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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 공지영 … 밥 냄새, 술 냄새, 사람 냄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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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초판 8만 부. 20여 일 만에 재판 돌입. 소설가 공지영(47)씨의 새 산문집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오픈하우스)의 성적표다. 지난달 말 깔리기 무섭게 사람들의 손을 타기 시작했다. 12월 중순 현재 베스트셀러 상위권으로 올라섰다. 극심한 출판 불황도 그녀 앞에선 찻잔 속 태풍 같다. 비결이 뭘까. 사실 산문집은 대단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공씨가 버들치 시인이라고 부르는, 시집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의 박남준 시인, 콧수염 휘날리며 오토바이 타고 다니는 ‘낙장불입’ 이원규 시인, 그의 수다스러운 아내 고알피엠(高RPM) 여사 등. 일련의 등장인물이 지리산 자락에서 술 냄새와 밥 냄새, 사람 냄새 좀 피우며 천하태평 살아가는 이야기일 뿐이다.

아무래도 공씨 자신의 ‘흥행 동원력’을 주목해야 할 것 같다. 언제부턴가 이 나라의 독서 대중은 공씨를, 그의 삶에 자신들의 삶을 투영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대상으로 바라보게 된 듯하다. 학생운동 후일담, 견고한 페미니즘, 불법이 판치는 장애인 시설 등. 공씨는 당대의 민감한 부분을 과감하게 요리해왔다. 세 번 결혼해 세 명의 성(姓)이 다른 아이를 얻은 개인사도 남다르다. ‘star&’이 문인을 초대하기는 처음이다.

“소설의 다음 장이 궁금하게 만드는 건 결국 이야기의 힘 지루하지 않게 쓰려고 한다, 난 파격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스무 권의 책, 900만 부, 뭘 쓰든 베스트셀러가 되는 작가 한때 학생운동을 핫도그처럼 팔아먹었다는 소리도 들었지만 시대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는 그녀에게 독자는 열광한다

‘작가세계’라는 계간 문예지가 있다. 매번 한 작가를 정해 특집으로 소개한다. 소설가 공지영씨는 2006년 여름호에서 다뤘다. 평론가들이 달라붙어 공지영 소설의 비밀을 캐고, 절친한 일간지 문학담당 기자의 인터뷰도 실었다.

사실 공씨 소설에 대한 전문가들(주로 평론가들이지만)의 평은 인색하다. 사회를 보다 살 만한 곳으로 만들 수 있다는 근사한 기획 혹은 전망이 사라진 1990년대, 과거 학생운동권의 지리멸렬한 삶을 그렸다고 해서 공씨 소설에 붙여진 이른바 ‘후일담 소설’이라는 레터르는 사실 긍정적인 뜻만 내포한 게 아니다. 한때 공씨는 ‘학생운동과 우리 세대의 숭고함을 핫도그처럼 팔아먹었다’ ‘대중 추수주의의 파멸’이라는 과격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작가세계의 공지영 특집은 그럼에도 승승장구하는 공지영의 힘을 분석했다. ‘짧은 장(章)으로 이야기를 분절해 TV 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은 속력을 느끼게 하는 점, 대화가 많은 점, 이야기의 흐름을 끊는 복잡한 비유나 묘사가 없는 점’(평론가 임영봉), ‘빼어난 외모와 극적인 개인사, 선악이 분명한 극적 장면 배치, 일상어에 가까운 언어 구사’(최재봉 한겨레 기자) 등이 이유로 거론됐다. 공씨 스스로의 생각은 어떤 것일까.

-새 산문집 역시 인기가 대단하다. 지금까지 팔린 책의 양이 엄청날 텐데.

“언제부턴가 내가 모두 몇 권의 책을 냈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이번 산문집이 아마 스무 번째 책인 것 같다. 그동안 몇 권을 팔았는지 정확히 잘 모르겠다. 2008년에 비교적 꼼꼼하게 계산해 봤을 때 800만 부가량이었다. 최근 출판사 사람이 그러더라, 한 900만 부 되는 것 같다고. 사실 나처럼 20년 가까이 꾸준히 베스트셀러 내는 작가는 내가 생각하기에도 별로 없는 것 같다. 베스트셀러 집계에서 소설은 물론 에세이에서도 종합 1위 오른 작가 역시 별로 없다. 고마운 일이다.”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나.

“진짜 모른다. 내 소설이 어떤 틀에 얽매이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닐까. 어떤 독자가 그러더라. 내 소설은 작품마다 다르다고. 마치 서로 다른 사람이 쓴 것 같다고. 그럴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나 스스로 지루하게 반복하는 걸 싫어한다. 작가가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도록 작품을 쓰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책장이 넘어가도록, 단숨에 지루하지 않게 읽히게 하려고 굉장히 많이 노력한다. 다음 장이 궁금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이야기의 힘이다. 그러려면 쓰면서 내가 지겨우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재미없으면 독자도 당연히 재미없을 것이다. 어떤 소설을 읽다 보면 이 사람, 이런 거 쓰면서 자기는 재미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다. 소설이 정체되는 것은 결국 작가의 삶이 정체되기 때문 아닐까. 나는 항상 파격을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번 산문집에서는 특히 유머가 두드러지는 것 같다.

“우리나라 문학 작품에 너무 유머가 없는 것 같다. 한때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김유정이었다. 슬픈 현실을 해학으로 버무려내는 능력이 부러웠었다. 이번 산문집은 가급적 유머 넘치게 쓰려고 노력했다. 효과가 있었는지, 한 학생이 트위터에 그런 글을 올렸더라. 깔깔대며 산문집을 읽다가 버스에서 내릴 정거장을 놓쳤다고. 산문집을 쓰면서 나 스스로 꽁지작가라고 칭하며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밀려나는 글쓰기를 한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여성 작가들의 산문이 대개 자의식 과잉이 되기 쉬운데, 이번 산문집에서는 철저하게 관찰자가 되다 보니 그런 함정을 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좀 여유가 있어졌달까.”

-당신의 개인사도 인기에 한몫하는 것 같다.

“언젠가 한 일간지와 인터뷰를 했더니 ‘세 번 결혼해 성이 다른 세 아이를 낳았다’는 제목의 기사가 나갔더라. 예전 같으면 소송이라도 걸었을 텐데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여기서 해방되자’는 마음으로 꾹 참았다. 죽을 자리라고 생각하고 뛰어내렸는데 날개가 돋았달까. 내 사생활에 대해 수군거리는 ‘공지영 안티’들이 사라지고 지지자가 생기더라. 여대생 대상의 한 설문에서는 닮고 싶은 여성 5위에 오르기도 했다. 여성으로서 모든 불행을 다 겪고도 밝고 당당하게 아이들 키우며 사는 모습을 보며 독자들이 위안을 느끼는 것 같다. 이제는 그런 독자들을 보며 되레 내가 위안을 받는다. 이번 산문집 내고 나서 독자 사인회를 몇 차례 했는데 난리도 아니었다. 무슨 부적이라도 받는 것처럼 ‘동생 병 낫게 해달라’거나 ‘시험 붙게 해달라’는 말을 써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여성 독자가 많은 편인가.

“보통 여성 독자가 7대 3의 비율 정도로 많은데 이번 산문집은 6대 4쯤인 것 같다. 남성 독자가 많아야 큰 베스트셀러가 된다. 내 작품들이 가부장적 권위를 훼손한다고 생각하는지 아직도 남은 내 안티들은 40~50대 남성이 많다. 386 독자들은 좀 복잡한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혼자 운동한 척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주량은 얼마나 되나.

“와인과 소주를 즐겨 마신다. 독주도 마시지만 위스키는 안 받는다. 소주로 치면 2병 정도? 분위기 좋으면 서너 병까지 마시는 것 같다.”

-앞으로 작품 계획은.

“소설 세 권, 산문집 네 권 정도 쓸 소재들을 가지고 있다. 많은가. 찐한 실버 연애담, 교육, 정치 등을 소재로 한 소설을 각각 쓸 생각이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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