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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ㆍ이청용ㆍ손흥민, 이 멤버로도 우승 못하면 …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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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호 14면

박지성(가운데)이 지난달 30일 아부다비에서 벌어진 시리아와의 평가전에서 기성용(왼쪽에서 둘째)ㆍ이영표(오른쪽에서 둘째)와 함께 상대 선수를 압박하고 있다. 한국이 1-0으로 승리. [아부다비=연합뉴스]

아시아 축구의 최강을 가리는 2011 카타르 아시안컵이 6일(한국시간) 개막한다. 16개국이 출전해 4개국씩 조별리그를 치르고 각 조 상위 2개 팀이 8강에 올라 토너먼트로 우승팀을 가린다. 한국의 목표는 1960년 이후 51년 만의 왕좌 복귀다. 그래서 현지에서 타고 다닐 팀 버스에도 ‘왕의 귀환. 아시아의 자존심(Return of the King, Pride of Asia)’이라는 슬로건을 새겼다.
한국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이후 2010년 남아공 대회까지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다. 2002년 월드컵에서는 4강까지 진출했다. 아시아에 한국보다 더 큰 위업을 이룬 나라는 없다. 그런 한국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대회가 아시안컵이다. 한국은 1956년 열린 원년대회와 1960년 2회 대회를 제패했지만 이후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시안컵 우승 없이 맹주일 수 없다
세상은 달라졌다. 50여 년과 지금의 아시아 축구 환경은 완전히 다르다.
1956년 대회는 홍콩에서 열렸다. 한국과 이스라엘, 홍콩, 남베트남 등 4개국만 출전한 조촐한 대회였다. 재정이 넉넉지 못했던 축구협회는 KNA(대한항공의 전신)에 사정해 외상으로 비행기를 탔다. 9월 6일 오전 7시에 홍콩에 도착한 한국은 오후 2시에 홍콩와 첫 경기를 했다. 0-2로 뒤진 채 전반을 마친 한국은 후반에 따라붙어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한국은 2, 3차전에서 이스라엘(2-1)과 남베트남(5-3)을 차례로 꺾고 우승했다.

1960년 대회는 서울에서 열렸다. 지금은 헐려 효창공원이 된 효창운동장은 아시안컵을 위해 지은 경기장이다. 축구협회 기록에 따르면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관중석에 무려 10만 명의 관중이 몰렸다고 한다. 역시 4개국이 출전했고, 한국은 이스라엘(3-0), 자유중국(1-0), 베트남(5-1)을 물리치고 2연패를 이룩했다. 거기까지였다. 1990년대 이후 아시안컵을 주름잡은 나라는 일본이다. 1992년, 2000년, 2004년 세 차례에 걸쳐 우승했다. 나머지 두 번의 대회는 사우디아라비아(1996년)와 이라크(2007년)의 차지였다. 한국은 1990년대 이후 결승에 올라간 적도 없다.

조광래

각 대륙별로 축구 대회가 있다. 그중에서도 유로 2004, 유로 2008처럼 불리는 유럽선수권은 월드컵만큼이나 권위가 있다. 남미선수권은 코파 아메리카라고 한다. 아프리카에서 열리는 네이션스컵은 2년마다 열린다. 아시안컵은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명실상부 아시아 최강의 명예가 걸린 최고의 대회로 굳게 자리 잡았다.

한국 축구의 골든 제너레이션
축구협회 이원재 홍보국장은 지난달 조광래(57) 감독을 만나 “이번에 우승 못 하시면 정말 안 됩니다”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럴 만도 하다. 한국 축구는 황금기를 누리고 있다.

박지성(30·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영표(34·알 힐랄)의 기량은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유럽에 진출한 차두리(셀틱)도 독일과 스코틀랜드 리그를 10년 가까이 누비고 있다. 기술이 뛰어난 스코틀랜드 셀틱의 기성용(22)은 스코틀랜드의 날씨만큼이나 터프한 미드필더로 거듭났다. 잉글랜드 볼턴의 이청용(23)은 리버풀, 아스널 같은 팀에서 눈독을 들이는 블루칩이 됐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새로운 유망주가 쉴새 없이 등장하고 있다. 19세 소년 손흥민(함부르크)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올 시즌 가장 주목하는 신예다. 분데스리가 사무국은 2010~2011 전반기를 결산하며 손흥민을 ‘눈여겨볼 신인 선수’로 지목했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태극전사 23명 중에서 해외 무대를 경험하지 못한 선수는 11명에 불과하다. 예상 베스트 11 중 7~8명이 해외 무대를 누비고 있다.

주요 해외파 선수가 소속팀 사정이나 이적 초기의 적응 문제 때문에 출전하지 못했던 2004년과 2007년 대회와 달리 이번엔 한국 축구의 정예 멤버가 총동원됐다. 박주영(26·AS모나코)이 대표팀 합류 직전 열린 프랑스 리그 경기에서 뜻밖에 무릎을 다쳐 빠졌을 뿐이다.
 
조광래와 박지성, 같은 꿈을 꾼다
한국 축구 팬은 참을성이 없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사령탑에 오른 허정무,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감독으로 영입된 포르투갈 명장 움베르투 코엘류, 2006년 독일 월드컵 이후 코치에서 감독으로 승진한 핌 베어벡 감독 모두 중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허정무와 베어벡 감독은 아시안컵을 마친 뒤 물러났다. 코엘류 감독은 아시안컵예선에서 베트남(0-1)과 오만(1-3)에 잇따라 패한 것이 결정적 낙마 원인이 됐다.

조광래 감독이 부임하기 전부터 축구계에는 ‘지금 대표팀 감독은 핫바지다. 결국은 2012년 런던올림픽에 나갈 대표팀을 맡은 홍명보(42) 감독이 2014년 자연스럽게 국가대표 감독이 될 것’이라는 근거는 없지만 왠지 그럴듯해 보이는 주장이 나돌았다. 조 감독도 이런 소문을 들었을 것이다. 지난해 7월 취임한 조 감독은 아시안컵에서 분명한 성과를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다.
배수진을 친 사람이 또 있다. 대표팀의 주장 박지성이다. 월드컵 기간인 지난 6월 박지성은 “아시안컵이 나의 마지막 무대가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고 은퇴를 시사했다. 아시안컵 소집 직전에는 아버지를 통해 “무릎의 상태로 보아 무리하면 선수 생활을 3년밖에 못할 수도 있다”며 은퇴 의사를 표명했다.

여론이 비등하자 “은퇴는 아시안컵 이후에 논하겠다”고 한 발 물러서기는 했지만 아시안컵에서 우승한 뒤 멋지게 은퇴하고 싶다는 게 박지성의 솔직한 목표로 보인다. 한국이 결승에 진출하면 그는 A매치 100경기로 ‘센추리클럽’에 가입하고 붉은 유니폼을 벗을 수 있다. 박지성은 진심으로 우승컵을 염원하고 있다.
 
월드컵만큼 험한 아시아 무대
신구 조화를 이룬 막강한 진용, 우승을 향한 감독과 주장의 강한 열망. 우승하기 위한 기본 조건은 갖췄다. 그러나 아시안컵은 그리 호락호락한 대회가 아니다.

한국은 바레인·호주·인도와 함께 C조에 속했다. 조별리그 돌파를 장담하기 어렵다. 한국은 3년 전 2007년 아시안컵 4강에서 바레인에 0-1로 패했다. 유럽 팀의 체격을 갖춘 호주는 팀 케이힐(32·애버턴), 해리 큐얼(33·갈라타사라이), 브레트 에머튼(32·블랙번 로버스) 등 유럽 무대를 누비는 선수가 즐비한 우승 경쟁국이다.

기후와 풍토, 음식 등 모든 점에서 한국 선수들에게 편치 않을 중동에서 경기가 열리는 점도 변수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16개국 가운데 중동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이란·이라크·아랍에미리트 등 무려 9개국에 이른다. 이슬람 형제국들로서는 카타르가 홈이나 다름없다.

한국은 30일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107위에 불과한 시리아와 평가전을 했다. 한국은 후반 38분 터진 지동원(20·전남)의 결승골로 겨우 이겼다. 경기 내용은 90분 내내 시원하지 않았다. 0-0, 1-1로 비기거나 0-1로 져도 이상할 게 없는 경기였다. 중동에서 중동팀과 경기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준 사례다.

한국은 그동안 경제와 정치를 망라한 사회 전 영역에서 서구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 아시아 무대쯤은 가뿐히 뛰어넘을 것이라 여겼다. 축구에서도 한국의 목표는 늘 월드컵 본선이었다. 그러나 한국이 세계 무대에 나가 싸우는 동안 아시아 축구도 성장했다. 아시안컵 우승은 이제 월드컵 본선 못지않게 어렵고, 도전할 가치가 있는 목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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