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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공학의 아버지 베르너 폰 브라운(7)

중앙일보

입력

로켓공학자 폰 브라운은 미국의 유도미사일 연구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려 시사잡지 타임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Ethics and Science need to shake hands. 윤리와 과학은 서로 악수를 할 필요가 있다.” –리차드 카봇(Richard Clarke Cabot 1868~1939) 미국의 내과의사, 사회봉사활동가~

과학적 전리품을 탈취하기 위해 벌인 승전국들의 치열한 경쟁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D데이를 얼마 남지 않은 1944년 6월5일 영국에서 분명히 밝혀졌다.

“독일 장비와 기술은 뛰어나다. 수단을 동원해 탈취하라!”

이날 영국의 총 부사령관 로널드 위크스 중장은 “독일의 장비는 우리 것만큼 좋거나 우월하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그는 또 “독일의 연구와 설계, 그리고 설계프로그램을 획득하는 것은 전후 우리가 즉각적으로 취해야 할 목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독일로부터 빼낼 수 있는 유일한 형태의 배상금이 될지도 모른다. 이를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이 동원될 것이다.”라는 확신을 표명하기도 했다.

1945년 헨리 A. 월러스 미국 상무부 장관도 나치가 전쟁에서 사용한 기계들을 기술적으로 강탈하는 기준을 발표했다. 그는 트루먼 대통령에게 “뛰어난 독일 과학자들을 우리의 과학과 산업발전을 위해 미국으로 이주시키는 것은 현명하고도 합리적인 일로 판단됩니다”고 제안했다.

이미 아려진 사실이지만, 현재 미국의 최첨단 과학은 독일 과학과 곡일에서 이주한 과학자들의 도움으로 더한층 발전했다. 비록 정도면에서는 미국이나 영국보다 덜 했지만 소련과 프랑스도 자신들이 장악한 독일 지역에 정보팀을 보내 배상금 대신 기술을 탈취하려고 시도했다. 독일의 과학기술을 놓고 승전국 4개국 간에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진 것이다.

때때로 연합국의 정보팀들은 상대방이 취득한 이익까지 넘보면서 마치 폭력배처럼 굴었다.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손에 넣기 위해 위협을 가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납치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독일 공학자들 미국 공학자들보다 너 우대 받아

한편 바이에른에서 미군에 의해 검거된 폰 브라운은 그 후 몇 주 지나서 자신이 엄선한 120명의 로켓과학자들과 함께 미국 텍사스에 있는 엘파소 부근 포트 블리스로고스란히 이송된다. 그리고 미국의 유도미사일 연구에 참여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처음에 이 독일 과학자들은 군 막사에 거주 했지만 좋은 음식을 풍족하게 먹었고 봉급도 많았다. 약간의 통제가 있었지만 주말마다 버스를 대절해 영화관에 가는 특권도 누리며 독일에 있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혜택을 누렸다.

반면 같은 막사에 미국의 일반 공군 기술자들은 분노를 금치 못했다. 적국의 포로와 다름 없는 기술자들에게 후한 접대를 하고 자신들은 완전히 찬밥 대접을 한다는 것이다. 이 정도 만이 아니었다.

당시 독일 공학자들과 함께 머물렀던 한스 암트만이라는 항공 엔지니어는 이전부터 라이트필드에 거주했다. 그는 독일 공학자들을 위해 동료들과 함께 테니스 코트를 고치며 고생한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독일인들이 테니스 치려면 미국 공학자들은 나가야

“독일인들이 테니스를 시작하면 미국 장교가 나와 우리들을 내몰았다. 그에 대한 미국 기술자들은 너무나 분개했다. 이곳이 패전국 독일인지, 승전국 미국인지 도저히 모를 정도로 그들은 칙사대접을 받았다”

어쨌든 미국 정부가 폰 브라운을 비롯해 그가 데리고 간 과학공학자들 중요한 나라에서 온 사신처럼 영접했다. 유도미사일 연구를 성공적으로 수행해나가기 위해서다. 독일 과학공학자들이 지은 죄를 처단하려는 의지는 애초 처음부터 없었다.

과학자들이 유능한 과학자라는 이유로 항상 면죄부를 달고 다니기 시작한 전통은 바로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죄의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다. 돈으로 매수하는 과학과 기술로 매수했다면 심한 지적일까?

김형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