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국제자문단, 한국 경제개혁두고 내부 이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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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재벌 기업을 쪼개고 기업가 정신이 없는 경영자를 임명한다면 언젠가는 기업이 시들어버리지나 않을까 걱정된다"(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기업과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은 아직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니며 거시경제 지표가 호전됐다고 해서 구조조정의 속도를 늦추지나 않을까 우려된다"(오노 루딩 시티뱅크 부회장).

22일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자문단 창립회의에서는 한국 경제개혁의 방향에 대해 아시아 지역 인사와 미국적 가치를 신봉하는 인사간 시각차이가 드러나 주목을 받았다.

◇ 아시아 = 리콴유 전 총리는 오전 회의에서 "세계화된 시장에서 경쟁력이 없으면 죽게 된다"면서 "변화된 새로운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떤 시스템을 어떻게 운영할지는 한국인 여러분이 결정할 사항"이라면서 아시아 국가의 독자적인 판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또 한국 재벌개혁 방향에 대해서는 "재벌 해체에 대해 개인적으로 어떤 의견도 갖고 있지 않다"고 전제하면서도 "재벌을 해체하고 개별 기업으로 쪼갠다고 모든 것이 다 해결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토 미쓰오 전 아시아개발은행 총재는 "경제 위기 이후 아시아인들의 마음 속에는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깊은 회의가 일었다"면서 "다른 사람의 약점을 이용해 돈을 버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자본의 국경을 뛰어넘는 이윤추구 행위를 비판하는 발언이었다.

◇ 미국 = 네덜란드 출신인 미국 시티은행의 오노 루딩 부회장은 "한국의 기업및 금융기관 구조조정은 아직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니다"라면서 "지금까지 성과로 자기 만족에 취하거나 거시경제 지표가 호전된데 따른 안도감에서 구조조정의 속도를 늦추지 않을까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청와대 오찬에서는 "한국은 경제회복의 성과에 현혹돼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대우문제 해결이 가장 중요한 문제로서 이를 지연할 경우 다른 대기업의 국제금융 조달에 어려움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키신저 전 미국무장관도 21일 기자회견에서 한국 기업의 과잉 설비.투자의 문제점을 지적했었다.

◇ 리콴유 전 총리의 전문경영인론 = 리콴유 전 총리는 서구적인 가치가 반드시 올바른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여러 차례 하면서도 재벌가의 경영권 승계에 대해서는 부정적 시각을 피력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한국 재벌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 "오너가 기업가 정신으로 회사를 성장시켰지만 이들의 아들은 다를 수 있다"면서 "이때는 기업내에서 기업가 정신을 가진 사람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청와대 오찬에서도 "싱가포르에서도 주주보다 가족이 기업을 지배하는 경우가 많아 이사추천위에서 이사를 추천하는 제도를 미국에서 도입해 전문 경영인의 위상을 높였다"고 말해 전문경영인 체제의 강점을 강조했다. [서울=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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