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실험 금지조약은 '껍데기 뿐인 약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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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CTBT)
비준안에 대한 미국 상원의 논의는 수준 이하였다. 민주·공화 양측은 자신들의 입장을 부풀렸고 진정한 이슈를 외면했다. 비준 지지자들은 CTBT를 “하나의 분수령”으로 불렀고, 반대자들은 반대 이유를 후세에 대한 의무감이라고 주장했다(트렌트 로트 상원 공화당 원내총무는 자신이 ‘반대표’를 던진 것은 “조국과 자녀들을 위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

그러나 CTBT는 실제적인 내용보다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크다. 그 조약이 상원에서 통과됐다고 해도 핵무기 확산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러시아의 방대하고 취약한 핵무기 관리에 도움을 주기 위해 상원이 지원금 제공을 결정한 것이 더 큰 효과를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CTBT가 안고 있는 실질적인 결점은 ‘군비관리’와 ‘군비축소 및 해제’라는 두 가지 명제에 대한 혼동으로 그것은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향후 50년 동안 미국이 세계안보에서 맡게 될 역할과 거기에 핵무기가 일조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그런 혼동의 와중에 묻혀 버렸다.

군비관리와 군비축소는 핵시대가 낳은 ‘같은 몸통을 가진 쌍둥이’와 같다. 미국도 그 두 가지를 결부시켜 생각한다. 美 군비관리군비축소국은 군축협상 책임을 맡은 부서에 주어진 이름이었다. 그러나 그 두 가지는 매우 다르다. 군비관리는 안정과 예측 가능성을 추구하는 반면 군비축소 및 해제는 핵무기를 완전히 없애는 것을 말한다.

50년대 초 이래 미국은 그 두 가지를 추구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구분을 잘 해야 한다. 화학 및 생물학 무기 금지조약은 군비축소다. 30년간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 협정으로 추진되던 SALT(전략무기 제한회담)
와 START(전략무기 감축회담)
는 군비관리에 속한다. 미국이나 소련 어느 누구도 자신들의 미사일 폐기는 꿈도 꾸지 않았다. 그들이 제거하려 했던 것은 상대방의 무기고에서 가장 위협적인 것으로 판명된 무기들이었다.

물론 미국과 소련(나중에 영국·프랑스·중국이 이 핵클럽에 합류했다)
도 핵무기 해제를 도모했다. 하지만 그들의 목표는 자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국가의 핵무기를 폐기하는 것이었다. 69년 1백82개국이 핵무기 개발을 하지 않겠다고 서명한 핵확산금지조약(NPT)
은 이런 전략의 성공에 따른 산물이었다. 그러나 그로 인해 핵클럽 5개국은 ‘핵 보유국’으로 공식 인정된 셈이 됐다.

그대신 핵클럽 5개국은 스스로 핵무기 해제를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해야 했다. 이것에서부터 조건부 ‘거래’가 생겨났다. 핵 보유국들의 핵무기 해제를 조건으로 핵 비보유국들은 핵개발을 자제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리라고 믿었던 국가는 없다. 69년 당시 핵무기 개발 능력을 갖춘 국가는 거의 서방 선진국들이었다. 그들은 미국의 핵우산 아래 안보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핵무기를 포기했다. 그러나 그런 ‘거래’가 결국 CTBT를 낳았다. 그러나 이미 NPT로 핵무기를 포기한 국가들로서는 CTBT는 빈 껍데기에 불과했다. CTBT의 유일한 실용 목적은 조약의 ‘거래’ 조건을 성사시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CTBT는 핵클럽 5개국에 대한 핵무기 해제를 요구한다. 핵 실험이 없으면 핵무기는 결국 못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CTBT로 인해 미국은 사상 처음으로 핵무기 축소에 동의할 기회를 맞았다. 그러나 상원의 논의에서는 민주·공화당 모두 바로 그 점을 거부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실제 핵실험을 대체할 4백50억 달러 규모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개발 계획을 수립한 후에야 CTBT에 서명했다. 그러자 컴퓨터 모델링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데 대한 반발이 쏟아졌다. 결국 양측은 미국이 CTBT의 목적을 뒤집을 자신이 있는 경우에만 그 조약을 비준해야 한다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핵무기를 완전히 없앨 수 없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핵실험 금지는 결코 검증되지 못할 것이며, 핵무기 노하우는 계속 전파될 것이고, 핵발전소는 무기제조에 적합한 수준의 재료를 꾸준히 공급할 것이다. 또 위기가 닥치면 앞다투어 핵폭탄을 다시 제조하려 들 것이다.

이런 脫냉전 세계에서 더 유용한 논의는 누가 어느 정도로 핵무기를 보유해야 하며, 그에 대해 국제사회가 가할 수 있는 제한은 어떤 것이 돼야 하는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런 논의에서 미국은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미국은 유일한 초강대국으로서 많은 국가에 궁극적인 안보 공급자 역할을 하고 있다. 바로 그 점에서 미국의 핵무기고는 매우 독특하고 중요한 역할을 띤다.

냉전이 종식된 것은 10년 전 일이다. 이 정도면 솔직한 논의를 할 시기가 이미 지났다. 미국은 이제 국제안보 공급자 역할을 계속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또 국제사회는 핵없는 세계가 더 안전한 세계라는 환상적인 수사를 버리고 21세기에 핵무기의 진정한 역할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John Barry 기자

뉴스위크 한국판(http://nwk.joongang.co.kr) 제 401호 1999.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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