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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책과 담 쌓은 블레어, 바람둥이 E H 카 … 유명인을 발가벗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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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위대하거나 사기꾼이거나
폴 존슨 지음
이문희 옮김
이마고, 313쪽, 1만5000원

‘아내와 하인 앞에 영웅은 없다.’ 서양 속담이다. 영웅의 참모습을 알게 되면 대부분의 경우 그 아우라가 사라짐을 빗댄 말이다. 그런데 위인 명사들은 이제 이 책의 지은이 폴 존슨 앞에서도 몸 조심, 입 조심을 해야 할 듯하다. 언론인이자 전기작가인 폴 존슨이 60여 년에 걸친 자기 생애 중 만난 20세기 주역들의 시시콜콜하면서도 인간적인 모습을 가차없이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 교유 범위가 얼마나 넓은지 정치가에서 문인· 연예인까지 등장한다. 십 대 때 만난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전 영국 총리 이야기도 나오고 심지어 마오쩌둥(毛澤東· 모택동) 저우언라이(周恩來· 주은래) 전 중국 주석 일화도 담겼다.

 토니 블레어(Anthony C L Blair) 전 영국 총리는 독서를 거의 안 했단다. 총리로서 체면이 있어 겨우 신문을 읽는 정도였다. 그런 그가 말했다. “나도 책을 읽어요.” “무슨 책이죠?” 지은이의 물음에 블레어는 노예무역에 관한 책이라 답했다. 하지만 “얼마나 읽었는데요?”라 묻자 “아직 많이 남았어요. 이제 2장을 읽으려고요”라 답한다. 망신살이 뻗친 셈이다.

 지은이는 이처럼 명예훼손 소송감이 될 정도로 아슬아슬한 독설을 우리의 유명인사들에게 퍼붓는다. 조지 부시 1세(George H W Bush) 전 미국대통령은 “굉장히 겸손한 사람으로 보였다. 하지만 겸손해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평하고, 국내에도 잘 알려진 역사가 E H 카(Carr)는 “바람둥이 기질이 다분하고 냉혹하고 돈을 좋아하며 역사가가 아니라 정치적 선전물쪽에 타고난 소질을 지닌 기록인”,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인정받는 파블로 피카소(Pablo R Picasso)는 “고트족, 반달족, 청교도 혁명가들과 전체주의 악당들의 해악을 모두 합해도 그가 예술에 끼친 해악은 따라올 수 없다”고 꼬집는다.

 물론 읽는 이들로선 존슨의 평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다.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 총통이 “당대의 가장 성공적인 정치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난 닉슨 전 미국대통령은 “예리한 통찰력을 지닌 대가”라고 평하는 대목이 특히 그렇다.

 하지만 뒷담화는 역시 즐겁지 않은가. 미국 이혼녀와의 사랑에 빠져 영국 왕위를 버린 에드워드 8세 등의 잠자리 이야기도 있으니 말이다. 당사자들로선 괴롭겠지만 읽는 입장에선 정사(正史)의 이면을 들춰낸 흥미진진한 책이다.

김성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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