰을 담기도 합니다.

6일 개봉하는〈레드 바이올린〉은 바로 이런 류의 영화에 속하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이 사람이 아니라 "바이올린"이라는 점이 다르지요.〈레드 바이올린〉은 영화의 형식이 흥미롭습니다.

연대기적인 사실을 다룬 영화에서 보이는 순차적인 시간의 흐름에 따른 전개방식이 아니라, 영화의 주인공인 바이올린이 탄생된 시점과 현재 바이올린이 경매되는 시점을 영화의 서두, 결말에 함께 배치해 놓은 구조입니다.

그 중간에는 바이올린이 어떤 사람들의 손을 거쳐 갔는가를 보여 주는 에피소드들이 병렬적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그 바이올린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의 후손이나 관계된 단체의 사람들이 현재 99년의 경매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1681년 이탈리아 크레모나. 이곳의 바이올린 장인(匠人)인 니콜로 부조티의 아내 안나 부조티는 출산을 앞두고 하녀에게 타로 카드로 점을 칩니다. 마침 니콜로 부조티는 생애 최고의 바이올린을 만들었지요.

안나는 모두 5개의 카드를 고르는데, 영화는 이 카드 한 장을 뒤집을 때마다 바이올린에 관한 에피소드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안나와 바이올린이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에 관한 복선이기도 합니다.

한편 1999년 캐나다 몬트리올, 그동안 발견되지 않았던 17세기 바이올린의 명품 니콜로 부조티의 레드 바이올린이 경매에 부쳐지는 순간이 이어집니다. 특히 이 장면은 매번 쇼트가 다시 보여질 때마다 중심인물이 바뀌고 있습니다. 즉 그들이 그곳에 있게 된 시간과 위치는 다르지만 한 장소에 모여든 사람들이 왜 그곳에 모여 있는가를 설명해 주는 데 매우 효과적으로 이 방법은 사용되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대로 이제 영화는 바이올린이 거쳐 가는 사람들을 보여 줍니다. 18세기 오스트리아의 수도원과 궁정, 19세기 영국의 음악회, 그리고 1960년대 중국의 문화혁명기를 거치지요. 이 과정에서 바이올린은 때로는 그 사용자와 함께 묻히기도 하고,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의 애장품이 되기도 하며, 중국에서는 서구 문물이라 하여 화형에 처해질 위기에 놓이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그 각자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후손이나 관계있던 단체의 사람들이 참여한 캐나다의 경매장으로 가지요. 이제부터 영화의 중심인물은 바이올린 감정가 역을 맡은 사무엘 잭슨이 맡습니다.

그는 바이올린이 진품인지를 추적해 가는 과정에서 "레드 바이올린"에 얽힌 사연과 비밀을 알게 됩니다. 1681년에 안나에게 타로 점을 쳐주며 그에게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던 늙은 하녀의 말도 여기에 와서 관객들에게 이해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는 99년 현재 몬트리올에 와서는 스릴러적인 요소를 포함하게 됩니다. 그 이전에 다소 평이하고 완만하게 바이올린 유전을 다룬 에피소드들과는 다르게 말이지요. 그렇다고 영화의 분위기가 갑작스레 반전된다는 말은 아니고, 새롭게 흥미로운 요소가 첨가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이 부분이 영화 전체적인 흐름에서 볼 때 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영화 초반부에 복선으로 깔아 놓은 바이올린 탄생의 비밀과 맞물리면서 이 스릴은 나름대로 관객들에게 인상적인 결말을 제공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영화〈레드 바이올린〉은 클래식의 간판이라고 할 수 있는 바이올린을 소재로 한 영화답게 고급스런 분위기를 시종 풍기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수도원 당시에는 알프스를 배경으로 한 멋진 자연 풍광과 18, 9세기의 귀족적인 분위기들은 이런 요소에 한 몫하고 있지요.

또한 촬영을 포함하여 영화의 시각적인 비주얼 자체는 매우 세련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시종일관 등장하는 음악, 조슈아 벨의 바이올린 솔로와 이사-펠카 살로넨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의 협연도 영화의 세련되고 고급스런 분위기 조성에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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